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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Aug 07. 2023

초짜 작가, 생애 첫 북토크

책 한 권 내고 나니 벌어지는 신기한 일들

 


지난 5월 나의 첫 책 <그런 엄마가 있었다>가 출간되고 6월 말, 내 생애 첫 북토크를 진행했다. 아직 작가라 불리는 것도 어색하고 낯선데 북토크라니, 책 한 권 낸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믿기지 않은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부모에 대한 이별사가 책 한권이 되기까지

 2020년 초, 10년간 뇌질환을 앓던 엄마를 요양원 부주의로 하늘로 보내고 단 몇 달 후 아버지까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후 나는 갈 길을 잃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글이란 것도, 그저 내 마음 시원하자고 쓰는 것이지 이 우울한 이야기를 글쓰기 플랫폼에 올렸을 때에도 동조하는 사람은 얼마없었다. 

 오직 내 마음을 쏟아내고 뱉어낸 비통한 토로만으로 책 한 권의 분량을 가득 채운 첫 원고는 기꺼이 읽고 모니터링을 해준 지인들의 뼈아픈 조언을 반영해서, 독자에게 ‘잘 읽힐 수 있는 글’로 변신하기 위한 1년여의 수정 과정을 거쳤다. 결과적으로 완성본은 우울한 주제지만 속도감있게 읽히고 나름 재미도 있다는 후기를 듣는 한 권의 ‘진짜 책’으로 거듭났다.

 결국 올해 초, 우연히 눈에 든 자비출판사를 통해 출간의 용기를 내보았다. 하지만 이 또한 3년 전 떠난 부모님을 이제는 마음에서도 훌훌 보내드려야겠다는 ‘탈상’의 의미와 이미 써둔 원고에 대한 ‘예의’을 갖추는 의식이었을 뿐 그 이상 바란 것은 별로 없었다. 그야말로 마무리나 제대로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웬걸, ‘마무리’로 그 역할을 다 하려 했던 이 책은 막상 세상에 나오자 또 다른 ‘시작’이 되었다. 일단 찍어둔 500부는 모두 소진해야하기 때문이다. 책 팔아 돈 버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만든 책을 창고에 쌓아두고 썩히는 일만은 절대 용납이 안 되었다. 글을 완성하고 출간까지 한 데에는 그래도 부모님을 보내며 느낀 요양원 관리 문제, 나이듦과 돌봄에 대한 시각을 세상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존재했기에 되도록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볼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자 마음이 바빠졌다. 지인들에게 연락하여 출간 소식을 전했고 ‘책 좀 사주세요, 제가 밥을 살게요’라며 손해보는 장사임이 분명한 제안을 여러 번 성사시켰다. 그래도 이 과정에서 책은 확실히 창고를 떠났으며 책으로 내가 하고자하던 이야기를 타인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었다. 지나고 보니 이는 간략 버전의 ‘작가와의 만남’들이었다. 그렇게 소소한 만남을 이어가고 축하와 격려, 가슴 뿌듯해지는 후기도 들을 무렵, 평소 어슬렁거리던 마을공동체 커뮤니티에도, 그 안의 자그마한 독립서점에도 출간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그 책방은 ‘마을 작가가 책을 내면 무조건 환영입니다’라는 프리패스를 발권하여 내 책을 입고시켜 주었다.

 마을의 책방지기는 책을 입고시키며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 “북토크는 언제 하실래요?”라고 물었다. “예? 제가요?”라고 반문하며 당황하면서도 내 눈동자는 이미 내가 서 있는 서점 공간을 훑고 있었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이 모여 내 이야기를 듣는 모습을 상상하며. 언제 다시 책을 낼지도 모르지만 이번에 낸 책으로도 북토크라는 걸 언제 또 해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기에 나는 이 흔치 않은 기회를 잡아보기로 했다. 


