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 여성캐릭터로 보는 한국 영화 100년展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 100년 기념 전시
나쁜 여자, 이상한 여자, 죽이는 여자
학교 과제로 <2010년대 한국대중문화 속의 여성 캐릭터 분석>을 했었다.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속에서 인상 깊었던 여성들을 어떤 타입으로 나누고 어떤 캐릭터로 규정해 본 개인적인 작업이었다. 너무도 좋아하는 주제였고 시작하기 전까지 (이유는 없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몇 주 동안 삐걱거렸다.
나름 대중문화 속에서 많은 여성들을 만났음에도 후보조차 쉽게 선택하지 못했다.
나는 ‘여성 캐릭터’라는 단어에게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었다.
여성의 전형성을 깨뜨리는 여성들을 호명할 때 캐릭터로 이름을 주는 것은 다시 카테고리화를 하는 게 아닌가? ‘틀을 깸’으로 다시 틀 짓기를 하는 건가?라는 고민들을 했다. 나의 조악한 배경지식과 함께 고민했고 어려웠고 후회했다.
그때부터 작업은 과제가 아닌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얘기했다면 좋았겠지만 시간이 없었고 다른 시험들 또한 몰려왔다. 아이러니를 해결하지 못한 채 묘한 죄책감 따위를 느끼며 후보를 추리고, 이름을 붙였다. 어찌어찌 만들어진 결과물 또한 사랑할 수 없었지만 여전히 내 인생의 과제 중 최고로 애정 하는 결과물로 기억한다.
한국영화가 100주년을 맞았다.
다양한 곳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100주년을 축하하고 있다. 2019년 이 지금에 -하필- 한국영화는 100주년을 맞았고 영자원에선 100주년을 기념하며 한국여성캐릭터를 조명한다. 나는 -하필- 전시 하나를 보기 위해 기꺼이 상암까지 갈 수 있다.
시기적절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다. 머뭇거리며 새빨간 공간을 들어갔고 가만히 앉아 스크린 속의 여러 인물을 만났다. 캐릭터를 하나하나 지나갈수록 끝나가는 게 아쉬웠다. 느리게 발걸음 하며 도착한 마지막 장소는 친절한 금자씨의 방이었다.
이런 완벽한 마무리라니. 전시를 준비하신 분들은 배운 변태(?)가 틀림없으시다. 금자씨의 마지막 즈음 내레이션이 떠오를 수밖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금자씨를 좋아했다.”
그렇다면 이 전시를 못 잊을 수밖에. 크게 두 가지를 얻었다 얘기하고 싶었다. 영화 안에서, 그리고 영화 밖에서 각각 하나씩만.
‘한국영화에 여성 캐릭터가 이렇게 많았다고?’
놀라기보다는 두근거렸다. 지워진 역사를 재조명하는 이유는 지금도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에 여자가 없다, 맞다. 왜 없을까를 고민할 때 이번 전시는 다른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이렇게나 많은 여자들이 한국영화에 있다.’
앞서 있는 누군가의 존재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분명한 힘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목마르다. 여러 스크린에서 동시에 살아있는, 움직이고 말하는 여성들을 마주했을 때다. 나와 같이 전시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방식으로 왔는지는 모르지만 같은 체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장로에는 포스트잇이 있었다. 그걸 읽어보다 전시와 비슷한 강도의 전율이 느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군! 다들 엄청나게 재미난 감상을 했군! 괜히 즐거운 마음에 힘이 났다.
대중문화의 여성들을 만나며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매일 고민했던 작년의 겨울이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었다. 영화를 볼 때 여성 비스무리한게 있다면 일단 체크하는 고질병(?)도 계속 앓아도 괜찮다 싶다.
한국영화의 여성 캐릭터들을 사랑한다.
내 사랑들에 이름 붙여준, 그래서 그들을 더 많이 부를 수 있게 해 준 영자원의 이번 전시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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