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계보학_변주의 기록

#『귀환하지 않는 자들』 텍스트 진화의 완전한 여정

by leehyojoon ARCH

창작계보학_변주의 기록

『귀환하지 않는 자들』 텍스트 진화의 완전한 여정


하나의 작품이 어떻게 전체가 되는가. 이것이 제가 지난 몇 년간 목격한 가장 놀라운 창작적 경험이었습니다. 16음절로 압축된 한 편의 시에서 시작된 질문이 7차례의 변주를 거쳐 하나의 완성된 우주를 구축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마치 하나의 DNA가 복잡한 생명체로 분화해 가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기원: 한 편의 시

《그 섬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가》

피는 씻겼지만 죄는 묻히지 않았다 다섯의 몸이 하나의 시신 위로 쏟아졌다 그들은 물었다. 다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 시는 16음절이라는 극한의 제약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모든 것을 압축해야 했고, 말할 수 없는 것을 침묵으로 암시해야 했습니다. 집단 폭력, 증언의 불가능성, 반복되는 질문 - 이 세 가지가 이후 모든 변주를 관통하는 핵심 DNA가 될 줄은 그때 알지 못했습니다.


시를 쓸 때 저는 완성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뭔가 더 말해야 할 것이 있다는 갈증이 남아있었습니다. 그 갈증이 이후 수년간의 긴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1차 변주: 언어의 망명

영문 번역: 충실한 번역자가 되려는 시도

Week One. She left behind a single note: "I couldn't bear all that this week held." Her neck was hung. Her skirt was torn. They buried her. Her name. Her death.

번역을 시작할 때 저는 충실한 번역자가 되려 했습니다. 16음절의 운율을 보존하고, "묻었다. 다시."의 건조한 반복을 그대로 살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번역하면서 깨달은 것은 한국어의 압축적 잔혹함이 영어에서는 완전히 다른 질감을 갖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더 설명적이 되고, 더 서사적이 됩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의문을 품었습니다. "번역이란 원작을 죽이는 일인가, 되살리는 일인가?" 이 질문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번역은 일종의 망명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아직 떠날 용기가 없었습니다.



영문 재창작: 망명의 완성

The ocean cast them out. Signals reached no shore. Food was gone by day five. Five pairs of eyes, one woman alone. Her neck swayed. Her flesh had not yet softened.

진짜 망명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원작을 잊기로 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영어 시를 쓰기로 했습니다. "The ocean cast them out." 바다가 그들을 '내쫓았다'. 한국어의 '버렸다'보다 더 의도적이고 잔혹합니다. "Her neck swayed." 목이 '흔들렸다'. 'hung'보다 더 시적이고, 더 바람의 움직임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중요한 발견을 했습니다. 원작을 배신해야만 진정한 번역이 가능하다는 것을. 망명은 배신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이기도 합니다.




2차 변주: 성찰의 언어

에세이 《언어는 어디서 죽는가》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저는 한 편의 시와 함께 살았습니다. 《What Happened on That Island》... "Her neck swayed."라는 한 줄이 왜 "Her neck was hung."보다 더 충격적인가요?

두 개의 영어 시를 놓고 보니, 하나의 에세이가 필요했습니다. 이 변화의 과정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무엇이 잃어졌고, 무엇이 얻어졌는지 말입니다.


에세이를 쓰면서, 시는 더 이상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질문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swayed'라는 단어 선택이 어떻게 독자를 시인의 공범으로 만드는지, 왜 어떤 번역은 원작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지를 탐구했습니다.


에세이는 시보다 더 위험했습니다. 시는 침묵할 권리가 있지만, 에세이는 해명해야 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모순 속에서 저는 새로운 갈증을 느꼈습니다.




3차 변주: 개인사의 발굴

작가서문 1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민중"과 "자유"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불렸던 그 시절... 저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말해야 합니다.

에세이를 다 쓰고 나니, 새로운 차원의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이 시의 폭력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요? 왜 저는 이런 이야기를 써야만 했을까요?


그때 저는 제 개인사를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말 대학가, 시위 현장에 참여하지 못한 개인적 죄책감, 그리고 한 '동지'의 죽음. 시의 추상적 폭력이 갑자기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얻었습니다.


시대적 유산의 상속자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그 무게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4차 변주: 화자의 분화

메타내레이션 《화자의 말》

제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심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고... 저희 같은 세대는 그 시대의 아픔을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개인적 고백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목소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로서의 제 자신을 타자화하기로 했습니다.


심리학과 대학원생이라는 새로운 화자를 통해, 저는 현세대의 모순을 더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었습니다. 세미나실에서 민주화 운동을 학점으로 소비하는 현실, 이론적 거리 두기로 포장된 도피, 그리고 여전히 '그 자리에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


상담실이라는 공간에서 우연히 발견한 노트를 통해, 치유와 증언의 경계를 탐구했습니다. 이때부터 소설의 구체적인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5차 변주: 창작론의 체계화

작가서문 2 《작가 노트》

두 가지 상반된 전략: 문학적 거리두기 + 지적 개념의 떠먹여 주기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라는 용어가 구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제 실제로 소설을 쓸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창작 방법론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극한의 폭력을 다루면서도 선정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철학적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을까요?


