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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Oct 19. 2023

치매에 걸리면 죽는 게 낫다고?

영화 <스틸 앨리스>가 표현하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생의 지속성

* 영화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치매에 대한 공포심, 그 속에 담긴 은근한 혐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면서 상당히 불편한 감정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시즌2였던가요? 8화에서 극 중 소아과 의사 안정원(유연석 분)의 어머니 정로사(김해숙 분)는 자꾸 깜빡깜빡 기억력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신경외과 의사인 채송화(전미도 분)에게 진료를 받고 수두증 진단을 받죠. 그런데 기억력이 안 좋아서 자꾸 실수가 이어지는 동안 자신이 치매일지도 모른다고 걱정에 휩싸였던 로사는 오히려 수두증이라는 말에, 그리고 수술하면 곧 좋아진다는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안심을 합니다. 그리고 치매인 줄 알았냐고 묻는 정원은 엄마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뭐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했냐’고 합니다. 진단 이후 모두가 다 행복합니다. 치매 같은 이상한 병에 걸리지 않은 게 너무도 다행이라는 듯, 말이죠. 

    

이 장면은 치매를 겪은 환자 혹은 치매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에게는 너무도 가슴 아픈 장면입니다. 그만큼 치매는 인간으로서 걸리면 안 될 것 같은, 지독하고 나쁜 병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으니까요. ‘내가 그런 병에 걸리면,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지인의 말에 깊은 상처를 받았던 적도 있습니다. 왜냐면, 당시 저희 친정 엄마가 치매였거든요. 영화에서도 병이 심해지느니 죽는 게 맞다고 생각한 앨리스의 자살 시도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병은 정말, 죽어 마땅한 병일까요? 

      

치매는 크게 ‘가역성 치매’와 ‘비가역성 치매’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역성 치매는 완치가 가능한 원인에 의해서 발생한 치매입니다. 우울증에 의한 치매, 정상적인 뇌수두증, 뇌종양 및 만성 경막하 혈종, 감염성 질환, 내분비질환, 결핍성 질환, 알코올 중독, 약물과 관련된 치매를 들 수 있습니다.* 반면 비가역성 치매는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치매로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혈관성 치매가 대표적입니다. 가역성 치매는 회복이 가능하지만 전체 치매의 5~10%에 불과하고 그 외에는 회복이 불가능한 불가역성 치매입니다. 불가역성 치매의 원인 중 가장 흔한 것은 퇴행성 뇌질환의 일종인 알츠하이머병으로 과반수를 차지합니다. 그다음으로는 뇌혈관성 치매가 20~30%를 차지하죠. 저희 어머니는 뇌경색과 뇌출혈이 원인이 되었던 뇌혈관성 치매였습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가장 큰 증상은 기억력 장애입니다. 그로 인해 지능저하도 급격하게 일어나서 옷 입기, 식사, 세면 등 일상적인 행동을 할 때에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언어도 불명확해지며 대화를 이어갈 수 없습니다. 점차적으로 전신이 쇠약해져서 사망에까지 이르게 되지요.** 

    

뇌혈관성 치매는 흔히 ‘중풍’을 앓고 난 뒤 인지기능이 떨어졌을 때 나타나는 것으로 뇌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혀 나타나는 허혈성 뇌혈관질환과 뇌혈관의 파열로 인해 출혈이 발생하는 출혈성 뇌혈관질환으로 뇌가 위축되면서 나타납니다.*

     

제가 의학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친정엄마의 치매를 겪으며 느낀 단적인 경험은 이러합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기억을 못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 갑자기 자신의 가족도 못 알아보곤 하죠. 저희 친정엄마가 겪은 뇌혈관성 치매의 특징은 이상 행동입니다. 기억력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가족이나 지인은 잘 알아보는 편이지만 자신의 오랜 습관을 반복한다거나, 모든 물건을 정해진 자리에 놓으려고 집착하는 이상한 행동을 반복합니다. 저희 친정 엄마는 항상 잘 먹던 밥을 뱉거나, 화장실에서 휴지를 뜯어서 주머니에 넣고, 집에서 모든 물건이 정해진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결벽증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질병을 가진 사람도 그저 인생을 이어갈 뿐

