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도 일어난다는 것을
도시의 불빛들이 남기는 잔상을 좋아한다. 형형색색의 빛 번짐은 도시 안의 피로감이 일렁이다 넘친 것 같은 모양이기도 하고, 보고 있노라면 도시가 가진 번잡스러움과 적막함의 경계가 흐려지는 느낌도 좋다.
나의 단상들도 잔상을 남긴다. 쓸 수밖에 없는 마음이 넘친 탓에 흐릿하지만 *'지워지지 아니하는 지난날의 모습'임은 분명하다. 나에게 떠오르는 많은 단상이 어떤 색의 잔상이 될지 궁금하다.
- 과학에는 그리고 어떤 세상의 지식이든 100%는 없는 거예요.
- 네. 게다가 저는 천문학이라는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학문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비현실적일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저희가 천문학에서 배우는 되게 재미있는 것 중에 금지선이라는 스펙트럼이 있어요.
금지선이라는 것은 그 스펙트럼이 잘 안 나와요. 그러니까 어떤 물질의 분광선을 찍으면, 이 물질이 주로 발하는 빛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빨간색 어떤 물건을 보는 건 그 물질이 빨간색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주로 빨간색에서 피크점이 있어서. 그런데 걔를 열심히 열심히 특이하게 오랫동안 해보면 빨간색이 아닌 , 예를 들어서 저쪽 끝에 보라색이나 파란색에서 살짝 빛이 있을 수도 있는 거야. 근데 그게 아주 낮은 확률이에요. 그래서 금지되어 있다고 해서 금지선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천문학에서는 그 금지선을 엄청나게 관측해요.
- 드문 일이 아니고요?
- 드문 일이지만 우주는 굉장히 넓기 때문에. (...)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도 일어난다는 것을 저희는 많이 배웠기 때문에. 그래서 아마 이게, '세상에 지식을 받아들이는 굉장히 신중한 태도로 다들 갖춰야 하는, 이런 의구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어찌 보면 굉장히 다양한 가능성들을 잊지 않고 점검해 본다는 건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출처 ) 팟캐스트 빅리틀라이프 ep11 - 우리는 가만히 지구에 누워, 닿지 않는 우주에 손을 뻗어 보았지 (심채경 천문학자, 이다혜 기자)
확신할 수 있어? 너 그거 확실해?
의견에 대한 논리, 근거의 유무와 '확신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별개인 것 같다. 상대에게 믿음과 확신을 주기 위해 어떤 태도, 발성, 표정을 취하는 것은 퍼포먼스에 가깝다. 그런 '확신'을 상대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과 주장이 옳다는 것임을, 그 본질을 증명하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몸집을 부풀려 상대를 압도하고 내 편으로 만드는 스킬이 덕목처럼 너무 중요해진 세상에서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 없음, 무능력 등으로 비친다. 나는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확실하게 얘기하기를 어려워한다.
지금까지는 그 이유가 경험 부족, 소심하고 걱정 많은 성격, 논리적이지 못한 기질, 말주변 등등로 생각해왔다. 물론 아예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빅리틀라이프를 들으며 확신하지 않는 태도를 다시 생각해본다.
빨간색에서부터 보라색까지의 스펙트럼이 있다. 천문학자는 스펙트럼이 가지는 불확실성-금지선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저 발견하고 관측한다. 한 가지를 확언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주는 너무 넓기 때문이다. 이다혜 기자는 그것을 '세상을 바라보는 신중한 태도'라고 언급한다.
확신하지 않는 것. 가능성을 닫지 않는 것.
대신 신중한 태도로 한 대상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
어쩌면 확신하고 결론짓는 것보다 더 집요하고 꾸준한, 결국엔 애정을 담은 태도는 아닐까 싶어서.
팟캐스트를 듣기 전에는 당장 나에게 필요한 내용이 아니어서, 천문학은 너무 모르는 분야여서 들을지 말지 고민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지금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기숙사에 올라가는 언덕에서도 머리 위 별과 행성들을 생각하는 날이다.
작년의 일기. 여전히 너무 사랑하는 팟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