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선후배로 만나 10년 지기인 A와 만나면 늘 유치해진다. 서른이 넘은 남녀가 만나 "선배, 사랑은 도대체 뭘까요?"라는 물음에 서너 시간을 이야기하고도 성과 없이 각자의 집에 돌아간다거나, "선배, 투어스 뮤비를 보고 청춘에 휘말렸어요. 그래서 포카는 어디서 사는 거죠." 하고 날아온 메시지에 최선을 다해 답장한다. 서른이 넘으면 부동산이나 육아, 정치 이야기가 대화의 주를 이룰 거라 생각했던 것은 경기도 오산.
덕질이야말로 어른스러운 취미가 아닌가. 나는 애정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아이디어가 샘솟고,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무한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당신이 바라는 것은 다 해줘야 직성이 풀린다.
무언가 끊임없이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동력 속에서 기획하고, 조율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즐긴다. 가끔은 자칫 내 마음이 앞서나갈까 봐 상대의 보폭에 맞추려고 더 노력해야 한다. 상대가 원하는 방향과 속도로 함께 하는 일. 현업과 취미생활은 전혀 다른 일이지만 내가 일을 풀어가는 프로세스는 비슷하다.
요코하마에 다녀왔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 보러 4시간 달려가 5분 만나고 돌아오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는 아무 효용도 없는 멍청한 행위라 생각할 테지만,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인 게 우리의 삶 아니던가. 사랑은 '굳이'가 '기꺼이'로 바뀌는 일이니, 기꺼이 그렇게 해왔고 나도 그런 사랑을 받아왔다.
이 친구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잔뜩 긴장한 채 무대를 선보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덧 10년이 흘렀고, 꿈에 그리던 공연장에 서게 됐다. 해외 공연은 가본 적이 없었지만 이 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
출국 당일 저녁에 하는 공연이라 일정이 삐끗할까 봐 하루 종일 정신없었는데,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에 서있는 이들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낯선 곳에서 가장 낯설지 않은 게 너희라니 참 이상하지.
아직까지도 나는 덕질이 가장 플라토닉 한 사랑 중 한 갈래라고 본다. 그가 편지 모서리에 베일까 봐 편지 귀퉁이를 다 잘라내고 편지를 부치는 그런 마음.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말에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나라에서 영상통화를 기다리는, 그런 효용 없는 행위들을 보고 나는 자연스레 체득해 왔다. 이젠 어중간하게 그들에겐 낄 수도 없는 애정과 재력으로 인해 마음으로 응원하는 게 전부지만, 여전히 그들이 원하는 속도와 방향의 꿈을 이뤄가기를 바란다.
공연 끝무렵 닛산 공연장 위로 불꽃놀이가 쉴 새 없이 터지는 걸 보니 마음이 아득해졌다. 예전에 그들에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7만 명이 가득 찬 이곳 수많은 사랑들 중에 내 것이 가장 작은 사랑이길. 애지중지하는 마음을 담아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