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원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살아가기 힘든 시스템이 지배하고 있다는 현실을 방증한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죽는 것이 편한 사회에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오히려 사치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해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이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 자살방조자라는 또 다른 오명이 씌워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그리네스’다. 불행한 숙주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영화 <연가시>를 떠올리게 한다. 숙주에 기생하며 살다가 숙주가 죽어 가면 비로소 몸을 벗어나 새로운 숙주를 찾아가는. 그리네스 또한 불행한 사람에게 기생하며 살다가 최종 목적인 자살의 조력자 역할을 수행한다. 이 기생체에게 꿈과 희망은 가장 독소적인 물질로 분류된다.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명칭 중에 ‘분노사회’가 있다. 분노사회는 다수의 자살자와 살인자를 양산하는 시스템이다. 그 속에서는 살인 또한 우발적이고 이유가 없다. 이 소설에서도 청년 k는 버스기사에 분노해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기본적인 가치관이 붕괴되고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분노는 극도의 잔인한 행동인 살인으로 구체화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청년 k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본인조차도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의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보험사기 용의자로 몰려버린 억울한 현실과 자기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장기를 떼어준 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있다. 이런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서 오히려 분노를 추스르고 살라는 충고는 청년 k에게는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는 역설적인 표현 기법을 통해 우리가 사는 현실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있다. 우리의 정치사를 보면 자유를 강조했던 자유당 정권이 가장 부패한 시스템으로 자유를 억압했고, 정의사회구현을 내세웠던 정권이 가장 정의롭지 못한 시대를 이끌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의미의 역전 현상은 그만큼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포장하려했던 과거의 유물이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또한 <당신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소설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