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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양로 Nov 27. 2021

X세대의 마지막 조언 (3)

평가, 승진, 보상...그리고 알아둬야 할 최근의 변화

秀優美良可


경쟁, 피할 수 없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제 아이들은 반에서 등수를 재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최근 초등학교는 시험도, 서열도 없이 모두 화목하고 조화롭게 지내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네요. 이에 반대하는 세력의 목소리 역시 만만찮습니다. 학교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일부 혁신중학교)들에게 경쟁보다 화합을 가르치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조삼모사일 뿐, 결국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며, 나중에 결국 치열한 경쟁에 내몰릴 아이들이 나약해지고 뒤쳐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지요. 결국 초등학교에서 매달 치르던 월말고사는 학원에서 보는 시험으로 대체되었고, 점수에 따른 서열도 학원에서 점검받고 있습니다. 과거 학교의 기능이 학원으로 이전됐을 뿐, 우리 자녀들에게 학교에서의 조화와 화합의 교육철학이 실제 잘 적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자녀들에게 경쟁 코드만을 강조하는 부모들이 꼭 잘못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방금 말씀드렸듯, 결국 세상은 치열한 경쟁이 좌우하는 곳이니까요.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도, 대학을 갈 때도,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도, 다니던 회사에서 이직을 할 때도 모두 치열한 경쟁이 붙습니다. 과거 1996년까지 불었던 활황의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놀아도 아무 데나 골라서 취업하던 시절 이야기는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이니 여기서 굳이 자세히 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사실상 IMF 이후 '경쟁'이 테마가 되었습니다.


이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경쟁은 바로 취업 전쟁일 것입니다. 100:1의 경쟁률은 이제 예삿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이 대졸 신입사원 공채로 한 대기업에 서류를 접수할 때 채용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볼까요? 채용 규모가 100명이라고 할 때 100:1이라 함은 곧 1만 명이 서류를 접수했다는 뜻이 됩니다. 100:1을 넘게 되면 채용담당자는 신이 납니다. 우리 회사에 정말 많은 대졸 구직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고, 실제 지원한다는 뜻이니 우수한 인재들을 더 많이 뽑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전보다 높은 경쟁률로 서류접수가 진행되었다고 하면 CEO는 흡족해합니다. 어떤 기업들은 우수대 출신자들의 비율을 따로 떼어 분석해 보고하기도 합니다. 최근 서비스 중인 온라인 채용시스템은 워낙 뛰어난 기능을 제공해서, 보고 싶은 데이터들을 얼마든지 가공하여 채용담당자에게 레포팅 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을 분석하는 다양한 툴을 활용해 다양한 능력을 수치화하고, 그중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만을 뽑을 수 있도록 시스템이 모든 것을 시각화(Visualize) 하고 레포팅 해줍니다. 가만히 그 시스템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떻게 이 회사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섬뜩할 때도 있습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AI가 구술면접까지 대신 진행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요즘 구직자 입장에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다시 지원한다면 난 다시 합격할 수 있을까? 글쌔요. 자신이 없네요.


한정된 자원이 만들어낸 제도, 상대평가


그러나,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해도 경쟁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시작이지요. 직장생활의 가장 큰 모순을 낳는 직장생활 만병의 근원, 바로 평가와 승진 때문입니다.

