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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Oct 04. 2023

글쓰기 수업

노인 문제 관련된 우울한 이야기를 누가 읽을까 싶으면서도, 내 돈 들여 자비출판 한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라는 박한 자평을 했으면서도, 막상 첫 책을 낸 후 맞이한 몇 가지 이벤트에 은근 기뻐하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최근, 3년을 끙끙 앓다가 드디어 세상에 내놓은 책 <그런 엄마가 있었다>의 발간 후 북토크와 강연, 그리고 글쓰기 수업에 이르기까지 인생 처음 해보는 일들을 연달아 경험했다. ‘내 책을 보고 찾아 온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하며 놀랐던 북토크와, 내 경험과 취재내용을 접목해 ‘돌봄은 어떻게 콘텐츠가 되는가’라는 주제로 경력단절 여성들의 호응을 얻은 강연은 오랜 시간 고생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엄마 덕(?)에 ‘내가 별걸 다해보네’라고 생각했던 일들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평소 자주 찾는 마을 도서관 사서 선생의 권유로 맡게 된 ‘선배 작가와 함께 하는 글쓰기 수업’은 그저 책 한 권 낸 ‘초짜 작가’일 뿐인 내게 생경한 호칭인 ‘선생님’으로 불릴 기회를 갖게 해 준 또 하나의 감격스러운 사건이었다.  

   

사실 나보다 글 잘 쓰는 사람, 더 잘 가르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는 두려움이 가장 먼저 앞섰다. 그러나 수년간 잡지 기자로 일한 내게는 일종의 자신감이 있다. 글은, 아니 세상 모든 일은, 컨셉의 승부라는 걸 알고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인간사는 그저 1등과 2등 순서로 나열하는 일렬종대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인과 내가 얼마나 다른지, 나만의 색깔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따라서 모든 일에는 컨셉 혹은 캐릭터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런 생각을 이번 글쓰기 수업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내가 과연 선생으로서 깜냥이 되는지를 저울질하고 있을 시간에 오히려 나만의 컨셉을 부여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판단했고, 결국 이 글쓰기 수업은 ‘분노를 해소하는 글쓰기’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10년간 아팠던 엄마를 돌보면서 마음에 켜켜이 쌓인 분노를 쏟아낸 결과가 바로 나의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뒤 가리지 않고 마음을 털어낸 초고는 독자와 더 쉽게 공감하기 위한 정제의 과정을 거쳐, 지금은 ‘우울한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재밌더라’는 말도 꽤 듣는 전혀 다른 글이 되었지만 그렇게 고쳐가고 걸러냈던 과정 자체가 배우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리라 여겼다.      


가르칠 ‘선배 작가’가 이런 고민으로 끙끙대는 줄도 모르고 수업에 신청한 이들은 20여 명에 이르렀다. 예상보다 많은 신청자 수에 한 번 더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지만 ‘할 수 있어’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최종 등록자를 골랐다. 그리고 수업 준비를 위해 감정 해소 관련 책이나 글쓰기 방법과 관련된 영상물도 여럿 찾아봤다. 컨셉과 캐릭터는 강의명에만 적용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강의 진행에 있어서도 나만의 방식이 있어야 했다. 찾아본 다양한 자료를 참고는 하되, 나 조유리만이 이끌 수 있는 ‘컨셉있는’ 방식으로 4회의 수업을 계획했다.


첫 시간. 참여자들은 각기 다양한 지역에서 찾아온 만큼 글쓰기 수업에 신청한 이유, 각자 쓰고 싶은 글의 내용도 다양했다. 
 “친정엄마와 갈등이 좀 있어요. 그런데 가끔은 내가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몰라서 답답하더라고요. 자신감있고 설득력있게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 친구 엄마들을 보면서 짜증이 날 때가 많았어요. 그런 내용의 글을 써보고 싶어요.”

“사실 무슨 글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정말 쉽게 말하고 즐겁게 대화하는 편인데 글을 쓰려고만 하면 두려움이 앞서요.”

“<그런 엄마가 있었다>라는 책 제목을 보고 엄마와 관계가 생각나서 찾아왔어요. 그런데 막상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이와의 대화가 힘들어지는 시기예요. 그 과정에서 제가 적절하게 마음을 잘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모두가 초면인 모임의 첫 시간답지 않게 구체적이고 진솔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수업은 4회 동안 하나의 글을, 쏟아내고, 다듬고, 다시 수정하고, 비로소 완성해내는 과정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도저히 글을 못 쓰겠다고 말하는 참여자에게는 그저 대화하듯이 말을 해보라고, 그리고 그 말을 녹음해서 종이에 옮겨오기만 하라고 권했다. 그렇게라도 일단 적어 내려가는 것이 쓰기의 첫 단추일 것이다. 그렇게 첫 시간이 지나 각자 써온 글은 역시나 6명의 개성이 온전히 드러난 6가지 색깔의 글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글의 방향성에 대해 조언하고, 두 번째 수정시에는 조심스레 문장과 표현을 첨삭했다. 기본적인 맞춤법과 문장의 형식을 갖출 것을 제안하며 이제 드디어 마지막 시간, 완성된 글을 발표할 일만 남아있다. 
 

‘분노 해소 글쓰기’라는 제목을 정하고도 조금 강한 어조인 것 같아 수업 중에는 ‘감정 해소’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긴 했지만 어쨌든 감정과 글쓰기를 접목해서 수업 컨셉을 잡은 것은 여러모로 잘한 일 같다. 참여자들은 단순히 글쓰기 기법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각자 혼란스러운 감정과 사색의 결과를 공유하였고 이를 해소하는 방법 또한 함께 모색했다. 게다가 인생 처음 맡은 ‘감정 글쓰기 강사’라는 자리에 걸맞는 준비를 하려고 부러 찾아본 다양한 심리학적 조언은 최근 내 마음을 짓누르던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날 한 가닥 희망도 제시해주었으니, 오히려 참여자들보다 내가 더, 이 수업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감사한 시간의 연속이다. 개인적인 감정의 토로에서 시작된 나의 글쓰기가 이런 소중한 만남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책을 낼 때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같은 일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쓰기를 게을리하던 요즘. 이번 글쓰기 수업이 나에게 다시금 그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이렇게 또 깨닫는다. 앞으로도 질기게 이어질 쓰기와 나와의 운명적인 동반관계를. 그리고 기대한다. 그로 인해 또 다시 펼쳐질 새로운 만남의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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