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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Oct 20. 2023

연명치료를 둘러싼 가족의 괴로움

영화 <밍크코트>가 주목한 죽음의 의미와 시점에 대해서

세련된 중년이라면 연명치료사전의향서쯤은 작성해 놔야?

최근 중년층에서는 연명치료사전의향서 작성에 대한 논의가 많습니다. 이는 연명의료에 대해 건강한 상태에서 미리 본인의 의견을 밝혀두는 것입니다. 즉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료과정’을 내가 하게 될지 말지에 대해 미리 의견을 내는 것이죠.  

    

이 연명의료와 관련해서는 먼저 ‘김 할머니 사건’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2008년 76세의 김 할머니는 폐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려 검사를 진행하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소위 ‘식물인간’ 상태에 이릅니다. 인공호흡기와 같은 생명연장장치만에 의존해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된 할머니의 가족들은 평소 할머니의 뜻을 전하며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병원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소송에까지 이르게 되지요. 대법원은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하였고,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라면 해당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이후 이러한 연명의료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2016년 2월에 <연명의료 결정법>이 제정되었으며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생전에 건강보험공단에 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마지막 순간에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싶어 하셨는데, 이러한 의사를 미리 밝혀두지 않으면 환자 당사자의 의사도 모른 채 연명치료 여부를 두고 가족들이 힘겨운 갈등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자식 된 입장에서 부모의 명을 이어가는 치료를 멈춘다는 것 자체가 불효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상황이 닥치면 너무도 복잡한 심경에 빠지게 됩니다. 그랬던 아버지지만 결국은 세상을 떠나시던 상황에서는 며칠의 연명치료는 불가피했었습니다. 친오빠와 저는 고민 끝에 연명치료 포기에 동의하고 아버지를 보내드렸었지요.      


가족에게 짐 지워지는 결정의 순간

영화 <밍크코트>가 개봉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2012년입니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연명치료 중단을 놓고 벌어질 수 있는 가족 간 갈등이 매우 현실적으로 담겨있지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로부터 중단할 수 있는 연명치료의 범위는 구체적으로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투여, 인공호흡기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투여 등입니다. 이 중 환자의 상태에 맞게 실행되고 있는 치료 중에서 순차적으로 하나씩 중단을 하는 것이죠. 저희 아버지의 경우 인공호흡기와 혈압상승제를 투여하고 계셨고 마지막 치료를 포기할 때는 혈압상승제 중단만으로도 생을 마감하게 되셨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어머니의 인공호흡기를 뗄지 말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지만, 실제 병원에서는 임종기에 있는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는 1997년 벌어진 ‘보라매병원 사건’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당시 50대 남성이 머리를 다쳐 보라매병원에 응급 이송되었고 긴급 뇌수술을 받고 이어서 치료를 받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보호자는 치료비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환자의 퇴원을 요구했고 처음에는 이를 허락하지 않던 의료진이 강경한 보호자의 태도에 ‘퇴원 후 환자의 사망에 법적인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귀가서약서를 받고 환자를 퇴원시킵니다. 결국 환자는 퇴원했고 병원을 나간 지 5분 만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장례비를 지원받아보려던 보호자가 환자를 병사가 아닌 ‘변사’로 경찰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이 환자의 사망을 수사하게 되었으며 결국 보호자와 의료진은 살인죄로 기소되었다고 합니다. 지난한 법정 공방 끝에 2004년 대법원은 보호자를 살인죄의 정범으로, 담당 의사와 전공의를 살인방조범으로 판단하고 각각 징역 3년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의료계에 큰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이후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퇴원도 절대 거부하고 다른 연명치료는 다 중단해도 호흡기만은 절대 떼지 않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죠. 인공호흡기 또한 법적으로 ‘멈출 수 있다고 정한’ 연명치료에 속하지만 아직까지도 인공호흡기 제거는 허용하지 않는 병원도 많습니다.    

  

연명의료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의가 있습니다.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한 환자’를 규정하기 쉽지 않고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산 사람을 죽이는 행위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아무리 환자가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향서’를 써놓았다고 해도 이를 반영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또한 입원해 있는 병원에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어야 이 사전의향서의 내용을 반영해서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을 이행할 수 있는데 보통 윤리위원회는 흔히 '큰 병원'이라 부르는 상급병원이나 종합병원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병원이라면 의향서를 써두었다고 하더라도 그 의향서를 기준으로 연명치료여부를 결정하지 않는 일도 많습니다.      


자식에게 폐 끼치는 부모는 되지 않겠다는 ‘신식 노인’이 되기 위한 방법인 양 사전연명의향서작성을 뿌듯해하는 노인도 있던데, 그러기에는 이를 둘러싼 현실은 다분히 복잡하고 논의 거리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의향서를 써두는 것은 의미가 있죠. 의식을 잃은 환자의 죽음에 대한 평소 생각을 알고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이제 죽음 자체보다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준비할 줄 알아야 하는 그런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닐까요?   


   

참고 :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www.lst.go.kr

<각자도사 사회>(어크로스)     

사진출처 : 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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