많은 회사들이 직원 평가방식으로 도입한 상대평가는 말 그대로 아무리 잘했던 못했던 상관없이 조직 내에서 1등부터 꼴등까지 세워놓고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것입니다. SABCD로 대표되는 단계별 등급제로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것이죠. S는 5~10%, A 10~15% B 50% C 10~15% D ~5% 등으로 비율로 정해 운영하는 회사들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무슨 돼지고기 쇠고기도 아니고, 사람을 ABC 등급으로 나누다니요. 마트에 가보면 한우 쇠고기도 1등급에서 +(plus)가 몇 개 붙었는지로 등급을 따집니다. 원뿔짜리, 투뿔짜리 한우네 하는 게 바로 그 말이죠. 우리를 위해 도축된 소를 위로라도 하기 위한 것일까요? 1등급이라는 공통된 호칭을 부여받은 우리의 한우들은 그나마 그 죽음이 헛되어 보이진 않고 되려 명예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매일 마시는 우유조차도 1등급 A가 아닌 우유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1년간 힘들게 근로한 대가로 듣기조차 혐오스러운 B, C, D를 부여받는 자가 무려 70% 이상 됩니다. 참으로 소, 닭, 돼지... 심지어 우유만도 못한 등급이네요.

B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A급에 해당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B급 감성'은 뭔가 수준이 떨어지고 주류에서 벗어난 병맛 느낌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B급 영화'라는 뜻은 저예산으로 대충 찍었는데 나름 그 분야만의 독특한 느낌이 있어 찾는 이가 있지만 A급으로는 절대 인정해줄 수도 없고 아무리 잘해도 B급은 B급이다 라는 낙인효과를 발휘하는 용어입니다. 평가결과로 B를 받으면 팀장들은 대부분 '그래도 잘 줬다'라고 말합니다만, 글쌔요.... 받는 사람 기분은 딱히 그렇지 않을걸요? B급이니까요.

그보다 한 단계 낮은 C라는 것은 정말 보면 볼수록 추악한 알파벳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사 용어로 C-player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퇴출 대상이라는 뜻으로 통용되는 의미이지요. A급도, B급도 안돼서 C급이라는 뜻은 사실상 거의 폐기되어야 하는 수준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럼 D는요? 오우.... 누군가 B(irth)와 D(eath) 사이에는 C(hoice)가 있다며 인생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D를 썼습니다만, 그 D를 실제 평가결과로 받아 든 분들의 심정은 그야말로 Death itself입니다. 사실상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한 느낌인 것이죠.

평가결과로 A를 받아 든 자들은 '이제야 자신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기쁨이라기보다, 이제야 정상궤도로 회복됐다는 안도감 정도입니다. 그리고 좁디좁은 승진의 문턱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기대감에 작은 희망을 품게 됩니다.

S를 받아 든 자들은 그야말로 인생의 환희를 경험하게 됩니다. 'S... 그래 그 S. S모 그룹이 S급 인재를 영입해야 한다며, 1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며 인재전쟁을 선포할 때 말했던 그 S급 인재의 S!... 내가 그 S를 받았어!  SO SEXY & SUPERIOR "S"!!!' 워워워~ 네, 더 이상의 표현은 삼가도록 하죠.

평가 때가 되면 가장 난감한 사람은 바로 평가권자, 즉 팀장들입니다. 정해진 비율대로 등급을 매겨야 하다 보니 우수한 팀원들임에도 불가피하게 나쁜 평가등급을 받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많은 팀장들이 평가 스트레스를 하소연할 때 좋은 사람 뽑아놓고 왜 억지로 낮은 등급을 주게 하느냐는 의견이 많습니다. 왜냐고요? 여러분은 실제로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S를 주고 싶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D를 받도록 제도화한 회사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평가등급은 그 해 성과급, 그리고 임금인상률에 영향을 미치고, 승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미안해. 내년에는 잘 챙겨줄게. 이번에 박 대리가 승진해야 할 것 같아. 애도 있는 가장인데...."


평가가 끝나고 낙심해 있는 팀원들에게 삼겹살을 구워주며 소주 한 잔 부어주며 한 말이지만, 팀원들은 차라리 안 들었으면 했던 말을 들어버렸네요.


"아니, 내가 일을 열심히 했고, 결과도 좋았고, 그에 따르는 정당한 평가를 받고 싶다는 건데, 그런 식으로 챙겨주기용이면 평가란 게 도대체 무슨 의미와 소용이 있습니까요?!"


