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가장 얻기 어려운 미덕이다.

반면에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없다.

by 정작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은 겸손에 관한 가장 고전적인 표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낟알이 영글어 속에 찬 것이 많을수록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구부러진 것을 ‘겸손’이란 키워드로 해석한 선조들의 지혜를 교훈으로 삼는다면 이 명언 또한 깊이 새길만한 이유가 있다.


자기 PR의 시대다. 자기를 감추기보다 드러내놓고 표현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다. 그러다 보니 무작정 자신의 가치를 과대포장 하여 세상에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본질적인 가치는 상관없다. 그저 보이는 것이 전부인 시대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테니까. 성형수술 열풍과 피부와 미용 분야의 발전은 인간 또한 상품처럼 포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고한 경지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내면의 가치를 채우려 하기보다 보이는 것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인간성이나 관계에 치중할 이유가 없다. 그저 그럴듯하게 나 자신을 포장하여 세상에 내놓으면 그만이다. 스펙 또한 그런 보이는 장치들 중의 하나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일 수 없듯이 드러나는 것만으로는 실체를 구별하기 힘든 세상이다.


이런 세상의 속성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겉으로는 인간적인 척하지만 속물적인 속성을 그대로 답습하며 자본주의 속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세상을 안다. 그래서 좀체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자신들 또한 믿지 못한다. 그러기에 사람은 늘 경계의 대상일 뿐이다. 요행주의에 빠져 순간의 기지로만 상황을 극복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들에게 참을 인(忍) 자는 지독한 고행을 의미한다. 치고 빠지는 전략을 활용하는 이유는 순수와 진실의 가치를 추종하는 이들이 쉽게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들로 인해 쾌재를 부를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이들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자신들을 과대포장하려 애쓴다. 세월의 흐름으로 누적되는 진솔한 가치를 따라가기보다 당장의 실익이 중요한 까닭에 자신들을 높이 평가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이내 진실은 맨살을 드러내 보일 뿐이다.


T. S 엘리엇이 겸손을 가장 얻기 어려운 미덕이라고 정의를 내린 것은 상황 적응력이 뛰어난 인간의 속성을 이해했던 이유 때문은 아닐까. 인간은 경제적인 동물이기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고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효과를 거두려면 순간적인 판단력이 중요한데 그런 판단력을 통해 추동되는 행동은 세상의 기준에 부합되지 못한 자신의 가치를 부풀려야만 가능한 것이기에 다소 무리수가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다툼에 익숙한 이들은 자신의 정체가 까발려지는 경우를 가장 두려워한다. 그러기에 무리수를 두더라도 자신의 가치가 평가절하 되는 것은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을 속이고 사람을 속이려 해도 그것은 한 때뿐이다. 언제나 진실은 승리했고, 겸손은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진리의 속성이다. 그러니 성공하려는 자, 세상에 우뚝 서고 싶은 자는 겸손해져야 한다. 성서 말씀처럼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남들보다 도드라져 보인다거나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라면 이미 겸손과는 거리가 멀어진 상황이다. 그러니 항상 자신의 위치를 살피고, 자기를 과대평가하지는 않는지 항상 경계해야 할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심하게 화가 날 때는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가 생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