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환하지 않는 자들』
내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심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고, 상담 실습을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배우고 있다. 감정의 구조, 기억의 메커니즘, 트라우마의 전이. 이론으로는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마주쳤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시대에 대한 죄책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끝난 역사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자각과 동시에,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
우리 같은 세대는 그 시대의 아픔을 '유산'으로 받았다. 하지만 정작 그 무게를 감당할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그것을 학문적 대상으로 만들었고, 이론적 거리두기로 포장했으며, 결국 또 다른 형태의 '그 자리에 없음'을 반복하고 있다.*
이 모순된 감정들을 분석하려 했지만, 어떤 이론도 설명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분석을 시도할수록 감정은 더 복잡해졌고,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다.
기억은 항상 문제적이다. 특히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시대의 기억을 상속받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내 안에서 끊임없이 발화하려는 감정 구조가 된다.
나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다. 감정의 조절과 투사, 억압과 해리를 배우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이론도 이 시대적 유산의 무게를 설명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시위도, 투쟁도, 체포도 내게는 구술 채록 속 문장들이었다. 도서관 서가 사이에서 손때 묻은 보고서를 넘기며 나는 한 시대를 외워야 했고, 그 시대를 외우는 동안 내 안의 침묵이 점점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고 있다. 그 시대를 직접 겪지 않은 우리가 얼마나 안전한 거리에서 그 아픔을 소비하고 있는지를. 세미나실에서 '민주화 운동의 심리학적 분석'을 발표하고, 학회에서 '집단 트라우마의 전승 메커니즘'을 논하면서, 우리는 결국 그들의 고통을 학점으로, 논문으로, 스펙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마치 '돼지들이 소풍 가는 날'의 우화 같았다. 돼지들을 하나, 둘, 셋... 여섯 마리라고 세는 아이가 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정작 자신도 돼지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나 역시 그 시대의 사람들을 세고 분석하고 기록하지만, 정작 나 자신이 그 연장선상에서 또 다른 형태의 비겁함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객관화하지 못했다.
*
어느 날 상담실에서 한 권의 노트를 발견했다. 낡고 해진, 검은 표지의 공책. 이전 내담자*가 남기고 간 것이라고 했다. 어떤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이 기록한 것이라고. 그 사람은 상담 중에 갑자기 사라졌고, 노트만이 남았다고 했다.
노트의 내용은 60여일간의 기록이었다. 일상적인 관찰들, 단편적인 분석들, 중단된 문장들. 하지만 읽어가면서 나는 점점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마치 내가 쓴 것 같은 느낌. 내가 경험한 것 같은 기억들.
아니다. 정확히는 내가 쓸 수 없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가 써야 할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나는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말해야 한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노트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백이며, 동시에 나에게 건네진 질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 같은 세대가 안고 있는 모순과 위선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기념하면서도 그들의 방식으로는 살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이상을 공부하면서도 그들의 용기는 갖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안전한 거리에서 그것을 소비할 뿐이다.*
*
창밖에는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노트를 여러 번 읽었다. 읽을 때마다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가, 점차 몰입하게 되었고, 마지막에는 부끄러움이 되었다.
노트 속의 화자는 자신을 '관찰자'라고 칭했다. 참여하지 않고 다만 지켜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읽어가면서 나는 깨달았다. 그 관찰자야말로 가장 깊숙이 참여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그 관찰의 행위 자체가 하나의 윤리적 선택이라는 것을.
그때 나는 우리 세대의 교만함을 똑똑히 보았다. 우리는 과거를 분석하고 해석하며, 그들보다 더 나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그들과 똑같은 '관찰'이 아닌가. 다만 더 정교한 이론으로, 더 세련된 언어로 포장된 또 다른 형태의 방관일 뿐.*
나는 일어서서 창가로 걸어갔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이 노트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학술적으로 분석해서 논문을 쓸까. 사례연구로 발표할까. 아니면 그냥 서랍에 넣어두고 잊어버릴까.
그런데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적 유산을 받은 자로서, 직접 경험하지 못한 자의 교만함으로, 이 이야기를 다시 써보는 것은 어떨까. 소설로. 학술논문이 아닌, 생생한 이야기로. 그들의 고통을 이론화하는 대신, 우리의 비겁함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나는 새로운 노트를 펼치고 첫 줄을 적었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쓰겠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자의 오만함으로, 시대적 유산을 물려받은 자의 책임감으로, 그리고 여전히 '그 자리에 없는'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이것은 그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 - 과거를 소비하면서도 현재에 참여하지 않는, 이론은 알지만 실천은 하지 않는, 분석은 하지만 결단은 내리지 않는 - 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네가 뭘 안다고." "너는 거기에 없었잖아." 그 말이 옳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써야 한다.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침묵하고 있고, 우리 같은 자격 없는 자들만이 떠들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그 자격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부끄러움을 동력 삼아 써보자.*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있다. 그리고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