흔히 치매는 환자 자신보다 가족이나 돌봄자가 더 힘든 병이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말하는 그리고 실제 치매의 보호자들이 말하는 내용은 좀 다릅니다. 영화에서 앨리스는 ‘멍’함을 자주 느낍니다. 어느 순간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여기가 어딘지 혼돈스럽습니다. 집 안의 화장실 위치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서 집안 구석구석의 여러 방문을 열어보고 좌절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바지에 실수를 하고 말지요. 이런 상황이 자꾸 반복되면 환자 자신은 매우 심한 혼란에 빠져 괴롭습니다. 비정상적인 환자의 행동을 보며 가족들만 힘들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가장 힘든 건 환자 자신입니다. 

     

치매 환자를 돌볼 때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자꾸 혼내거나 핀잔하지 말고 지금의 상태를 인정해 주고 부드럽게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남편의 증상을 모른 척해주고 이해하며 보듬어 주는 부인의 모습이 그려졌는데 치매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의 이상적인 모습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드라마에는 이런 장면도 나옵니다. 증세가 점점 더 심해지는 노인을 두고 자식들이 서로 자기 집에서 모시겠다고 합니다. 요양기관에 대한 언급도 나오지요. 그러자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손녀가 한 마디 합니다. “할아버지 의견은 안 물어봐요?” 

    

노년기의 환자를 어디서 돌볼지, 요양원에 보낼지 말지, 요양원에서는 어떻게 돌볼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실 환자는 그 중심에 있지 않습니다.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환자라는 이유로 보호자들은, 그들의 의지를 전혀 묻지 않고 모든 것을 결정하지만 막상 자신은 전혀 개입하지 않은 결정에 의해 어떤 환경에 놓이게 되었을 때 모든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환자 자신이라는 것을 보호자들이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스틸 앨리스>에서 사회적 지위도 높고 일도 잘해서 그동안 앨리스의 자랑이 되어왔던 남편과 첫째 딸, 둘째 아들은 앨리스가 아파도 여전히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데 바쁩니다. 정작 앨리스를 돌보는 것은 그동안 앨리스와 지속적으로 충돌해 왔던, 배우를 꿈꾸는 막내딸입니다. 평소 가장 부모 성에 차지 않은 진로를 택해 자주 엄마와 부딪치던 막내딸이 결국은 엄마 곁을 지키는 가장 친밀한 가족이 됨을 보여주는 이 장면이 일반적인 눈에는 감동스럽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 고정 직업이 없는 비혼의 딸이 부모의 돌봄을 전담하게 되는 일상적인 불평등의 원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식으로 돌봄 노동을 전담하게 되는 여성들이 많은데 그들의 이러한 돌봄 행위가 사회적 무능력과 등가로 인식되는 풍토가 안타깝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족들도 그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식으로 문제에 눈감아 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앨리스에게 죽음이나 또 다른 형태의 드라마틱한 결론이 일어나지 않고 그저 환자로서 생을 이어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은 알츠하이머를 겪는 환자나 그 가족이 볼 때 큰 의미가 있습니다. 병에 걸린 환자가 극적으로 회복되거나 혹은 안타까운 죽음을 택하게 되는 일반적인 클리셰에서 벗어나, 질병은 버려야 할 존재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생에 함께 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이 결말이 훨씬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프면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과는 달리, 사람들은 아파도 계속 살아갑니다. 아픈 노인도 그저 하루하루 이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니까요. 

     

* 보건복지부지정 노인성치매임상연구센터 홈페이지

* 현대노인복지론, 최순남,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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