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의 말_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 『귀환하지 않는 자들』

by leehyojoon ARCH

# 『귀환하지 않는 자들』


## 작가의 말


_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귀환하지 않는 자들』은 끝내 거기 도달하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참여하지 못했고, 돌아오지도 못한 사람. 현장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에서, 침묵한 채 바라보고 있던 자. 그리고 그 자리에 없었던 나 자신이기도 합니다.


*


"민중"과 "자유"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불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세대의 청춘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결국 씁쓸한 비겁자만이 홀로 남았습니다. 그것은 다만 용기가 없었을 따름입니다. 타인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했을 따름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었다고 한다면, 변명이 될까요.


1980년대 말 대학가는 불안과 의심으로 짜인 밀실 같았습니다. 교문 앞엔 백골단이 진을 치고 있었고, 강의실 안엔 '브락치'가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한마디 말도, 한 장의 전단도 누군가의 감시를 피해 흘러야 했습니다.


그 시절 나는 공대 노래패에 들어갔습니다. 음치였던 내가, 어리석게도 다시 노래를 해보고 싶다는 자의(自意) 하나로 문을 두드렸습니다. 하지만 그곳엔 화음보다 구호가 먼저 있었고, 절규가 울림을 밀어냈으며, 의심이 침묵을 덮고 있었습니다.


나는 구호 대신 화음을 익히고 싶었고, 화음 대신 구호를 따라 했고, 결국 울림 대신 의심이 나를 삼켰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말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


그때 나는 소위 '백골단'이 두려웠습니다. 시위 진압을 위해 투입되는 전투경찰들 말입니다.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감당했을 그 학생들 앞에서 곤봉을 휘둘렀을 그들. 단지 그들은 저쪽에 있었고, 단지 나는 이쪽에 있었습니다. 그 거리가 나를 구원했지만, 동시에 나를 비겁자로 만들었습니다.


매캐한 최루가스가 두려웠습니다.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뛰어다니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나는 안전한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난무하는 쇠파이프와 던져진 보도블록이 무서웠습니다. 피가 흐르는 머리를 감싸고 쓰러져가는 동료들을 보면서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소셜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런 관찰자가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고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도, 화면 너머에서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는 존재들. 우리는 모든 것을 목격하지만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고, 모든 것을 기록하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즈음이었을 것입니다. 보도블록 대신 칼라아스팔트가 깔리기 시작한 것은. 시위대가 던질 돌멩이마저 빼앗아버리려는 치밀한 계산이었습니다. 권력은 그런 식으로 저항의 도구마저 차단해 나갔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흔적을 지워나갑니다.


역한 석유 냄새. 화염병에서 풍기는 그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남아 있습니다.


공대노래패에서... 당시 동지들이 복역하던 청주교도소로의 면회는 그저 비겁자의 자괴감을 달래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했습니다. 진정한 연대의식이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덜어내기 위한 최소한의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당시의 민중을 위한 마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진정한 애민의 정신을 가질 수도 없었습니다. 내 유전자는 지극히도 이기적이었습니다. 생존 본능이 모든 이상을 압도했습니다. 나 자신과 내 가족의 안위가 무엇보다 우선했습니다.


나는 시위의 한복판에 서지 않았습니다. 최루탄 연기를 뚫고 돌을 던지지도 않았습니다. 그 거리너머, 곧 무너질 것 같은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저 움직이지 않은 사람, 움직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한때 동지라 불리던 그들과 나. 삶의 간극은 어느덧 너무도 깊었습니다. 너무도 세상을 알아버린 나와 너무도 세속을 알아버린 그들. 모두가 변했지만 변화의 방향이 달랐습니다. 나는 현실에 굴복했고, 그들은 현실에 매몰되었습니다.


그 삶을 함께했던 동지들. 치열히 살자 다짐했던 맹서는 어디로 갔을까요. 혁명을 꿈꾸던 청년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이제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추레한 중년의 아저씨들뿐입니다. 배 나온 가장들, 대출에 시달리는 샐러리맨들, 승진에 목매는 직장인들.


하지만 '형'만은 그리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간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도 나를 비난하지도, 그렇다고 위로하지도 않았습니다. 항상 사람 좋은 웃음만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는 그 웃음이 버거웠습니다. 차라리 비난이었으면, 차라리 악의였으면 지금 이리도 마음이 답답하지 않았을 텐데. 그의 관용이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보다 용서받은 자가 더 괴로운 법입니다.


