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윌마 May 16. 2024

무엇이 무서웠을까?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생각한다

집 앞 도로를 따라 걷다가 사람만 다니는 네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천을 건너면 버스정류장이 있는 대로가 나온다. 중간에 거치는 네거리는 사람 왕래가 드문 곳이다. 단골이 있다면 기껏해야 애완견을 산책시키는 노부부들 정도랄까. 그곳에 왜소한 사내가 구걸 행색으로 앉아 있었다. 순간 맥락이 닿지 않는 글을 읽는 것처럼 답답했다. 구걸이라면 버스정류장과 마트가 있어 사람 왕래가 많은 대로 쪽이 적당했다. 더구나 나무 그늘 하나 없는 곳이었다. 도와줄 마음도 없으면서 괜한 오지랖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던 길을 재촉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네거리에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구걸하던 사내 이야기가 저녁 식사 자리에 올랐다. 이 동네에서는 보기 힘든 낯선 경험이었을 터였다, “도와준 사람?”하고 물었더니, 대각선에 앉는 아이가 주위를 살피면서 손을 들었다. 둘째였다. 많지 않은 용돈을 전부 준 것 같았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 지나간다더니. 녀석, 참!


둘째 담임 선생님 면담을 다녀온 아내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둘째 반에는 발달장애, 일반장애가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학기 초에는 몇몇 아이들이 장애 친구와 어울려 지냈다. 조금 지나니 거리를 두는 게 눈에 보였는데, 유일하게 우리 둘째만 한결같이 곁을 지킨다는 거였다. 진정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란 게 선생님 말씀이었다. 같이 다니면 둘째는 자기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둘째와 단둘이 미국 여행 중이다. 첫날 숙소는 LA공항 근처에 잡았다. 호텔만 즐비한 곳이라 여행객에게 익숙한 풍경뿐이었다. 피곤했지만 조금 걸어서 다운타운으로 나갔다. 동네 맛집에서 식사를 했다. 마트에서 장을 봤고,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네 주민과 눈인사를 나눴다. 무엇보다도 노숙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웰스파고 입점 건물은 인도에 면한 벽면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직사각형 공간이 있었다. 그런 곳이면 당연한 듯 노숙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인도 한가운데 비스듬히 누워 있던 노숙인은 신발을 신지 않았다. 발톱은 가늘고 길게 휘어져 있었다. 5월이지만 일교차가 커서 해 질 무렵에는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는 날씨였다.


“무서워요.” 숙소에 도착할 무렵 둘째가 남긴 말이다. 얼른 둘째 얼굴을 쳐다봤다. 담담한 아이 얼굴에서 아무런 표정이 읽히지 않았다. 둘째에게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노숙인이 무서웠던 것일까, 아니면 노숙인을 외면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심함이 무서웠던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노숙인을 저렇게 만든 세상이 무서웠던 것일까.

작가의 이전글 무탈하게 자라줘서 고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