두려움 반 설렘 반 생애 첫 북토크

 호기롭게 날짜는 잡아두었고 올 만한 지인들에게 연락도 좀 해놓았으나 날짜가 지날수록 한 층 두 층 쌓이는 건 걱정뿐이었다. 기껏해야 스무 명이나 들어올 수 있을듯한 작은 서점이지만 그것도 다 채우지 못해 빈공간이 남을까 걱정이었다. 북토크에 할애된 두 시간여를 어떻게 채울지도 걱정이었다. 또한 나 혼자 앞에 앉아 떠들어댈지, 누군가 진행자를 앞세울지, 퇴근 무렵으로 정한 북토크 시간에 간식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지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져 서점을 몇 번이나 찾아가 집요하게 책방지기를 들볶으며 방식을 상의했다.

 드디어 북토크 당일, 마을 지인들의 도움으로 음료와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둘째 아이에게는 영상 촬영을 부탁했다. 첫 번째 손님은? 그럼 그렇지, 내가 연락한 지인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손님은 모르는 얼굴이었다. 이후로 내가 모르거나 알더라도 직접 초대는 하지 않는 분들이 하나둘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다른 책을 사러 온 손님일거야, 생각했지만 서점 안을 휘 둘러보더니 기대하는 표정으로 자리에 착석하는 사람들. 그렇게 서점은 내 북토크를 찾아온 이들로 공간을 빼곡히 메우게 되었다.

 이분들이 모두 나를 보러, 내 책 이야기를 들으러 오신 거라고? 감격스럽기도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지만 놀라움에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결국 나는 진행자 없이 온전히 혼자 두 시간을 채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책방지기의 간단한 소개말이 앞섰다. “오늘 <그런 엄마가 있었다>를 주제로 한 북토크에 참가해 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럼 조유리 작가님을 소개해볼까요?”

 내가 뭐라고, 20명이 넘는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서점 중앙에 앉아있는 것인가. 파르르, 입술이 떨려왔지만 이내 힘을 내서 말을 꺼냈다.

“아이고, 이렇게나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네요. 감격스럽기도 하고 많이 떨리기도 합니다.”

 첫 한 시간은 책을 쓴 계기를 설명하고 노인문제와 관련한 정보 나눔으로 채웠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성년(임의)후견제도’ ‘연명의료결정법’은 내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알아두었으면 하는 노인 문제의 상식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뒤 질답을 진행하기로 했다. 아주 잠시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첫 질문.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살아계신 저희 엄마와 앞으로 어떻게 이별해야 할지, 또 나 자신의 죽음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해지더군요. 죽음이란 것, 도대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와, 이건 너무 질문이 크다. 갑자기 내가 카운슬러라도 된 기분이었다.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앞에 앉아있는 이에게 독자들은 이런 기대를 하는구나. 책 한 권의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이듦과 죽음의 주제에서 제가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이를 전혀 화두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상황이 다 다르겠지만 일단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가족과 이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인 것 같아요. 앞서 정보를 드린 제도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알아보시는 것도 막연한 두려움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요.” 


작가와 참석자 모두, 각자의 '엄마'에 대한 회고의 시간

 이후에도 책 내용과 관련된 질문, 복지 제도에 대해 묻는 질문, 나이듦과 질병, 부모부양 등에 대한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는 다양한 이야기장이 펼쳐졌다. 대화가 단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풍성한 ‘토크’가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저 뒤편에서 다른 분들의 질문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유일한 남성 참석자가 입을 열었다. “책도 읽지 않았는데 우연히 공지를 보고, 제목의 ‘엄마’라는 단어에 이끌려 찾아왔습니다. 이 단어를 들으면 저도 일찍 돌아가신 고운 자태의 저희 어머니 모습이 기억나는데, 작가님의 어머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예상치 못하게, 눈가가 뜨거워지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부모의 죽음을 주제로 삼은 다른 질문들 앞에서는 그저 덤덤히 내 안에 있던 말을 꺼내어 친절하게 설명할 뿐이었는데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냐’는 이 질문이 그토록 나를 흔든 이유는 무얼까?

나의 엄마는 어떤 사람었을까. 내가 ‘그런 엄마가 있었다’라고 썼을 때 ‘그런’은 단지 아픈 엄마를 말하려 한 것만은 아니다. 내가 말하려던 ‘그런’에 담긴 엄마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답을 생각하느라고, 또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눈물을 이겨내느라 잠시 시간의 공백이 필요했다.

