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의 상자

김산아

by 정작가


<삐삐의 상자> 속에는 등장인물이 셋이다. 화자인 주인공, 남편, 삐삐다. 남편은 어찌 보면 주변인물 같다. 마치 시계처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영위하는, 어찌 보면 파트너라기보다는 주변인 같다. 주인공과 삐삐는 비록 사람과 가축의 관계지만 닮은 점이 있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녔다는 사실이다. 주인공은 임산부라 활동의 제약이 있고, 삐삐는 병아리라 라면 상자에 갇혀 있다. 그들의 일상은 무미건조하다. 주인공이야 고어영화라도 보면서 무료함을 달래지만 삐삐에겐 사방이 벽인 공간에서 운신하기조차 힘든 상태다.


인간에겐 자유가 있다. 가축에게도 자유는 있다. 단지 가축의 자유는 박제된 자유다. 인간에게도 자유가 있지만 사회가 규정된 틀 속에서 살아야 하는 한계가 있다. 거시적인 의미에서 보면 사람이나 가축이나 어떤 틀 속에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나 가축이나 때론 일탈을 원할 때가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임산부인데도 공포영화나 고어영화에 흥미를 갖는 것은 박제된 일상을 탈출하고픈 몸부림에 다름 아닌지도 모른다. 그런 영화들을 통해 자극을 느끼고 잠시나마 일상을 탈출하고 싶지만 그 또한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 주어진 한계 상황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삐삐 또한 마찬가지다. 날갯짓을 할 수는 있지만 갇힌 상자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제약으로 인해 삐삐는 성장했지만 상자 안을 탈출할 수 없고 오히려 그 속으로 침잠하려 한다. 주인공은 어쩌면 삐삐의 그런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 것인지 모른다. 칼을 들어 삐삐를 해하려 했던 것은 더 이상 그런 일상 속에서 무력해진 자신과 결별하는 의식을 치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피가 낭자하고 살점이 뜯기는 무시무시한 하드고어를 보고도 자극에 익숙해진 주인공의 단면은 우리가 추구하는 원초적인 자극조차 시간이 흐를수록 무감각해져 간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삐삐의 상자>는 자극에 무뎌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또한 자유로운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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