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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종은 Apr 18. 2021

생일선물로 시간을 받고 싶어

출산 후 첫 생일

“생일 선물로 갖고 싶은 거 있어?”


생일이 다가오자 남편이 물었다. 아... 벌써 내 생일인가? 하루하루 아이 키우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더니 생일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매년 생일을 설레며 기다렸었는데, 어쩌다 생일인 것조차 모르고 있었을까.


생일선물을 고를 럭키타임. 남편은 아기 돌보느라 고생인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해줄 눈치였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갖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은 뭘 사봤자 쓸데가 없었다.


예쁜 귀걸이를 사달라고 할까 싶다가도 어차피 아이 안다 보면 하지도 못 하니까 패스. 갖고 싶던 목걸이가 있긴 하지만 이것도 아기가 잡아당길 테니 패스. 이때다 싶어 가방을 골라볼까 하지만, 어차피 아기와 있다 보면 에코백만 들 테니 패스. 내가 갖고 싶은 게 뭐가 있을까 암만 생각해도 특별한 게 떠오르질 않았다. 내가 갖고 싶은 거라... 간절히 원하는 게 딱 하나 있긴 했다.


“나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자유시간.”


나 혼자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싶었다. 아무리 남편이 아이를 봐준다고 해도 함께 있다 보면 어느새 아이는 나를 찾고, 누워있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원래 침대에서 하루 종일 뒹굴거리는 거 되게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아이 낳고는 뒹굴뒹굴도 쉽지 않다.


남편은 자유시간을 선물하고 싶어 하는 마음만 가득 주고 일터로 나갔다. 육아에 치이는 나를 안타까워했지만, 정작 남편도 업무상 2주간 하루도 쉬지 못하고 출근 중이었다. 내 생일이라고 예외는 없었고 그는 미안해하며 서둘러 출근했다. 별 수 있나 싶어 어제와 똑같이 아이를 보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고 엄마가 오셨다. 엄마는 오늘 병원 가야 해서 못 오신다고 했었는데! 엄마는 딸이 생일에 혼자 집에서 애 볼 걸 알고는 병원 예약을 미루고 미역국을 끓여주러 오셨다.


“그냥 시켜먹을까? 생일이니까 국수 먹자. 짜장면 먹을래?”


미역국 거리를 한가득 들고 오신 엄마가 부엌 상태를 보더니 배달시켜먹자고 말을 바꾸셨다. 요 근래 애 본다고 청소를 못 했더니 부엌은 요리를 전혀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엄마는 지금껏 본 집 중에 가장 폭탄 맞은 거 같다며 안쓰러워하셨다. 누가 아기를 좀 봐줘야 청소라도 할 텐데, 이제 잡고 서고 손마저 떼려고 하는 아기를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니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한 번은 잘 잡고 서있겠거니 하고 내 할 일 하고 있었는데, 쿵 소리와 함께 넘어져 머리를 부딪힌 적 있다. 그 이후로 아기가 서면 무조건 아이 옆에서 지키고 있는다.


엄마와 함께 짜장면 파티(?) 하고 나니 아기가 졸려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때다 싶어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나가셨다. 오늘은 생일이니까 밖에서 아기 재우고  동안 집에서  쉬라는 배려셨. 나도 모르게 입가에 번지는 미소.


자유시간이다!!


일단 아기가 있는 동안 못 봤던 TV를 크게 틀었다. 내가 얼마나 TV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던가. 잘 때도 꼭 TV를 틀어놓고 자고 주말이면 하루 종일 TV만 보곤 했는데, 출산 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기사로만 보며 재미있어 보였던 드라마를 틀었다. 맙소사 너무 재미있다.


그리고 청소를 시작했다. 난장판이 된 집안을 꼭 치우고 싶었는데 드디어 치운다. 커피머신 내부도 씻어야지 씻어야지 했는데, 드디어 속 시원하게 청소하고 쌓아놓은 택배박스도 정리해서 분리수거했다. 중간중간 TV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면 멍하니 보다가 혼자 오두방정도 떨며 빠르게 치워나갔다.


띠띠띠띠


청소를 끝내고 이제 좀 누워서 제대로 시청해볼까 하는 찰나에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아기에게 TV를 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후다닥 TV부터 껐다. 이내 엄마와 아기의 옹알옹알 소리가 들렸다. 한 시간의 자유시간이 끝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고 싶은 일들을  해서 그런지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TV 너무 재미있었고, 깨끗해진 집도 좋았다. 엄마가 주신 자유시간이라는 선물이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기껏 엄마의 희생으로 선물해주신 시간에 한다는  고작 청소였나 싶어 씁쓸해졌다. 이것이 가정주부인 건가.


엄마는 깨끗해진 주방에서 미역국과 불고기를 만들어주시고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나 혼자 밥을 차려먹었다. 근데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먹으니 이상하게 울컥 눈물이 났다. 아기가 보고 있어 울지 않으려는데 묘한 기분은 자꾸 눈물을 밀어냈다.


아이를 낳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진다. 그게 철이 드는 걸까. 생일엔 언제나 내가 축하받는 것만 생각했었는데, 새삼 낳아주신 엄마께 감사하다는 마음이 든다. 출산 후 맞이하는 첫 생일. 엄마께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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