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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잔상

도전일까 변덕일까

by 조유리

지금, 여기에 머무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고 미래의 목표를 등대 삼아 현재를 살아가는 게 버릇이 된 나는. 아이들 교육에 있어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썼지만 정작 나는 오십이 되도록 그걸 못하고 있다. 아니, 그걸 도무지 버리지 못하기에 아이들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지난 늦여름, 갑자기 나에게 새로운 일이 찾아왔다. 대학 때 전공이었으나 오랜 시간 멈춰져 있던 나의 외국어 실력을 다시 상기해 내야 했고 집뿐 아니라 내가 사는 지역을 떠나 멀리 출근하는 일이었기에 일하는 날 만큼은 다른 세상에 살다 옷을 벗는 슈퍼맨처럼 변신을 하며 귀가하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집에만 있었던 무료함도, 지겨움도, 답답함도 타계할 수 있었고 잠시나마, 오십이 넘은 나이에, 내가 경력이 단절된 주부로 이 생을 끝맺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는 잠깐의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지금 현시점에서는 이 또한 앞으로 계속할 수 있을 일일지 확신은 없다.


그 일이 잠깐의 새로운 경험으로 멈출지 아닐지는 앞으로의 나의 노력과 또 운에 달려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 일에 신경 쓸 때는 아니다. 미뤄두었던 대학원 과제도 해야 하고 코앞으로 다가온 큰아이 입시 관련해서도 함께 도와줄 일이 많다.


내가 그 새로운 일을 시도하도록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직은 다시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오십대라는 나이에 대한 조급함, 문예창작 대학원을 다니며 가만히 앉아 글만 쓰고서는 어떤 ‘성과’를 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 집과 동네를 벗어나 사회를 만나고 싶다는 욕심, 그리고 돈도 좀 벌어야겠다는 마음.


몇 달의 일을 지나 지금 시점에서 남은 건 내 능력에 대한 강한 의심과 나이에 대한 자괴감이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나의 현재 능력과 상관없이, 인생을 살아오며 보고 들은 것이 많은 만큼 일에 대한 기준도 더 높아졌기에 일을 할 때의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도 업무 환경에 대해서도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 엄마를 보며 나이듦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살자고 다짐했지만 사실 지금은 어떤 것이 ‘자연스러운 나이듦’인지, 이 나이에 내가 있을 곳은 과연 어딘지 헷갈리는 상태다.


요즘은 고민과 우울이 마음을 점령할 때만 글이 써진다. 이러니 무슨 작품 활동을 하겠나. 쓰는 것은 엉덩이 힘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요즘 엉덩이를 붙이지도 들썩이지도 못하고 여전히 방황만 하고 있다.


나는 항상 '그 나이에 그런 시도를 하다니 대단하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이 시도가 도전이기보다는 진득이 한 가지 일을 하지 못하기에 벌리는 변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한 없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이번 일도 새로운 분야에 대해 한 번 알게 된 것은 앞으로 글 쓰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그런 소박한 결과만 남긴 채 아직은 소득 없이 그렇게 일단락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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