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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 형체 너머 진실의 깊이를 사유하다

조각은 형체를 깊이로 상상하는 일이다

by 윌마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56602


"미완성이네.”, "마무리가 안된 것 아냐?"

출품된 조각상을 본 사람들이 수군댔다. 오귀스트 로댕에게 이보다 더 정확한 평가는 없었다. “나의 조각들은 표면적이지 않고 내면의 진실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오. 마치 인생처럼.” 세상에 완전한 인생은 없지 않은가.


로댕은 고대 그리스 사실주의 전통에서 출발했지만, 그에게 ‘사실’은 피상적인 표면 묘사가 아니었다. 형태 속에 깃든 생명과 감정의 흐름까지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실’이었다. 그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이나 ‘칼레의 시민’에서 손이 다른 신체보다 크게 묘사된 것도 같은 이유다. 인체의 일부를 과장하거나 일부러 거칠게 처리한 것 역시 살아있는 감각을 강하게 전달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불완전해 보이더라도 로댕에게는 그 자체로 완전한 작품이었다.


조각은 형체를 깊이로 상상하는 일이다. 깊이는 단순한 거리나 차원이 아니라 사물과 생명에 내재한 근원적 구조를 가리킨다. 대상은 오랜 상호작용을 통해 그 깊이를 더해 간다. 모든 생명은 하나의 중심에서 잉태돼 그 중심으로부터 바깥으로 확장한다. 꽃망울이 몸을 웅크린 채 세상을 향해 터져 나오듯 형태도 그렇게 피어나며, 그 과정에서 정체성이라는 깊이를 얻는다. 조각은 공간 속으로 스며들어 그 깊이의 질서를 인식하고 그 숨결을 붙잡는 작업이다.


인간은 깊이를 이해하는 데 자주 실패한다. 눈에 보이는 표면과 시선을 끄는 윤곽, 욕망을 자극하는 외피에만 집착할 뿐 본질에는 다가가지 못한다. 본질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기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조각은 바로 이 깊이에 대한 감각을 요구한다. 공간 속에서 대상을 삼차원적으로 탐구하며 중심과 표면,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드러낸다. 그래서 조각은 예술 분야에서 가장 난해한 영역에 속한다. 이해할 수 없음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조각을 시작하고, 이 난해함을 견디는 사람이 조각가가 된다.


깊이와 본질을 향한 태도는 예술뿐 아니라 삶에서도 드러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그렇다. 부모는 머릿속에 이상적인 자식상을 그리지만, 자식이 타고난 천성은 그 계획과 다른 방향을 가리킬 수 있다. 자식은 본래의 천성에 따라 성장하며,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천성은 간섭과 무관하게 저절로 드러나는 법이다. 이상만을 강요하는 부모에게 이 아름다움은 고쳐야 할 결함처럼 보일 뿐이다.


이 자율적 내면성에 대한 존중이 근대 예술의 중요한 기반이 됐다. 근대 조각의 아버지 오귀스트 로댕에게 조각이란 자신의 이상을 강요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중심으로부터 솟아나는 생명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작품 속에 생명과 감정을 불어넣되, 그 자율성을 훼손하지 않는 것을 자신의 책무로 삼았다. 자연의 조화란 각 존재가 고유한 천성에 따라 원만하게 존재하는 상태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부딪히고 얽히면서도 균형을 이루는 순간, 자연은 아름다움이라는 얼굴을 드러낸다.


젊은 시절 로댕은 가난 속에서 장식 조각으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그 안에서는 어떤 서사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매일 밤 단테의 「신곡」을 읽으며 시적 언어 속에서 수많은 형상을 떠올렸다. 문학은 그의 영혼을 자극했고, 평생 꿈꾸던 이탈리아 여행은 작품활동의 전환점이 됐다. 1876년, 36세의 로댕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앞에서 완전히 압도당했다. 단순한 시각적 재현이 아닌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드러내는 ‘깊이의 진실’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로댕은 그 손을 잡았다. 그 순간 그는 진정한 조각가가 됐다.


로댕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과 성실이 예술가의 통찰력을 키운다고 믿었다. 예술가의 통찰로 발견되는 진실이 곧 아름다움이었다. 자연 속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존재 이유를 지닌다. 그 속에는 갈등과 조화, 긴장과 완화가 뒤섞여 있다. 갈등 또한 자연의 일부이며, 그것이 조화를 통해 생명의 숨결을 깊게 한다. 조각은 이 복합적인 자연의 진실을 담는 그릇이며, 조각가는 그 깊이를 섬세하게 읽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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