라고 팀장님에게 외치고 싶지만, 결국 쓴웃음으로 내년을 기약하며 좋게 마무리합니다. 팀장님도 답이 없으신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왜 하필 그게 나야'라는 생각은 머리를 떠나질 않습니다. 아무튼 평가의 상처는 돼지고기 정도로는 회복될 상처가 아닌 듯 싶군요. 상대평가 제도 하에서 팀장들의 조직관리란, 이렇듯 열심히 일했지만 안 좋은 고과를 받아 낙심한 팀원들을 위로하고, 한 명 씩 돌아가면서 안 좋은 평가를 주는 방법뿐입니다.  


물론 회사도 할 말은 있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차등분배 해야 하고, 더욱이 승진이란 보직과 연계가 되며 피라미드 조직 구조로 형성되는 것이 이상적이기 때문에 승진에도 제한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직원 입장에서) 불합리한 제도 속에서도 우수한 사람은 평가를 잘 받고 승승장구하기에 (회사 입장에서는) 나름 합리적인 인재 분별 방법으로 오랜 시간 (회사의) 사랑을 받아온 것이 바로 상대평가 제도입니다.


"아니, 경쟁사회에서 그럴 수도 있지, 이게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저 상대평가 제도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당신은 혹시 S만 받아오신 임원 승진 예정자이신가요? 그럼 100:1의 경쟁률을 뚫고 지극히 우수한 사람만을 고르고 골라 뽑은 그 우수한 인재집단의 70%가 B, C, D를 받아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자신이 평범 그 이하라고 느끼고 있는 상황은 과연 회사에 득이 되는 것일까요? 우수한 사람들만 골라 뽑아놓고, 그들을 일정 비율대로 갈라내어 그중에서 15~20%만 우수하다고 공식 인증하고, 또 그보다 못한 평가를 받아 든 상처 입은 직원들의 마음을 달래주어야 한다며 또 다른 방법을 고민하는 많은 회사들... 바로 자승자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절대 평가 등판


그런데 반갑게도 최근 직장인들이 가장 불만으로 생각하고 있던 문제 중 하나가 서서히 해결되는 분위기입니다. 바로 절대 평가 도입입니다. 절대 평가는 SABCD라는 등급의 비율을 정하지 않고, 자신의 성과만큼 등급을 받는 제도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도 이제 잘만하면 모두가 1등급 A를 받을 수 있게 된 거군요!

하. 지. 만. 기뻐하긴 아직 이릅니다. 평가의 방식만 바뀌었을 뿐, 경쟁의 원인이 되는 한정된 자원. 즉 승진 quota와 성과급, 급여 인상분은 여전히 제한된 채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절대 평가가 도입되면 모두 행복한 상상을 합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한 만큼 제대로 된 평가등급을 받고 모두가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함께 승진하고 월급도 많이 받는 아름다운 세상! 아니 승진과 보상이 무슨 서울 수도권 아파트도 아니고 모두가 다 오르기만 한다는 게 말이 될까요? 다시 강조하지만 사실상 변한 건 없습니다. 승진할 수 있는 티켓은 여전히 부족하고, 성과급 펀드의 규모도, 임금인상률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럼 아예 평가를 없애버리고 모두 똑같이 공평하게 승진하고, 똑같은 급여 인상을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아쉽게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한정된 자원의 차등분배, 그리고 이를 위한 성과와 역량 차의 구분은 회사가 평가제도를 운영하는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죠.  절대평가로의 전환이 딱히 대단한 솔루션이 아닌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절대평가든, 상대평가든, 그 어떠한 기적의 논리와 제도가 나타나든, 제한된 승진율, 정해진 성과급 펀드, 제한된 인건비 기준과 임금인상률이 존재하는 한 효과는 제한적입니다. 물론 인사제도가 선진화되어야 한다, 인사가 바뀌어야 한다 라고 말하지만 회사가 통제하려는 것도 결국 돈이고, 직원들이 원하는 것 또한 돈입니다. 그럼 이 평행선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선은 앞서 말씀드린 '한정된 자원'을 더 늘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노조가 회사와 교섭을 하던,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 노사발전협의회 협의를 하던, 승진도 좀 더 시키고, 성과급도 팍팍 주고, 급여 인상도 많이 시켜주도록 결정하면 좋겠다는 것이죠. 많은 회사들이 기업의 적정한 수익을 보장하는 적정 수준의 인건비율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판매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따라 이 인건비율은 모두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수익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경우 급여가 적고, 수익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경우 급여가 높다는 점입니다.