문학적 거리 두기지적 개념의 떠먹여 주기라는 두 가지 상반된 전략을 고안했습니다. 프로이트의 방어기제를 화자의 서술에 적용하고, 동시에 현대 독서환경에 맞춰 철학적 개념을 직접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독자를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 탐정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인 함정들을 곳곳에 숨겨두었습니다. 화자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 숫자 세기의 모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의문 같은 것들 말입니다.




6차 변주: 서사의 완성

장편소설 《귀환하지 않는 자들》

"기억은 증언이 아니며, 자백은 더더욱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죄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소설이 완성되었습니다. 시의 16음절이 200페이지에 걸친 심리적 해부가 되었습니다. "그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그는 어떻게 돌아왔는가?"로 변화했습니다.


관찰자의 윤리학이 작품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참여와 방관 사이의 철학적 경계, "돼지들이 소풍 가는 날의 우화적 구조"를 통한 수학적 자기 소외의 구현,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타자들에 대한 윤리적 책임까지.


디스토피아적 공간 설정을 통해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압축했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시설과 체계적인 감시, 하지만 진정한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 환경. 이는 저희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의 은유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레비나스 윤리학의 극한 실험이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타자들에 대한 무한책임이야말로 이 작품이 도달하고자 한 궁극적 지점이었습니다.




7차 변주: 철학적 완성

집필후기 《붕괴된 서사 속에서 피어난 지적 미로》

이 작품은 독자의 능동적 참여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구조... 진정한 치유는 자신을 다시 세기 시작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소설을 완성한 후, 저는 창작 과정 전체를 메타적으로 성찰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수개월 동안의 악몽, 등장인물들과의 이별의 어려움, 그리고 작가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존재라는 깨달음.


니체,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아도르노 등과의 철학적 대화를 통해 작품의 이론적 배경을 총정리했습니다. 포스트모던에서 현대적 실험으로의 문학사적 위치를 설정하고, 독자와의 관계를 공동 창작자로 재정의했습니다.


"돼지들이 소풍 가는 날의 우화적 구조"와 같은 구체적 장치들의 의미를 해설하면서, 이 작품이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만드는 철학적 탐구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변주의 법칙: 느낌의 정제 과정

이 7단계를 거치면서, 저는 **"느낌의 정제"**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압축의 법칙 (시)

16음절이라는 극한의 제약 속에서 최대한의 의미를 압축합니다. 반복과 침묵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것을 암시합니다.


변환의 법칙 (번역)

언어적 망명을 통해 한국어 절망을 영어 절망으로 변환합니다. 배신을 통한 충실, 원작 살해를 통한 원작 부활을 경험합니다.


해부의 법칙 (에세이)

과정의 해명을 통해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지 설명합니다. 언어철학적 성찰을 통해 번역의 윤리학을 탐구합니다.


구현의 법칙 (서문)

개인사의 발굴을 통해 추상적 상상을 구체적 체험으로 전환합니다. 세대론적 확장을 통해 개인적 죄책감을 시대적 유산으로 발전시킵니다.


확산의 법칙 (소설)

서사적 구현을 통해 철학적 질문을 살아있는 인물로 만듭니다. 독자의 참여를 통해 수동적 독서를 능동적 탐정 활동으로 전환시킵니다.


완성의 법칙 (후기)

메타적 성찰을 통해 창작 과정 자체를 의미화합니다. 순환의 완성을 통해 침묵에서 침묵으로의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계보학적 발견

핵심 DNA의 보존

모든 변주를 관통하는 불변의 코드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없었던 자"*의 윤리적 딜레마

증언 불가능성에 대한 성찰

관찰자의 책임과 한계

기억과 진실 사이의 간극


형태적 진화의 방향성

시 (압축) → 번역 (변환) → 에세이 (해부) → 서문 (구현) → 소설 (확산) → 후기 (완성)


독자 관계의 진화

시: 독자와 작가의 공모적 침묵

번역: 언어적 경계를 넘나드는 공동 작업

에세이: 창작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

서문: 개인사를 통한 독자와의 동질감 형성

소설: 독자를 능동적 탐정으로 초대

후기: 독자를 공동 창작자로 인정


시간성의 변화

시: 압축된 순간의 영원성

번역: 언어 간 시차의 경험

에세이: 과정적 시간의 해명

서문: 개인사적 시간의 재구성

소설: 서사적 시간의 조작과 해체

후기: 창작 시간 전체의 메타적 성찰


결론: 창작계보학의 의미

이 변주의 기록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작품이 어떻게 전체가 되는가"*의 과정입니다. 16음절 시 한 편에서 시작된 질문이 7차례의 변주를 거쳐 하나의 완성된 우주를 구축해 가는 과정을 목격했습니다.


각 변주는 이전 단계를 배신하면서 동시에 충실했습니다. 시를 배신한 번역이 시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개인적 고백을 배신한 메타내레이션이 더 보편적 진실에 도달하며, 감정적 서술을 배신한 이론적 해석이 더 깊은 감동을 만들어냈습니다.


창작계보학이란 결국 "어떻게 배신을 통해 충실에 이르는가"*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변주가 결국 같은 침묵 - 저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라는 근본적 고백 - 으로 수렴한다는 발견이었습니다.


하나의 시가 하나의 소설이 되고, 하나의 소설이 하나의 세계관이 되는 과정.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창작의 생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번역자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상처를 만지며 말합니다:

"이것이 제가 찾은 새로운 고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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