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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종은 Jan 10. 2022

가정의 평화는 체력으로부터

 운전을 하면 본성이 나온다고 한다. 운전대만 잡으면 얌전하던 사람이 험악해지기도 한다는데, 이런 말이 나오면 난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난 운전대만 잡으면 반대로 엄청나게 친절해지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괜스레 나의 본성은 참으로 괜찮은 사람이구나 싶어 자존감이 올라간다. 


 하지만 반대로 지하철만 타면 까칠 보스가 된다. 새치기하는 사람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어깨에 힘을 꽉 주기도 하고, 누군가 밀치기라도 하면 기분 나쁜 티를 숨기지 못한다. 차를 타고 갈 땐 이 사람 저 사람 다 껴주고 이해심이 많아지는데 왜 지하철을 타면 자비가 사라질까. 


 정답은 나의 처지에 달려있었다. 나는 내 몸이 편하면 한없이 친절하지만, 피곤하면 한 까칠 해지는 타입이었다. 운전할 때의 나의 처지는 얼마나 안락한가. 편히 앉아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더우면 에어컨을 추우면 히터를 틀면 그만이다. 하지만 지하철은 흔들리는 차 안에 사람들과 부대끼고 이 한 몸 건사하기가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내 몸이 안락하니 배려도 할 수 있던 거다. 


 생각해보면 남편과 싸울 때도 그랬다. 평소 싸울 일이 거의 없는 사이지만,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니 우리가 싸우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았다. 바로 나의 피곤함이다. 평상시엔 그냥 넘어갈 법한 일도 피곤한 상태에선 날카롭게 반응하게 되니, 남편과 다툼이 발생하곤 했다(남편은 싸움이 아니라 내가 일방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 사실을 깨닫고 남편에게 대단한 걸 발견했다는 듯 말했더니 남편은 태연하게 말했다. 


 "몰랐어? 그래서 연애 때부터 여보가 기분 안 좋으면 맛있는 거 먹였는데. 그럼 금방 풀리더라고."


 전혀 몰랐다. 내가 피곤하면 짜증 내는 것도 몰랐고, 그럴 때마다 남편이 나에게 무언갈 먹였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속절없이 또 맛있는 게 입에 들어갔다고 금방 풀어지다니. 너무나 본능적인 모습을 들킨 거 같아 부끄러웠다.


 "피곤하면 짜증 나는 건 당연한 거야. 그걸 표현하느냐의 문제지."


 남편의 말은 또 한 번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한 건데, 내 나이 서른 중반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 이런 것조차 컨트롤 하지 못 하다니. 


 그래도 일단 알았으니 한 단계 나아진 것 아니겠는가. 내가 남편에게 짜증 나는 이유는, 사실 남편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피곤한 거였다. 어쩐지 달라진 건 없어도 조금 쉬고 나면 혹은 잘 자고 일어나면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기분이 풀어지곤 했다. 


 이후 나는 남편에게 감정이 올라올 때면 일단 내 몸을 편하게 만들었다. 솔직하게 내가 지금 짜증이 나려고 하니 잠깐만 쉰다고 말하고 방에 들어가 눕는 거다. 그럴 때면 남편도 내 상황을 이해하고 최대한 아이가 엄마를 찾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럼 또 나는 오래지 않아 웃으며 방을 나올 수 있었다. 한 번은 싸움이 불붙기 직전, 배가 고파서 짜증 난 것 같으니 일단 뭐 좀 먹겠다고 스톱한 적도 있다. 물론 배가 든든해지니 같은 말이라도 좋게 말할 수 있어 싸움을 피할 수 있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쉽게 지치지 않는 체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만화와 드라마 '미생'에도 나오지 않는가. 정신이 무너지지 않는 체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운동이 힘들다면 보약이나 영양제라도 챙겨 먹어라. 당신의 가정에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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