 “엄마는 정말 열심히 사신 분이었습니다. 다른 주변 분들이 모두, ‘너희 엄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정말 다른 사람에게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왜 그런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질병에 걸리는 것이 모종의 잘못에 의하거나 혹은 나쁜 생활 습관에 의한 ‘벌’이라는 인식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병에 걸린 사람에게 죄의식을 부여하게 되므로 옳지 않다. 원인이 없는 병도 많다. 그러나 나 또한 엄마의 병에 원인을 부여했다.

 “전 가끔 엄마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었던 것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스트레스가 쌓여도 모든 것을 마음에 담아두는 편이었는데 그런 성격이 병을 부른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엄마는 술도 못 드셨고 화도 잘 못 내셨습니다. 마음에 쌓인 응어리를 어쩌지 못한 그 ‘착한’ 성격 때문에 병이 생겨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하는 거라는 생각을 가끔 했었습니다.”

 아무리 애틋하게 엄마 이야기를 해도 난 결국 자식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잘 해줘도 자식은 부모를 원망하는 것 밖에 할 줄 모른다.

  할애된 두 시간이 거의 다 흘러갔을 무렵, 한 참석자가 자신의 사례를 이야기했다.

“병든 저희 시어머니를 모시는 데 요양보호사 고용비용과 병원비를 합치면 월 수백이 듭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며느리로서 저는 입을 다물 뿐입니다. 모든 가족이 어머님의 기존에 가지고 계시던 전 재산을 다 소진하더라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데 합의한 상태입니다. 이것이 옳은지 아닌지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저 그렇게 흘러갈 뿐입니다.”

 북토크 초반에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세상에는 복지와 돌봄에 대한 엘리트적 담론이 있고 많은 정책적인 논의가 있지만 나는 이 문제가 정책 속에 갇힌 주제가 아닌, 개인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좀 더 대중적인 주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비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조심스럽게 정책 이야기를 꺼낼 수 밖에 없었다.

“누구든 질병으로 인한 비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게,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작가로서 행보, 이제 시작!

 이렇게 나의 첫 북토크는 책에 담긴 나의 이야기를 넘어 참석자 개개인의 경험과 두려움을 함께 나누며 훈훈한 공감으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인원, 다양한 이야기, 책에 사인을 받겠다고 줄을 서는 독자들, 자진해서 맛난 음식을 만들어준 마을 지인, 쉴새 없이 오가는 격려와 축하. 내 인생에 이것이 무슨 복인가 싶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며칠을 준비한 북토크 행사가 그렇게 끝났다. 책이 세상에 나오고 알려지기를 바라면서도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를 누가 읽을까, 누가 함께하고 싶어할까 하는 의심으로 가득차 있었건만. 이번 행사를 계기로 좀 더 오래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봐도 좋겠다는 용기가 생겨버렸으니, 마무리로 출간한 책이 새로운 시작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오는 9월에는 시에서 지원하는 마을문화사업 중 하나로 <마을 선배 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모임>의 '선배 작가'로서 활동한다. 내 책의 특성을 살려 나는 이번 글쓰기 모임의 주제를 ‘마음 속 불만을 해소하는 글쓰기’로 정했다. 부모님을 보내고 속마음을 토로하며 책을 써내려갔던 나의 경험을 공유해볼 예정이다.

 아직도 ‘작가’라 불리는 것이 쑥스럽다. 누군가 내 등 뒤에서 ‘작가님!’하고 부른다면 선뜻 돌아볼 자신이 아직도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씩 벌어지는 내 앞의 일들을 원활히 수행해내려면 일단 그렇게 불리는 것부터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연이어 맞는 인생 처음의 순간들. 너무 호들갑스럽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무덤덤하지도 않게 적당한 설렘을 가지고 이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 그런 나를 보며 하늘에서 부모님도 조금은 뿌듯해하시길. 엄마, 아버지, 이 초짜 작가를 많이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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