위 표를 보시면 SK에너지라는 회사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아, 많이 주는 데구나? 그런데 우리는 왜 저만큼 안 줘? 우리도 저만큼 줘!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은 사실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는 사람입니다. 쟤네는 저만큼 주는데 우리는 왜 그만큼 안주냐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질문이기에 여기서는 왜 그것이 어리석은 질문인지는 설명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비단 SK에너지뿐만 아니라 상위권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름집이 포진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유화학계열 회사들은 흔히 말하는 플랜트 산업의 대표입니다. 유화 플랜트 산업은 투자가 고용과 비례관계를 갖지 않는 산업 중 하나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산을 늘리기 위해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하더라도, 실제 그와 비례하여 고용이 늘어나진 않는 산업이라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설비가 자동화되어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생산량이 늘어나고 매출과 수익이 늘어도 인건비는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임금을 주고도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 인건비의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급여를 줄 수도 있겠지만 회사는 동종업계와 타기업(대체로 같은 대기업 그룹 내 계열사)과의 급여차 등을 고려하여 적정 수준의 임금인상률, 성과급 지급률 등을 노사 간 합의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회사는 적어도 사전에 노사가 합의한 로직대로 보상 수준이 정해지기 때문에 큰 불만 없이 임금협상을 마무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죠.


그러나 문제는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회사들입니다. 평균 연봉이 억대에 달하는 저런 회사들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는 꿈의 직장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회사의 수익과 무관하게 결정되는 급여 인상분이나 성과급 지급규모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지요.

그럼 왜 이렇게 한정된 자원, 즉 승진 TO, 임금인상률, 성과급 지급률 등은 늘리기가 어려운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직장인들은 이러한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한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릅니다. 승진은 결국 급여 인상과 직결되기 때문에 승진도 결국 돈문제가 됩니다. 성과급 지급률(혹은 액), 승진 TO, 그리고 승진 작업이 끝난 이후 전 직원들에게 차등 적용될 임금인상률까지 모두 묶어 한 해 동안 쓸 인건비를 결정받고 그 결정된 인건비를 절대로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바로 인사의 역할인 것이죠. 따라서 인사담당자로서도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제한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과급을 올해 많이 주자면 임금인상률을 낮춰야 합니다. 승진을 많이 시키려고 한다면 성과급을 줄이던지 해야겠지요. 이렇게 마치 롤플레잉 게임 캐릭터 생성 시 제한된 능력치의 그래프를 조절하는 것처럼 어느 것을 늘리면 어느 것은 줄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 인사담당자들의 딜레마입니다. 결국 한정된 자원을 늘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두 번째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입장은 바로 모두가 패자가 되는 방법입니다. 잘난 놈도 없고 못난 놈도 없게 만드는 방법이죠. 절대평가 도입의 폐단이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방금 전 말씀드린 대로 어떤 리더도 자기 부하직원들이 나쁜 평가를 받게 되길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같이 고생한 것을 알고 있고, 또 잘 챙겨주고 싶기 때문이죠. 물론 여기서 정말 일을 못하거나 문제가 되는 직원에 대한 얘기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상대평가제도 하에서 누군가를 좋게 주면 누군가는 나쁘게 받아야 했던 바로 그 고통을 없애준 것이 절대평가이지만, 절대평가는 사실상 조삼모사 같은 기능밖에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바로 기분 나쁜 사람이 없게 만드는 대신, 모두가 똑같이 손해를 나눠갖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SABCD에 따라서 차등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던 임금인상률이 모두 B를 받게 될 경우 위 그림과 같이 일부가 받던 손해를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당장 누군가 CD를 받아 기분을 잡치진 않았지만 그 누구도 기뻐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세 번째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입장은 바로 의미 있는 몰입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현재 상대평가제도를 적용받는 직장인들의 70% 이상은 모두 BCD를 평가점수로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는 폐해는 실로 막대합니다. 우수한 인재들만 고르고 골라 뽑았지만 실제 그 우수인재집단이 모두 우수한 것으로 인정받을 때는 오직 신규 입사자 입문교육 때뿐입니다. 이들이 자괴감과 패배감으로 조직생활에서 자신감을 잃어가고, 동료를 동료가 아닌 적 혹은 경쟁자로 생각하며 지내게 만드는 것이 조직에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결국 우수한 인재를 선발했다면 이들이 모두 우수한 상태에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돕는 것이 인사제도가 해야 할 역할입니다.


