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아들러 / 스타북스
요즘 서점에 가보면 특징이 하나 있다. 심리학과 관련된 서적이 눈에 잘 띈다는 사실이다. 특히 아들러의 심리학은 다양한 제목으로 가판대를 점령하고 있다. 심리학이라면 금방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프로이트다. 프로이트 하면 꿈의 해석, 무의식이란 단어가 바로 연상된다. 아들러 또한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빈 정신 분석학회」의 일원이었다고 하니 그와 상관관계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들러는 과연 심리학 분야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일까? 이 책의 뒤표지를 보면 그런 의문을 충족시켜 주는 답을 발견할 수 있다.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식의 습득과 이론 분석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아들러의 학문 체계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학자의 틀 안에 머물기보다, 일반 대중에게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설파하고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모시키도록 돕는 데 사명과도 같은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어보면 아들러가 심리학자로서의 면모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일종의 치유자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프로이트나 융처럼 유명세를 떨치지는 못했지만 복잡다단한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새롭게 조명되는 인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아들러는 어떤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서려 했는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아들러를 소개한 책날개를 보면 ‘사회 감정에 중점을 두는 견해를 통해 열등감의 연구와 치료에 힘을 쏟은’ 정황이 포착된다. 이는 이 책의 제3장 ‘열등감 보상과 우월감 추구’가 아들러의 핵심 연구과제였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누구에게나 열등감은 존재한다. 단지 그런 열등감은 우월감으로 포장돼서 남들에게 과시하려는 욕구로 변질될 뿐이지만 심리학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실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아들러는 열등감과 우월감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열등감은 늘 긴장을 자아내는 감정이기 때문에 우월감을 향해서 나아가는 보조적인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월감을 얻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우월만을 추구하게 되면 인생의 무익한 측면으로 향하여 정말 중요한 문제는 배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언급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면 패배를 피하려는 일에 몰두하다 난관에 부딪치게 되면 망설이면서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고 아들러는 말한다. 오히려 이런 방향으로 우월감을 획득하려는 시도보다 열등감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구한다면 ‘인류가 자기 자신을 개선하려 하는 모든 노력의 결과’가 열등감이라는 정의에 충실하게 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살아가는 것도 나름 의미는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들러의 심리학 입문>은 호기심과 트렌드에 순응하려는 측면에서 고른 책이지만 난해한 책이다. 심리학의 기본도 모르기 때문에 입문서를 택한 것이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버겁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각기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접하다 보면 오해로 인해 종종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는 인간에 대한 이해심 부족이라기보다는 사람에 대한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유가 크다. 그런 이유로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좀 더 심층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아들러의 심리학 입문>을 택한 것은 진정으로 사람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심리학자의 전철을 밟고자 하는 작은 소망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이 책을 계기로, 새로운 학문의 영역인 심리학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