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
풀밭 위에서 돼지가 자유롭게 노니는 상상을 해본다. 그림을 그려보면 그리 낭만적인 모습도 아니고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풀이 주는 이미지는 생명력, 생동감이 느껴지지만 돼지 하면 지저분하고, 탐욕이라는 단어가 연상될 정도로 폭식, 폭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마음껏 자유롭게 나래를 펴고 살아가고픈 바람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경제적인 상황이 그리 호락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일은 어쩌면 자아실현보다는 자본주의 생리에 맞춰진 임금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런 사회의 구성원들 간에도 인간적인 가치보다는 짐승처럼 원초적인 가치가 우선한다. 마치 우리 속에 갇힌 돼지들처럼 아비규환인 세상 속에서 우리는 신음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배설물은 이런 사회 현상 속에서 우리들이 느낄 수밖에 없는 온갖 부조리와 인간의 시기심이나 질투심, 이기심 등 다양한 감정의 편린들이 한데 뭉뚱그려진 사회 문제를 상징적으로 제시하는 표현물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 속에서 풀밭은 잠시 안식을 주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풀밭에 누워 잠시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은 곧잘 힘들고 지친 현실을 벗어나 이상의 공간을 향해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향유할 수 있는 의미로 활용되곤 한다.
소설을 읽고 자연스럽게 감상을 쓰기가 어렵다. 아직 소설을 보는 눈이 틔워진 것도 아니고, 마음 편히 감상하기보다 자꾸 해석을 하고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소설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본래의 가치에서 멀어진 듯한 느낌도 든다. 요즘 소설들은 전체의 문맥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것도 많다. <풀밭 위의 돼지>도 마찬가지로 난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