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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크 May 07. 2020

셀린 시아마 특별전을 보고

<워터 릴리스>,  <톰보이>, <걸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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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시지 않는 추위와 초반의 코로나를 뚫고 봤던 셀린 시아마 특별전 글을 여름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5월에 아직도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지금 낸다. <톰보이> 국내 개봉 소식이 반가웠고, 영화제스러웠던 부산스러움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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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워터 릴리스>, <톰보이>, <걸후드>를 보고 왔다. 세 영화를 따로 떼어놓기보단 한 번에 이야기하고 싶다. 대부분 그럴 테지만 나 또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셀린 시아마 감독을 처음 알게 되었다. 작년 한국 (독립 영화를 중심으로) 극장을 강타한 여성영화의 물결에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는 사랑받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 타여초의 흥행에 힘입어 이번 셀린 특별전이 열렸는데 -정확한 프로세스는 알지 못하지만- 다시 한번 영화 산업에 들어온 팬 문화의 영향력을 현상으로 체감했다. 타여초를 감명 깊게 본 사람이자 타여초라는 영화와 아주 작지만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티켓팅을 뚫고 코로나를 뚫고 셀린 특별전에 기꺼이 합류했다.



극장 노동자를 그만둔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새 영화관이 그리워진 모양인지 아니면 철저한 자가격리로 오랜만에 외출해서인지 몰라도, 압구정 씨지비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이른 시간부터 (아마도 셀린 특별전을 보러 온) 사람들의 북적임이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해 잠시 그 겨울을 추억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영화를 보고 잠깐 쉬고 다시 영화를 보러 똑같은 관에 들어가는 물결이, 심지어 나 혼자가 아니라 한 명으로 구성된 여러 명의 그것이, 역시 특별전이라기보단 우리끼리의 셀린 영화제라고 부르고 싶어 졌다. 


대충 잘 보고 왔다는 말에 극장은 여전히 힘이 세다는 말을 얹으며 영화 얘기를 하자. 내가 세 영화를 한 번에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세 영화의 공통점이 뚜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부딪히는 것들에 대한 꾸준한 탐구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주인공인 여자는 탐구한다. 부딪히는 자신과 부딪히는 것들과 부딪힘에 대해. 영화는 주인공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돌이 걸림돌인지 디딤돌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렇게 쉽게 정해진 건 없는 것처럼, 부딪혀보지 않고선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영화 속 탐구자는 자신 앞에 얼마나 많은 돌멩이들이 놓인 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고 고작 앞에 놓인 돌멩이 하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때 관객은 자신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어딘지 익숙한 돌멩이다.


셀린 시아마의 세 영화는 부딪힘의 주체가 여성임을 명시한다. 여성의 이야기라는 것은 단순히 주인공을 여자로 설정한다고 주어지진 않는다. 세 영화 모두 정확히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페미니즘 영화이다. <워터 릴리스>는 이성애 중심 사회 안에서 성장하는 여자들의 섹슈얼리티, <톰보이>는 유연한 시각에서 관찰하는 젠더의 학습과 고정, <걸후드>는 자본주의가 작용하는 다양한 교차성을 성장하는 여성이 주체가 되어 바라보고 관통한다. 


<워터 릴리스> (2006)

첫 영화여서 그런지 몰라도 가장 긴밀하고 개인적으로 느껴졌다. 세 명의 또래는 같은 주제(말하자면 폭발하는 섹슈얼리티)에 대해 각자의 일관된 태도로 대응한다. 맨 처음엔 수영장이라는 공간과 싱크로나이즈를 보고 바디포지티브에 관한 영화인 줄 알았다. (그건 아니었지만 싱크로나이즈라는 스포츠가 여성 선수에게 요구하는 외모 억압을 단편적으로 확인할 순 있다.) 욕망하고 싶은 마리와 욕망당하는 플로리안과 욕망당하고 싶은 앤. 세 사람은 각각의 자리에서 꼭짓점을 만들어 삼각형의 관계를 구성한다. 플로리안은 이성애적으로 욕망당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플로리안은 누구보다도(억압당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그 억압을 피로하고 쓸 데 없는 것으로 만든다는 지점이 재밌다. 하이틴 드라마 속 여성 주인공들의 욕망이 때때로 누구의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도대체 불쾌하기 짝이 없을 때가 있다. 셀린 시아마는 여성 청소년들의 섹슈얼리티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방식으로 영화를 그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워터 릴리스>를 보며 불쾌함과 찝찝함과 두근거림과 ‘봐선 안될 것 같은’ 감정의 물속에 잠긴다.



