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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Feb 16. 2023

긍정 언어의 부작용

육아와 자아 찾기 3

  

큰아이가 알고 보면 여리고 질투심도 많지만 그렇게 속 모를 표정을 하고 있는 이유는 머릿속에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말을 듣는 순간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느라 반응이 늦다. 반응을 바로 하지 않으니 상대방이 더 많이 말하게 되고 그렇게 아이의 머릿속에 입력치가 쌓이면 생각주머니는 더 크게 부풀어 오른다. 그 이후로 아이 혼자만의 생각의 나래는 끝없이 펼쳐진다. 이런 과정이 내가 아이를 격려한답시고 내뱉은 표현에도 적용이 된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나는 아이에게 되도록 공부나 생활 관련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것은 내가 공부를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먼저 앞서 나가면 아이는 항상 뒤로 숨고 더 수동적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 교장선생님이 하셨던 인상적인 말씀이 하나가 있다.

‘아이의 인생을 아이 자신보다 더 중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이는 그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나의 기존 생각과도 일치하는 내용이었기에 이 말을 듣고 나의 육아 방식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 생활에 대한 관여를 최소한으로 줄이려 하고 아이가 혼자 학교 생활을 하도록 내버려 두어서인지 오히려 아이가 먼저 다가와 머릿속에 품은 자신의 능력, 학습, 진로에 대한 고민과 의문들을 털어놓을 때가 많다. 그런 경우야 대환영.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고민에 대한 공감을 해주지만 어른인 엄마는 공감에서 끝날 수만은 없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능력이 더 많을 수도 있어. 너를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 앞으로 네 앞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으니 조급해하지도 말고 눈앞에 보이는 좋아하는 것들을 하다 보면 길이 보일 거야.”

지금 생각하니 이런 말들을 한 뒤 뒤돌아서 혼자 뿌듯해했던 것 같다. 나는 아이를 닦달하지 않고 격려하고 힘을 주는 좋은 엄마라고. 나의 긍정의 언어가 아이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줄 것이라고.    

  

며칠 전 아이는 역시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다가 내가 기존에 했던 이 말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놓았다.

“엄마가 때때로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너에게는 앞으로 수많은 가능성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내가 지금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려서 많이 부담스러웠어.”    

 

이런 반전이 있나. 아이의 말을 듣자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너는 뭐가 그리 생각이 많아서 칭찬과 격려를 해 준 것도 곱게 듣지 못하고 뭐든 그렇게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거니?’라고 소리칠 뻔했다. 게다가, 이렇게 한참 지나서야 이런 불만을 털어놓다니. 그동안 모르고 지낸 데 대해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으며 스스로 ‘좋은 엄마’라고 생각한 자존심이 손상되는 기분이었다.      


아마 아이가 열 살 이전이었던 초보 엄마 시절이었다면 빽 소리를 지르고 마음속 말을 다 내뱉어버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재빠르게 ‘좋은 엄마의 자존심’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아이의 말에 ‘반성’할 줄 아는 좋은 엄마 말이다.      

“그랬어? 몰랐네. 엄마가 무조건 좋은 말만 해준다고 다 너에게 좋게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구나. 미안해.”

물론 이렇게만 끝난 건 아니다. 왜냐면 나는 자존심도 있지만 뒤끝도 있는 엄마다.

“너도 무슨 말을 듣든지 너무 부담을 느끼는 경향이 있어. 그런 마음을 좀 버려봐. 상대방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다 진지하게 들으면 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지잖아. 그리고 앞으로는 엄마 말이 기분 나쁘면 바로바로 말해줘, 알았지?”  

   

물론 나는 아이가 한참이 지나서야 불만을 토로한 이유를 안다. 앞서 말한 그 생각이 많은 탓이다. 큰 아이는 생각주머니가 빵빵해서 터지기 일보직전이 되어야만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확신을 갖는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말을 내뱉는다. 인생을 살다 보니 생각이 많은 것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전두엽이 너무 지쳐서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린다고 한다. 아이에게 꾸준히 생각을 덜어냈으면 좋겠다고 조언하는 이유다.      


그건 그렇고, ‘너에게 많은 가능성이 있어’라고 한 말을 그런 부담으로 받아들이다니, 그건 좀 충격이다. 내가 긍정적인 언어라고 생각한 말도 아이는 다르게 받아들이는구나. 때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을 느끼지만 이를 통해 또 다른 사회생활을 배우기도 한다. 종종 어른들끼리도 대화하다가도 ‘그거 칭찬이지?’라고 되물으며 의도를 파악하지 않는가. 아이와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이를 토대로 어른들과의 대화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꾸준히 주부로서의 탈출을 꿈꾸지만 주부생활, 엄마로서의 생활도 나름 매력이 있다. 항상 많은 것을 배우고 새롭게 깨달으며 아이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전업주부생활 5년 차, 집안일에 ‘가스라이팅’되는 느낌이라 말했었는데, 이런 성장의 느낌이 들 때는 ‘가스라이팅’이 아니라 ‘홀릭’이라 말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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