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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영 Aug 27. 2024

간식타임

사 학년 오빠들과 편의점 합석하기


늘 가던 도서관 옆에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교들이 모여 있다. 책을 읽다 지쳐서 바람을 쐴 겸 편의점에 들렀는데, 마침 초등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와 편의점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요즘 아이들이 예전처럼 분식집 대신 편의점을 찾는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한 줄로 된 간이테이블에서 저학년으로 보이는 앳된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간식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 뒤로 생생우동이며 각종 화려한 간식을 사 들고 들어온 4학년 남학생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빈자리가 없는 걸 보고는 언짢은지 언성을 높였다.


"여기 우리보다 높은 사람 있어? 얘들아 다 먹었으면 자리 좀 비켜봐!" 고학년 아이들의 말이 편의점에 울려 퍼졌고, 저학년 아이들은 슬며시 먹던 음식을 움켜쥐고는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사라졌다.


그들의 시선이 내게도 머물렀다. 내가 서 있던 테이블 맨 끝자리도 그들의 '영역'이어야 했다. '나는 4학년 보다 높은 사람인가?'는 철학적인 질문을 되뇌게 된다. '높은 사람'의 의미에 대해서도 잠시 고민을 하기에 이르렀. 눈치가 보였지만, 4학년 오빠 눈살에 쫓겨나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아버렸다. 그렇게 어색한 합석을 하며 간식을 마저 먹고 일어섰더니 중학생들이 하교하고 편의점으로 들어온다. 높은 사람들이다.


그날 오후, 마흔이 넘은 아저씨에게 연락할 일이 있었다. 중요한 행사를 잘 치렀냐며, 내가 아는 지인들도 잘 환대했냐며 물어야 했다. 그는 "별일 없었어. 그런데 신입은 인사를 안 시키는 텃세가 있어서  그 친구가 고생 좀 했겠지 결국은 인사 시켰어."라고 답했다. 새로 온 사람을 환대하기는커녕, 인사를 안 시키는 텃세라니 이게 무슨 모지리 같은 논리인가. 그리고 아량을 베풀듯 인사를 하게 해 줬다니. 순간 4학년 오빠들의 텃세와 사십이 넘은 아저씨의 유치한 텃세가 닮아 보였다.


마침 오늘은 딥페이크 범죄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4학년 오빠도, 마흔을 넘긴 아저씨도, 자기를 속상하게 했다고 딥페이크 범죄에 가담해 타인을 능욕했다는 사람들도, 그런 범죄에 동참한 약 22만 명이 넘는 사람들 모두 같은 흐름 속에 있는 것 같았다. 피해자에는 친족도 같은 동급생도 있으며 무료 또는 장당 650원에 쉽게 범죄를 저지르고 낄낄댔을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기가 죽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기가 죽을까 두려워 '텃세' 같은 방어기제로 입지를 다지려 하고, 기를 죽이면 '능욕'하며 되갚아 주는 걸까.


이 모든 것이 일맥상통. 항상 특권을 누려온 사람들은 평등을 억압처럼 느낀다던 혹자의 말이 생각났다. 모든 남자가 그러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세대별로 인수인계하지 않고도 본능적으로 자리 잡은 그 텃세와 알량한 자존심, 어쩌면 여자로 태어난 내가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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