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가 빛의 화가라면 카라바조는 빛의 거장이다. 카라바조는 강한 빛과 어둠을 대조적으로 표현해서 장면에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는 방식을 자주 사용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조를 띠게 하는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은 인물의 입체감을 강조하기에 효과적이었다. 정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르네상스 화풍과는 달리 역동적인 구도와 극적으로 생생하게 표현된 주제는 마치 눈앞에 있는 현실처럼 보였다.
카라바조는 이상화되고 권위 있는 전통적 도상에서 벗어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부여하는 등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을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심지어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 사귀던 창녀 얼굴을 그려 넣기도 했다. 흔히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이들을 모델 삼아 어떤 꾸밈도 장식도 없이 평범하게 그렸다. 과한 면도 있지만 정형화된 그림에서 느껴지던 거리감이 사라져서 오히려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카라바조가 자기 얼굴을 그려 넣은 신화 속 신의 모습은 자화상에 가깝다. 그리는 사람에 따라 자화상에 드러나는 자의식은 그 의미를 달리한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에는 주체할 수 없는 삶의 자신감이 풍긴다. 마르크 샤갈은 줄무늬 재킷 차림의 고상하고 확신에 찬 지성인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에는 여유로움과 권위가 담겨 있다. 카라바조의 자화상은 그 자체로 타협 없는 묘사의 정수다. 자기 내면에 부유하는 추악함을 실오라기 하나 가리지 않고 드러내는 일은 보는 이에게 잔혹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빛을 선호하고 어둠을 두려워한다. 카라바조는 반대로 어둠 속에서 ‘자기의 진실’이라는 빛을 찾고자 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로마로 유학을 온 카라바조는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의지할 데가 없는 카라바조에게 로마는 가난하고 외로운 공간이었다. 다행히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 추기경의 후원으로 그의 궁에서 지내며 <점쟁이> <루트연주자> <악사들> <메두사> <바쿠스> 등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그는 종교화와 정물화, 인물화에서 탁월한 천재성을 발휘하며 종교 지도자들과 컬렉터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불안정한 삶은 끊임없이 범죄와 비행으로 얼룩졌다. 카라바조의 사실주의 화풍에 반감을 품은 정적들은 그를 끌어내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결국 실내 테니스 경기 도중 살인을 저지르며 사형선고를 받고 로마에서 도망자가 되었다. 이후 카라바조는 나폴리, 몰타, 메시나, 시칠리아 등을 떠돌며 교황의 사면을 기다렸지만, 끝내 거리에서 사망했다.
기독교적 질서가 지배하는 광기의 시대에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다르게 표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틀린 것이었다. 카라바조는 살아남기 위해 악동처럼 굴었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세상이 미워서 더 악동처럼 행동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동안, 자신을 지지하고 인정해 줄 사람은 자신 뿐이었다.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감추지 않고 그림에 담아 자기에게 돌을 던지면서도, 그 너머에 있을 자신의 진실을 추구했다. 카라바조는 근대 사실주의 회화의 탄생을 알린 작가로,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전시는 내년 3월 27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바로크 미술의 창시자 카라바조와 동시대 거장들의 작품 57점을 소개한다. 이탈리아에서 최고 권위를 가진 우피치미술관 소장품 중 카라바조의 대표작품인 <성 토마스의 의심> <그리스도의 체포> <이 뽑는 사람> 세 점을 포함하여 <묵상하는 성 프란체스코>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등 카라바조의 대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