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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Oct 16. 2023

우리,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영화 <룸 쉐어링>으로 생각해보는 '대안 가족'

우습고 안쓰러운 세대 극복 동거 스토리

대학생인 지웅(최우성 분)은 홀로 사는 노인 금분(나문희 분)의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됩니다. 바로 지자체에서 진행한 ‘어르신-대학생 룸 쉐어링 사업’에 선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주거 공간의 여유가 있는 노인들의 신청을 받아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에게 방을 제공해주는 세대 통합형 주거 공유 프로그램’으로 소개된 룸 쉐어링은 옛날식으로 말하면 노인이 거주하는 집의 방 하나를 대학생에게 내주고 하숙을 치는 격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금분의 집에 들어선 지웅. 그러나 그를 맞이하는 건 바닥에 잔뜩 그어진 빨간색과 파란색, 노란색 선들입니다. 같이 살아도 서로 선은 넘지 말자며 빨간색은 자신, 파란색은 지웅의 공간이고 노란색은 공유 공간이라고 규정하는 금분. 밥은 따로 먹고 전기와 물 절약하기, 그리고 집 안에서 대변은 보지 않아야 한다는 황당한 요구에 이르기까지, 까칠하고 깐깐한 성격의 금분은 새로 집을 나눠 쓰게 된 이 학생에게 제대로 된 갑질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서글서글하고 예의 바른 청년 지웅은 하필이면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 체질이지만 이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고 할머니와의 동거를 시작하죠. 그럼에도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간헐적으로 강아지를 돌봐주는 펫시터 일을 하는 지웅이 며칠 동안 맡게 된 강아지 때문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지웅의 친구가 허락 없이 집에 들어오는 바람에 서로 마음이 상할 정도의 막말을 주고받으며 크게 다투기도 합니다.    

  

영화 <룸 쉐어링>을 ‘까탈스러운 노인이 젊은 청년과의 동거를 통해 마음을 열고 인간애를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 휴먼드라마’ 정도로 소개한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저마다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입장의 인물이 등장해 복지 사각지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주기 때문이죠. 홀로 살아가는 노인의 외로움과 폐지를 줍는 경제 문제를 밑바탕에 깔고, 보육원에서 생활하다가 스무 살이 되면 달랑 500만원을 손에 쥐고 시설에서 나가야 하는 보호종료아동문제, 그리고 책 <죽은 자의 집 청소>를 통해 알려진 혼자 세상을 등진 이들의 집을 정리하는 특수청소에 관해서도 다루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따로따로 나열된 뷔페가 아닌 한 상에 곱게 차려진 한정식처럼, 인물들간 얽히고 설킨 관계로 이어져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조화롭게 펼쳐집니다.     


복지를 공부하면서 안타깝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복지 분야에 대한 연구나 정책이 시설 복지 대 가정 복지, 혹은 아동이나 노인, 여성 등의 대상 별 복지로 철저하게 구분되어 분류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가족 복지를 들여다보면 아동과 노인이 보이고 그 안에 여성이 있습니다. 장애인이 나이들면 노인이 되는 것이고 노인에게 질병이 생기면 장애인이 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니 어쩌면 이 모든 문제는 함께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세상에서 만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회 문제를 일관된 서사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은 수작이라 하겠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한 사회적 고민 

‘룸 쉐어링’은 사실 몇 년 전 서울시의 일부 지역에서 실제 시행되었던 사업입니다. 영화를 연출한 이순성 감독도 자신이 살던 중량구에서 이 ‘룸 쉐어링’ 사업의 홍보 전단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히더군요.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이제 혈연이 없어도 함께 생활하고 함께 식사하는 간단한 행위만으로 가족이 될 수 있는 게 아니겠냐고요. 이제 가족의 의미를 재설정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인 흐름이니까 말이죠.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가족을 둘러싼 복지 문제에서는 단연코 ‘다양성’이 화두입니다. 이순성 감독의 말처럼 혈연 관계로 이어지지 않은 가족의 형태가 많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죠. 비혼이거나 혹은 사별의 경험을 세 명의 여성 노인들이 함께 가족을 이뤄 한 집에 사는 모습을 담은 <세 할머니의 유쾌한 동거>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던 기억도 떠오르는군요. 현실적으로 노인들이 어떤 주거 형태에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는 중입니다. 선별적으로 수혜자를 선정해서 입주시키는 정부 주도 노인복지주택이 생겨나고 거주자들끼리 돈을 모아 공동체를 이루는 시니어 공유 주택도 생겨납니다. 그러나 노인복지주택은 불법 분양과 양도, 입소 등의 문제로 분란이 생겼고 입주자들끼리 집을 짓는 공유주택은 사생활을 중시하고 임대를 꺼려하는 노년에게 맞는 방식의 구현이 어렵다는 이유로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다양해지면 그 가족이 살아가는 집의 형태 또한 다양해질 수 밖에 없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의 논의가 아직은 걸음마 수준입니다.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 영화의 장르를 ‘판타지’라고 규정했습니다. 현실에 있는 소재에서 영감받아 만든 영화가 왜 판타지일까 의아했었는데 영화를 여러 번 곱씹고 나니 이해가 되더군요. 실제 이러한 청년과 노인의 동거가 가족같이 편안한 관계로 전개되는 내용 자체가 현실에서 일어나기 쉽지 않은 일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영화 말미, 금분과 지웅이 가족이 됨을 선언하며 함께 작성한 ‘가족관계동의서’ 또한 현실에서는 없는 판타지 같은 문서입니다.  

   

하지만 이건 가까운 시일 내에 현실이 되기를 바라게 되는 판타지입니다. 이제 1인 가구문제는 노인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세대를 아울러 취약한 1인 가구가 늘어가고 이들이 다시 만나 가족이 되는 일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흐름이니까요. 이들이 가족으로서 누릴 권한을 갖고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이제 필요한 건 신속히 정비될 법적 장치일 것입니다.   

  

*KBS 다큐온, 2021년 9월 10일 방영

**<쫌 앞서가는 가족-시니어 공동체주거를 생각한다> 참고

사진 제공 : ㈜엔픽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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