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유리 Aug 16. 2023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세요, 나의 죽음을

영화 <딕 존슨 이즈 데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 죽음

나의 죽음을 상상해 보신 적 있나요? 죽음이란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니 이 세상 가장 공평하게 주어지는 기회(?)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당연시되는 것이어서 그런지 정작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고 준비해 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여행 준비를 하듯 유쾌하거나 설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도 막막할 테지요. 하지만 우리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지인의 죽음을 한 두 번 겪고 나면 생각하게 됩니다. '준비를 해두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그때서야,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의 죽음을 준비할 필요성도 느끼게 됩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다양한 상황 설정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딕 존슨 이즈 데드(Dick Johnson is dead)>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딸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여러 가지 상황을 제시하여 죽음을 미리 경험해보게 하고 이를 카메라에 담은 내용입니다. 감독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7년 전 세상을 떠났고 이제 정신과 의사로 일하다가 은퇴하게 된 아버지는 경증 치매를 앓으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상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촬영한 다큐멘터리는 아닙니다. 아버지가 걸어가다가 넘어져 죽는다거나, 집 계단에서 떨어져 죽게 되는 상황을 아버지와 대역배우의 연기를 통해 연출해 내고, 아버지가 천국에 있다는 설정 하에 세트를 제작해 인위적인 촬영을 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모두 아버지가 죽음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가공한 설정과 실제 생활이 교차하여 벌어지는 이 작품만의 특수성 때문에 영화에서는 색다른 입체감이 느껴지지고 영화 작품적으로 신선함을 줍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고찰해 보려고 영화를 찾아본 관객의 입장에서는 약간 혼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실제 아버지가 죽는 장면이 나왔다가 다시 살아난 아버지를 보니 그것이 연출이었음을 깨닫고, 이것이 극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영화를 한창 보는 중에서야 서서히 깨닫게 되니까요. 


그러나 영화의 독특한 구성과 개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식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질병과 나이 들어가는 과정, 죽음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카메라에 소상히 담으려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딸인 커스틴은 자신이 30년 동안 다큐멘터리 감독을 했지만 엄마의 건강했던 모습을 찍은 영상은 거의 없었다는 데 자책하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런 아쉬움이 아버지를 촬영하게 된 이유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지요. 그래서인지 커스틴은  작품 속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천국 장면 안에서는 아버지의 평소 소원도 성취하도록 연출합니다. 이런 딸의 요청에 일반인인 아버지 딕 존슨 씨가 어색해하지도 않고 놀라운 표정을 생생하게 연기는 모습이 압권입니다. 


질병도 죽음도 모두 생의 한 부분

한편,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아버지 딕 존슨 씨의 죽음에 대한 태도가 인상적입니다. 아니, 오히려 삶에 대한 태도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딕 존슨 씨는 신기할 정도로 담담하게 촬영의 모든 과정을 받아들이고, 또 딸과의 대화에서 삶에 대한 단호함도 보여줍니다. 오랜 시간 살아온 집을 떠나야 하는 데에 미련이 많이 남지만 딸과 살기 위해서는 집을 처분하고 뉴욕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너와 함께 사는 것은 집을 바꿀 충분한 이유가 되지." 

라고 말하거나, 커스틴이 치매가 걸렸던 엄마가 요양원에 가기 싫어했던 기억을 상기하자 지독할 정도로 담담하게 

"비슷한 일이 우리에게 또 일어나고 있구나"

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 삶을 포기하잖아요. 아버지는 어때요? 엄마와 같은 상태가 되어도 계속 살고 싶으실 것 같아요?'라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나는 사는 게 좋거든. 하지만 너에게 언젠가 나의 안락사는 허락해 줄게. 허허"

라고 농담처럼 대답하는 모습은 딕 존슨 씨가 삶과 죽음에 대해 행복하고도 편안한 태도로 일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매우 흔하게 '아프면 죽어야지' '치매 같은 병에 걸린다면 난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대조적이지요.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이 건강관리를 매우 중시하고 나이 들어도 젊음을 유지하는 이들을 찬양하는 것은 일견 매우 바람직한 태도처럼 보이지만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이러한 생각에는 또 다른 관점이 깔려있습니다. 질병을 건강관리를 제대로 못한 데 대한 결과처럼 죄악시하고 환자가 된다는 것이 마치 인생을 살 가치조차 잃는 것이라 터부시 하는 생각 말이지요. 이런 태도는 현존하는 이 세상 모든 '환자'의 삶의 가치를 부정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딕 존슨 씨를 돌보게 된 요양보호사는 30년 간 10여 명의 환자를 돌본 경력자입니다. 그녀가 이야기하죠. 

"제 경험상, 질병에 놓인 상황을 받아들인다면 삶은 훨씬 쉬워집니다. 상황을 부정한다고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특히 질병 상태와 사람도요.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 태도야 말로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막상 질병이 나에게 왔을 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것입니다. 무조건 '내가 아파서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어떻게 죽어갈 것인지 죽기 전에 아프게 된다면 난 가족들에게 어떻게 도움받고 살아야 할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질병과 죽음에 대한 단단한 마음 근육을 갖는데 도움이 됩니다. 


여러 번 돌려보는 죽음 시뮬레이션

엄마를 먼저 보내고 엄마의 모습을 담아두지 못했던 것을, 엄마를 보내는데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 한 딸은 아버지를 보내는 시간을 좀 더 알차게 쓰기 위해 이 영화의 제작을 선택합니다. 아버지도 이 영화를 촬영하고 딸과 소통하는 과정 속에서 삶에 대해 좀 더 유연한 평정심을 얻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보는 것은 현재의 삶을 안정적으로 바라보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는 딕 존슨 씨의 장례식 장면이 나옵니다. 딕 존슨을 기억하는 이들이 일어나 추도사를 하기도 하고 딕 존슨 씨의 절친한 친구가 울먹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며, 드디어 딕 존슨 씨가 사망한 걸까?라고 생각한 관객은 장례식장 뒤 편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딕 존슨 씨를 보며 이 또한 딸인 커스틴이 딕 존슨 씨를 '죽인'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속았네!'라며 실소를 머금습니다. 


저는 마을에서 나이 듦에 대해서 고민하는 분들과 '사전장례식'에 대해서 이야기 나눈 적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인생을 살며 꼭 다시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초대해서 파티처럼 장례식을 치러보는 것을 상상해 본 것이죠. 이런 행사를 직접 치러봄으로써 죽음에 대해 더욱 생생하게 미리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시종일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아버지를 '죽인' 커스틴은 이것이 다가올 일에 대한 예측이 될 수 있고 또 그 일을 늦출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 '늦춘다'는 것이 물리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언뜻 실제로 죽음을 많이 생각해 볼수록 생이 길어지거나 혹은 사는 동안 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건강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을 더 의미 있게 생각하게 되니까요. 


<딕 존슨 이즈 데드>는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매우 심도 있게 다룬, 그러면서도 독특한 형식을 통해 유쾌하게 죽음을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질병과 죽음을 준비해보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이 있다면 한 번쯤 영화를 보며 나만의 '죽음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진 : 넷플릭스

매거진의 이전글 연명치료를 둘러싼 가족의 괴로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