물론 SABCD라는 비인간적 평가 등급제를 의미형 등급제로 바꾸는 회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S는 Outstanding, A는 Exceed expectation, B는 Meet expectation, C는 Need improvement, D는 Unsatisfactory 등으로 바꾸는 것이죠. 그나마 SABCD보다는 더 순화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B를 기대치 충족이라고 표현함으로써 B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의미형 평가등급은 회사별로 다른 표현을 쓰고 있지만 대체로 비슷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직 무자비한 SABCD라는 평가등급 명칭으로 직원들의 기를 죽이고 있는 회사가 있다면 빨리 등급 명칭을 의미형으로 바보시는 게 어떨까요?


직원들을 패자로 만들고,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만이 주목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제도는 직원들의 몰입을 저해하고, 거대한 패배의식을 조직에 심어주게 됩니다. 소수의 엘리트가 필요한 현실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다수의 직원들이 상처를 입은 상태를 방치하는 것 또한 현명한 조직운영 방법은 아닙니다. 조직 전체에 대한 시야를 가지고 조직 전체가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일하게 만드는 게 아닌, 정해진 게임의 룰 속에서 서로 승자가 되기 위해 내부에 총질을 하는 상황은 지금처럼 시장과 경쟁자들의 상황이 급변하는 시대에 별 소용이 없습니다. 단합해서 외부의 적을 대항하는데 써도 모자를 에너지를 내부 경쟁에 쓰고 있는 바보들의 조직이 맞이하게 될 미래는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지요.


저자의 성적표.. 부모님의 직인을 받아와야 했다


공부좀 했던 어린 시절, 대부분을 '수'로 채운 성적표는 저와 저희 부모님의 자랑거리였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수우미양가라는 5단계 절대평가 등급으로 각 과목별 성취도를 평가받았지요. 저는 미 이하로는 받아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각 등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 뜻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 직장에 다니면서였습니다. 마나 귀한 표현인지....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요.


(秀)- 빼어나다

우(優)- 우수하다

(美)- 아름답다

(良)- 양호하다

(可)- 가능하다


혹시 회사에서 나보다 못한 등급을 받은 동료 직원들을 바라보며 무시하는 마음이 든 적이 있나요? 회사가 만든 게임의 룰 속에서 조금 앞서 있다는 이유로 우쭐함에 빠져 있었던 적은 없나요? 피아식별을 못하고 외부의 경쟁자가 아닌 내부의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아무 문제의식 없이 살아오고 있진 않았나요? 아무리 부진한 성적을 받은 학생이라 할지라도 그 가능성을 꺾지 않는 배려 넘치는 저 등급 각각의 의미를 우리 직장인들, 그리고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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