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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Mar 30. 2024

당신은 신이야

제 자리를 찾아야 숨통이 트인다. 변해야 산다.

설마 이럴 수 있을까.

아들 셋을 키우는 아내 얼굴에서 망연한 표정이 읽힌다. 나까지 포함해서 아들이 넷이 되면 아내 표정은 더 멀고 아득해진다. 거실에서 아내가 소리를 지른다. ‘누구야!’ 소리에 담긴 감정의 층위를 아는 터라 남자 넷은 후다닥 뛰쳐나온다. 거실 한가운데 널브러진 양말 두 짝. 손을 드는 사람은 없고, 남자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본다. ‘자기가 오늘 신은 양말도 몰라! ’ 아내의 일성이 있고 난 뒤에야 가장 자신 없는 일인이 양말을 집는다. 오늘 어떤 양말을 신었는지, 벗어서 어디에 두었는지 남자들은 모른다. 오직 자기 앞만 보는 남자들을 보면서 아내는 망연(茫然)과 자실(自失)의 경계를 넘나 든다.


아빠는 발뒤꿈치, 큰아이는 엄지발가락 부위가 닳는다. 농구를 좋아하고 많이 뛰는 둘째는 뒷발 바닥 오른편이 닳는다. 빨래를 개던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했던 얘기다. 각자 브랜드를 달리하지만, 아내는 닳은 부위만 보고도 누구 양말인지를 가늠한다. 아내는 남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꿰차고 있다. 아이 친구의 동선까지 정보를 주고받는 터라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손바닥 보듯 한다. 아내는 집안 물건이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안다. 쓰고 나서 아무 곳에 방치하는 남자들하고 다르다. 집에서 아내의 위치는 신이다. 신이 아닌 사람이 신의 경지에 올랐으니 그 수고로움과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내는 어느새 틀려도 안 되고, 아파도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완고해진 아내에게 위로는 필요 없다. “당신은 신이야. 그런데 당신이 원해서 오른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아. 내가 노력할게.”


물건은 제자리에 있을 때 의미를 갖는다. 막상 필요할 때 제 자리에 없으면 의미를 잃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땅한 자리에서 마땅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사람 구실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자기 앞만 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맥락에 맞춰 살다 보면 사람 구실과는 멀어진다. 사람에게 마땅한 자리는 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기에, 사물처럼 객관적 위치가 아니라 상호주관적으로 존재하는 자리다. 제 자리를 찾아야 숨통이 트인다.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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