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문기자>
시의적절한 문제의식,
그에 비해 아쉬운 영화 자신만의 힘
영화, <신문기자>
<신문기자>는 동명의 저서와 실제 사학비리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영화이다. 현 체제에 대한 비판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점에서 일본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정치 드라마의 등장은 꽤 인상 깊었다. SNS(특히 일본에서 활발한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 댓글 조작, 가짜 뉴스, 옐로저널리즘, 일본에서는 정말 보기 어려운 미투 운동까지 영화는 시의적인 사건들을 전면에 내보인다.
영화의 뼈대는 내각을 중심으로 한 의과대학 신설을 둘러싼 대립이다. 익명의 제보를 받은 기자 요시오카는 이 제보가 단순히 넘길 수 없음을 직감하고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영화의 한쪽 공간이 요시오카의 신문사라면 대척점에는 내각정보조사실이 있다. 이곳에서 공무원 스기하라는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SNS 댓글 조작과 민간인 개인정보 유포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 스기하라가 존경하는 선배인 칸자키가 자살한다. 그의 죽음에 의문을 느끼던 스기하라는 요시오카를 만나고 그는 크고 위험한 진실의 벽 앞에서 가야 할 길을 선택하게 된다.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할 때 <신문기자>의 장점(이자 단점)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이다. 신문사에서 거의 없는 여성 (그것도 직급이 높아 보이지 않는) 신문기자이면서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요시오카의 배경이 인물을 공격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외롭고 고독한 요시오카에게 불필요한 견제가 달라붙어 일을 방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심 사건에 집중할 수 있다.
이를 바쳐주는 것은 요시오카를 맡은 심은경의 힘이다. 요시오카라는 인물은 감정분출이 거의 없다. 정치 드라마 주인공답지 않게 차분하고 혼자 감내하는 장면이 많음에도 심은경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단단함으로 충분히 설득력 있는 연기를 한다.
영화의 제목은 <신문기자>이지만 (포스터 또한 심은경으로 이 영화를 홍보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그를 전면에 내세웠겠지만) 신문기자인 요시오카와 공무원인 스기하라는 거의 같은 비중으로 비친다. 이것을 매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도 영화가 두 명의 주인공들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아쉬웠다.
정치 드라마, 특히 저널리즘 영화에서 주인공은 외부의 압박을 견디며 내부의 갈등을 이겨내야 한다. <신문기자>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할 것이 없는 영화이다. 오히려 굳건해야 할 지점이 약해져 영화 중후반이 흔들려버린다. 요시오카는 어떤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늘 언론인으로서의 소명을 선택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결단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며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안정적인 설정과 다소 개인적인 동기들만 보여준다.
요시오카가 고뇌하는 부분을 단순히 보여주는 게 아니라 언론인 요시오카에 대해서 좀 더 풀어나갔으면 더 단단하고 설득력 있는 인물이 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했다. (“왜 다른 인물을 끌어들이면서까지 진실을 좇아야만 하는지”를 관객들에게 제대로 납득시키지 않는다면 주인공은 그저 캐릭터가 되어 다급하게 달려야 할 뿐이다.)
스기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요시오카보다 설득이 필요한 인물이다. 스기하라는 외부(상사)의 압박과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전면적으로 배반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평소 자기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 직접적인 각성의 계기는 매번 외부의 사건들이다. 선배인 칸자키의 죽음, 아이의 탄생 등의 사건에 인물이 크게 동요한다. 엄청난 책임이 필요한 스기하라의 선택은 주체적인 고민의 결과이기보다는 ‘당연’해 보인다. 전반부에서 스기하라가 품고 있었던 국민을 위한 일과 국가를 위한 일에 대한 차이, 가짜 진실을 만들어내는 스스로에 대한 윤리적 질문이 후반부에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스기하라라는 인물은 선택을 내려야 할 때 또 다시 그를 뒤흔들만한 큰 사건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은 흔들리는 그대로 멈춘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현재 상황에 대한 응답을 요구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마무리다. 멈춰야 할 때를 알고 멈췄다기보다는 이 이상 진전하기 힘들어 넘겨버린 느낌이 든다.
두 인물이 서로를 깊게 신뢰하지도 않고 큰 힘이 있거나 영웅적이지 않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들은 꽤 소시민적인 반면, 영화에서 대중의 존재는 아예 지워졌다. 오로지 트위터 상에만 존재하며 대중-일반 시민이라고 할 수 있는 요시오카의 아내와 칸자키의 아내는 자발적으로 “정치적인 일은 너희가 잘하겠지”라는 태도로 영화의 중심사건에 일찌감치 떨어진다.
앞서 말했던 시의성 짙은 소재들을 단순하게 이용한 것도 아쉬웠다. SNS 댓글 조작, 미투 운동, 가짜뉴스 등이 언급만 되는 수준이다. 결국엔 관객이 함께 움직이고 고민해야 할 운동성이 부족했다. 동명 원작과 실제 모티브를 넘어서 영화 자신만의 목소리 내기엔 어려웠을까 싶다.
그렇지만 영화의 소재와 시기 자체로 주목할만하다. <신문기자>를 통해, 일본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가능한 정치 영화들의 등장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