<톰보이> (2011)

학습은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부장제 사회 아래 다양한 공간에서 성 역할은 체화된다. 그것을 우리는 젠더-고정된 성 역할이라고 부른다. <톰보이>는 젠더의 형성 과정을 그 과정 위에 있는 로르의 눈에서 보다 생생하게, 보다 날 것으로 바라본다. 

축구를 하는 것, 옆에서 응원을 하는 것, 아무렇게나 침을 뱉는 것, 화장을 하는 것, 몸의 일부를 드러내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성별이 따로 정해진 것일까? 그렇게 묻는다면 이제는 아니다고 대답한다(할 수 있어야 한다). 이분법적으로 나뉜 젠더를 너무도 자연스레 수행하는 어린아이들을 로르의 눈에서 관찰하면 왠지 심장이 덜컹거린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된 걸까. 로르가 여자라는 게 들켰을 때, 로르를 둘러싼 남자아이들이 모두 그를 쳐다본다. 그때에 로르가 느꼈을 공포감과 두려움은 단순히 ‘어린애’들 사이의 것이 아니다.

어린 세대가 갖는 문제점이 있다면, 반드시 그것에는 이전 세대의 책임이 따른다. 우리에게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해시태그 운동이 생각나고, 또 방금 블로그에서 본 ‘화장을 그만둔 선생님’의 글이 떠오른다. 로르는 엄마가 입혀 준 파란색 원피스를 벗어던진다. 그제서야 영화는 비로소 잔과 로르의 연대의 가능성을 비춘다. 감동보단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걸후드>(2014)

정체성은 그 자체로 뭉텅이로 볼 수 있겠지만 여러 겹의 레이어로 교차적으로 바라볼 때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걸후드>에서는 프랑스에 사는 흑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주인공이 있다. 성과 인종, 자본주의라는 정체성의 레이어에서 주인공 마리엔은 남성의 지배 하에 있다. 가정에서는 오빠 아래로, 다시 일을 하기 위해 남자 보스에게, 마지막엔 사랑한 남자 애인에게로. 하지만 마리엔은 남자들이 바라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예컨대 얌전하고 여동생들을 잘 돌보는 언니가 되는 것, 성적 자원을 순순히 제공하는 것, 착한 아내가 되는 것. 여성을 항상 남성과의 관계로서 편입해온 성의 메커니즘은 주인공 여성이 속한 경제적, 인종적 위치에선 유일한 해결책처럼 보인다. 

마지막 순간, 마리엔은 수행할 수 없는 역할을 거부한다. 역할이 되지 않고 카메라를 벗어난다. 남성의 자원으로 편입하지 않는 주인공은 무모한가. 셀린의 카메라는 요구하거나 책임을 묻지 않는다. 카메라를 벗어났다가 다시 카메라에 들어온 주인공은 마침내 마리엔 자신으로 보인다. 

(첫 시퀀스가 머리를 때린다. 동생과 기차에서 마주 앉은 장면이 좋다.)




흔히 기대하는 참된 어른의 존재가 거의 부재한다. 관계를 맺고 충돌하는 존재는 모두 미성년이며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착하고 이상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는, 기댈 수 없는 상황에 주인공은 내부로 탐구하고 함께 성장한다. 구조에 좀 더 유연한 존재로부터 우리는 구조와 억압을 읽어낸다. 엔딩은 모두 희망차다. 비록 좋거나 바른 길은 아니지만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의 길, 자신만의 방식을 가지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든

다. 



전통적으로 '남자아이의 색'이었던 파랑이 세 영화에 공통적으로 나온다. 워터 릴리스에선 파란색을 욕망하고 톰보이는 색만 파랑인 원피스를 벗어던진다. 걸후드는 파랑 아래에서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한 순간을 쌓기도 한다.



익숙하고 체화된 가부장제 질서를 드러내고 꼬집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셀린이 여성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능한 건 아니다. 그의 세심하고 꼼꼼한 관찰과 태도가 전달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강렬한 전복이었다면 이번 세 영화는 유연한 존재를 통해서 밀착된 세계를 거칠게 읽어내고 탐구한 느낌이 든다. 


종종 영화를 보면서 여성주의적 의미를 열심히 '찾아'낸다. 의미 없는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태도를 유지하곤 있지만 가끔 꽁하다. 셀린의 영화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게 좋았다. 그리고 그의 영화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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