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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지니 Sep 27. 2023

문지혁 『중급 한국어』 서평

물결자판을 버리지 마세요.

  문지혁의 『중급 한국어』는 자전적 형식으로 내용을 풀어가는 오토픽션(autofiction)이자 장편소설이다. 자서전이나 자전적 소설이 아니라는 점에서 작품 속의 주인공이 실제의 문지혁이 아니다. 작가는 작가와 동명인 인물을 소설에 등장시켜 실존하는 작가의 실재 환경 위에 가상의 인물들을 덧붙여 이야기를 서술한다. 작가의 서사를 무심히 따라다가 보면 독자는 어느덧 작가가 의도한 실재와 가상의 경계에 서서 이것이 에세이는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주인공은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한국으로 돌아온 글쓰기 강사다. 귀국하여 돌아온 날 어머니의 납골당으로 가 인사를 드리며 한국생활이 시작된다. 안치된 어머니의 유골함이 보이는 그 작은 창에 붙여진 포스트잇. 그 위의 익숙한 글씨체에 무심한 시선을 던지는 주인공은, 아내의 납골당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자동차뒷좌석에 남아 아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다 잠든 아버지의 모습 역시 무심히 서술한다. 지방대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는 작가는 실제 강의에서 사용하는 교안을 그대로 소설 속 소재로 삼아 우리에게 글쓰기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쓰기가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여행인 것을 보여주듯이.

"글쓰기는 일종의 여행이에요. 갔다가 오는 것, 이것이 서사의 기본 구조죠." (p.37)


  이 소설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8장 죽음과 애도' 부분이다. 매 순간을 특별히 살지 않더라도 우리는 매 순간 발자국을 남긴다. 소설 속에서 인용된 롤랑 바르트의 소설 『애도 일기』에서 처럼 무심히 나온 한 마디, "Voila!(브알라)". 이것이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p.176)이고 슬픔이라면 어머니의 납골당 유리창에 붙여진 성경구절의 글씨가 바로 그 어머니의 남동생이자 소설 속 지혁의 삼촌의 글씨채라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이야말로 그 추상적이면서도 뜨거운 지점을 발견했던 것이리라. 지혁은 자신의 슬픔을 책 속에 남기지 않았지만, 때로 쓰인 것보다 쓰이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하다(p.191)고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인지 더 눈길이 가는 어머니의 메모.

  '지혁이가 준 선물. 여기에 뭘 적어야 할까?'


   우리는 종종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는지를 고민한다. 나의 사랑을 타인의 사랑의 모습에 비교하며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사랑의 감정을 만드는 세 가지 조건은 서로 있거나 없거나 하면서 생기는데, 아무것도 갖추지 않아도 '사랑'이라고 문지혁은 툭 던져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강의실에서 아무 말 없이 사라져도, 어느 누구도 그것을 모르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기도 하다. 누나를 생각하는 동생이 작은 포스트잇에 꼭꼭 눌러쓴 성경구절로 누나를 애도한 것 역시 사랑이라는 것을 본인이 아니면 그 누가 알랴.


  때로 너무나 무의미해 소설 속 지혁이 아예 없애버리라고 말한 키보드의 물결 자판(~). 때로 이것이 너무 소중하게 쓰일 순간마저 올 수 있다는 것을 소설 속 문지혁을 통해 작가도 깨달아 간다. 우리도 함께 깨달아야 한다. 지금 내가 그 물결 자판이라도, 우리는 언젠가 쓰일날이 있기에 버려져서는 안 되는 인생이라는 것을.



위 내용은 혜화동의 아늑한 곳 "소원책담"에서 진행하는 소원글방 7기의 합평과 퇴고과정을 거쳐 나온 글입니다. 저의 첫 숙제글을 올려봅니다.


제가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선생님께, 그리고 소원책담의 소탈한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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