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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Oct 20. 2023

돌봄의 공간에서 존엄을 지키는 일

영화 <아무르>가 그려낸 환자의 존엄에 대해서

환자가 지키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자존심

영화 <아무르>는 전형적인 프랑스 영화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프랑스 영화’에 대한 편견–자극적인 재미는 별로 없고 조용하며 사색적이다-에 매우 부합하는 영화지요. 하지만 그래서인지 ‘참으로 아름다운 영화’라는 평도 함께 뒤따르는 작품입니다. 노부부의, 그것도 질병과 그 돌봄으로 피폐해져 가는 삶을 그렸음에도 매우 미학적인 장면과 은유적인 미장센이 돋보입니다.  

    

영화가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질병에 걸린 안느(엠마뉴엘 리바 분)도, 그녀를 돌보는 남편 조르주(장-루이 트린티냥 분)도 영화 내내 줄곧 환자의 존엄성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안느는 유명 피아니스트가 된 제자를 키워냈을 정도로 훌륭한 음악가 출신이지만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오른쪽 반신이 마비되고 맙니다. 그러자 남편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다시는 자신을 입원시키지 말라고 말이죠. 병원에 가면 아무래도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비인간적 처치를 ‘당할’ 수 있을 테니까요. 여기서부터 안느가 얼마나 자신의 인간적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망설이던 조르주는 결국 약속을 하고 맙니다. 병세가 점점 악화되는 안느는 조르주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우려합니다. ‘이대로는 안 돼, 끝내고 싶어’라는 말에서 그녀가 자살을 희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조르주는 그녀를 살뜰하게 돌보고 간호사와 이웃의 도움을 받아 살림과 돌봄을 곧잘 해냅니다. 하지만 딸이 방문했을 때조차 점차 병세가 악화된 안느를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로 아내의 모습에 신경을 씁니다. 환자에게도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우아한 음악가였던 안느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쇠약해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서 지켜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 유난스러운 까탈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본성임을 자연스럽게 드러냅니다.   


  


안락사를 위한 다양한 논의와 시도 

2022년 6월, 국회의 안규백 의원은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했습니다. ‘말기 환자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담당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신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를 도입함으로써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증진’ 하자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안규백 의원이 이 법안을 발의하게 된 사연이 있었습니다. 의원의 모친이 임종 전 8개월 정도 요양병원에서 지냈는데 그 시기가 가족 모두에게 고통의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환자는 치료의 중단을 원했고 가족도 그에 동의했음에도 의사는 이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환자가 연명의료결정법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즉 환자가 임종 과정에 있는, 연명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족들도 못 알아본 채로 그저 누워만 있는 모친의 상태를 보며 그 치료 기간이 생으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느낀 안 의원은 죽음에 본인의 의사가 개입될 여지를 법이 조금이나마 허용해야 인간이 존엄을 지키며 죽어갈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유럽에서 안락사가 허용되는 국가는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등입니다. 아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프랑스는 올해 정부가 ‘프랑스식 임종 선택 모델’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임종 선택에 대한 프랑스 모델을 올해 안에 마련하고, 연명 치료에 관한 10개년 국가 계획을 세우겠다”라고 밝혔다고 하네요. 그러나 프랑스 의사들은 아직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에 의사들을 참여시키면 안 된다’고 말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도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여러 논의가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영화 속 부부는 투병 기간 내내 자존심과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외로움을 감당해내야 합니다. 사실 돌봄은 환자와 돌봄자 간 매우 내밀하게 이루어지는, 그래서 돌봄을 해보지 않은 다른 이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공고한 관계를 형성하게 합니다. 안느가 물 먹기를 거부해서 부부간 다툼이 생기거나 돌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간호사와 조르주가 언쟁을 하는 등의 일은 외부인들은 전혀 알지 못할 고충입니다. 심지어 그들의 딸마저도 말이죠. 

     

영화는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끝이 납니다. 과연 이들에게 존엄한 죽음이 가능했을까요? 영화적 환상이 가미되어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끝이 나는 이 작품은 2012년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노인 돌봄과 존엄한 죽음에 대한 문제의식을 사회적인 이슈로 승화하면서도 작품의 예술성 또한 놓치지 않았습니다. 

     

2022년 7월에 안규백 의원의 발의에 대한 여론조사가 실시되었는데 국민의 82퍼센트가 조력존엄사 입법화에 찬성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환자의 권리 보장'과 '환자와 가족의 고통 경감' 등이 제시되었지요. 아직은 인간의 죽음에 윤리성과 도덕성을 가장 우선시하는 분위기 때문에 법안 진행은 지지부진합니다만 이러한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것만으로 큰 발걸음이긴 합니다. 앞으로 이와 관련해 더욱 활발한 토론이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각자도사 사회>(어크로스) 참고

사진 출처 : 티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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