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잔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유리 Feb 09. 2023

평온한 얼굴에 그렇지 않은 속마음

육아와 자아찾기 2

둘째 아이의 공부를 봐주다보면 자연스레 큰 아이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큰아이 역시 사교육을 금지하는 대안형 사립학교에 다니는데 학교 안에서는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다. 이제 아이가 배우는 내용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수준도 아니거니와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는 편이니 큰아이에게는 ‘아이에게서 적당히 멀어져서 자기주도성을 키워주는 부모’가 되자는 교육 철학을 발휘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그런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

“엄마, 나도 좀 돌봐줘.”

놀라 돌아보는 나를 향해 어느새 나보다도 훌쩍 키가 커진 아이가 어울리지 않는 잔망스러운 태도로 몸을 배배 꼬며 덧붙인다.

“동생만 챙겨주지 말고 나도 좀 챙겨달라고요.”

사춘기 청소년이라면 모름지기 엄마의 시선이 자신을 피해가는 순간만을 기다리는 것이 요샛말로 ‘국룰’이라 생각하는 것도 나만의 선입견인가. 아이는 그동안 표정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서운함을 토로하며 엄마의 관심을 구했다.      


“너는 혼자 잘하면서 그러네. 네가 공부하는 내용은 엄마는 봐도 모를걸? 뭘 챙겨줬으면 좋겠는데?”

“하기로 한 문제집을 풀었는지 확인한다던가, 뭐 그런거. 혼자 계획을 지키려니가 너무 힘들단말이야.”      

언제는 ‘우리 엄마가 잔소리하는 엄마가 아니라서 좋아’라더니. 잔소리가 많고 자꾸 무언가 확인하려 들면 아이는 자연스레 자신의 일상을 숨기려 들 것이고 이는 부모자식 관계가 틀어지는 왕도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아이의 일상에 최대한 거리를 두고 자율에 맡기려 했는데, 그것도 정답은 아니었던가. 자식이란 부모가 뭘 어떻게 해줘도 만족하지 않는 존재인 듯 하다.      




큰아이는 엄마가 화를 내도, 또 칭찬을 해줘도 그리 큰 표정 변화가 없어서 이 아이의 속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아이의 질투심이 표출되는 경우가 종종 보이기는 했었다.


아이가 5살 즈음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해주고 안아줘도 자주 울고 분리불안도 심한듯해서 아동심리센터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아이를 지켜보고 상담해 준 선생은 나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사랑을 조금만 표현해줘도 만족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사랑을 많이 주는 것 같아도 항상 목말라하는 아이가 있다고. 이 아이는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 소위 ‘사랑 그릇’이 다른 아이보다 훨씬 큰 것 같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 큰아이는 학교 공부를 곧잘 따라가서 선생님께 칭찬을 많이 받는 반면 둘째는 항상 친구에게 둘러싸여 인기가 많았다. 각자의 개성이 있으려니, 하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큰아이가 나에게 와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동생에게 친구가 많은 것이 너무 부럽다는 것. 눈물까지 쏟아내며 자신은 왜 친구가 별로 없는지 모르겠다고 서러움을 토로하는데 그동안 별말 없이 동생을 바라보던 무덤덤한 표정 뒤에 그렇게나 강한 부러움과 질투심, 자책감이 숨어 었었다는데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평소 질투는 둘째 아이의 전유물이라 생각했었다. 둘째는 보드게임, 탁구경기 등에서 지는 것을 못 견뎌 했다. 언니가 항상 성적이 좋은 것에 대해서도 투덜댔고 뭔가 할 일이 있을 때도 ‘내가 할래!’를 먼저 외치던 아이다. 이렇게 적극적이고 재빠르게 의사 표현을 하는 아이의 말은 안 들어주기가 힘들다. 반면 큰아이는 하고 싶냐고 질문을 해도 항상 망설임이 많아 대답이 느리고 동생이 먼저 움직이면 그저 바라보다가 “그래, 네가 해”라며 양보하곤 해왔으니 엄마입 장에서도 ‘욕심이 없구나’ 느낄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해 본다.      


두 딸 아이를 키우면서 한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줄 때 다른 아이의 눈치보는 일이 자주 생긴다. 그래서 일부러 각각의 아이와 따로 시간을 갖는 일도 있다. 이제까지 여러 가지 육아을 활용해 두 아이의 질투심을 잠재우고 서로 이해하며 잘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중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도 서로에 대한 경쟁심, 엄마 사랑에 대한 소유욕이 줄어들지 않는 것을 보니 그 감정을 자연스레 표출하도록 가만히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아이들도 좀 컸으니 부정적인 감정이 너무 강해지면 스스로 제어할 수도 있으리라 믿어보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착한 사춘기와 미숙한 전업주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