그 때문에 나는 그를 멀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안함이었습니다. 자괴감이었습니다. 그의 순수함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그에게 해줄 것은 없었습니다. 단지 자책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형'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침묵 속에서 오래 굳어 있던 어떤 문장이 나도 모르게 떠올랐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가 죽은 날이 아닌, 그와 함께 있었던 날들조차 나는 끝내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는 사실. 그것이 나를 오랫동안 잠식해 왔습니다.


그런데 문득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삶에 '그 자리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가장 중요한 순간에 부재하고, 가장 절실한 현장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으며, 자신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관찰자로 머무는 존재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실존적 조건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


그의 죽음은 지방신문에 조차 실리지 않았습니다. 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남자의 죽음이 이토록 조용할 수 있습니까. 그 치열한 삶을 기억해 주는 사람은 왜 나밖에 없을까요.


식장에서 피하듯 쫓기듯 올라오는 길 위의 상념. 그 순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마음은 과연 진실했을까요. 과연 절실했을까요. 아마도 순간성의 진실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느끼는 일시적 경건함 같은 것.


이 글을 읽을 여러 님들의 돌팔매질은 그때 친구의 영전을 보고서 쫓기듯 빠져나온 나에게는 차라리 축복이리라. 비난받을 자격도 없는 자에게는 돌팔매질조차 과분한 관심입니다.


*


이 글을 지금에야 쓰는 것은 이제는 진정이 되었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한 한 지인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기 위함이다. 그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너무 늦었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패자의 기록이 더 진실에 가깝습니다. 그의 삶이 패배였다면, 나는 그 패배를 기록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이런 기록에 대한 의지가 결국 이 소설이 독자에게 다가가는 방식, 그리고 진실을 전달하려는 방법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침묵한 자의 윤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이유로 끝까지 아무것도 말하지 말아야 하는가. 아니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말해야 하는 것인가. 관찰자는 과연 무죄한가. 지켜본다는 것이 참여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의 참여인가.


소셜미디어 시대,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관찰자가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아이들, 우크라이나의 폐허, 미얀마의 절망...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목격하지만 '그 자리에 없습니다'. 그 관찰 행위 자체의 윤리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책임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연대의 형태일까요.*


이런 고민이 결국 이 소설 속 화자의 서술 방식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 앞에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가 끝까지 지켜낸 어떤 것을 나는 포기했다는 사실 앞에서. 그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할지라도.


인간은 동물과 다릅니다. 본능을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존재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 의지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발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은 그렇습니다. 이상은 아름답지만 현실은 냉혹합니다. 그리고 나는 현실을 택한 사람입니다.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부끄러워할 뿐입니다.


『귀환하지 않는 자들』은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이는 다만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지 못한 자의 변명일 뿐입니다. 하지만 변명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 터입니다. 살아남는다는 것. 그것이 단순한 우연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선 선택인가. 이런 질문들이 소설 속에서는 관찰자로서의 화자가 지닌 근본적 딜레마로 형상화되었습니다.


기억은 증언이 아니며, 자백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렇다면 기억이 증언이 아니라면,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존재하지 않는 타자들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성립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상상 속에서만 만나는 이들, 꿈에서만 대화하는 이들,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는 이들에게도 우리는 윤리적 의무를 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런 의무야말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인간적 책임일까요.*


이 소설의 화자는 비겁합니다. 도망치고, 침묵하며,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가 누군가를 상징하거나 재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의 나 자신이라는 것을.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디지털 스크린 너머에서 세상을 관찰하며, 모든 것을 기록하고 분석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기록에서 제외시키는 존재들. 타인의 고통에는 민감하지만 자신의 책임에는 둔감한 존재들. 연결되어 있지만 고립되어 있고, 정보에는 풍부하지만 경험에는 빈곤한 존재들.*


이런 인식이 소설 전체의 서술 전략과 독자와의 소통 방식을 규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살아남은 자의 침묵이 어떻게 죄책감이 되고, 죄책감이 다시 말할 권리에 대한 망설임으로 변해가는지를 끝까지 따라간 이야기입니다.


후일 증언자가 되어주리라. 그 증거가 되리라.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일 것입니다.


말하지 못했던 시간이, 이제는 써야만 하는 이야기로 남았습니다.


그것이 작가서문 내가 이 소설을 쓴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창작 방법론으로 구현되었는지, 독자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작가서문'에서 다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