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독한 기타맨 Jul 08. 2020

만약 두려움이 없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What Would You Do If You Weren't Afraid?

회사 내외부 상황은 출렁이고 있었고, 나의 마음도 그에 따라 일렁거렸다. 내 삶에도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머리속에 차고 넘쳤지만 실제 퇴사에의 결심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점심시간이나 일이 한가한 오후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혼자 산책을 나갔다. 15년을 넘게 다니면서 한번도 가본적 없던 회사 근처 동네를 돌고 돌았다. 마음속 주머니에 들어있는 '어떻게 해야하나?'라는 물음을 만지작거리며 무작정 걸었다. 인적드문 한낮의 주택가 골목을 어슬렁거렸고, 초등학교 운동장을 담너머로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딱히 떠오르는 이렇다할 해답은 없었다. 그저 답답하고 막막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퇴사 시점이란 걸 느끼고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엔 나는 겁쟁이였다. 그렇게 살아왔다. 잘버틴거라고 하지만 사실 자세히 뜯어보면 겁이 나서 그냥 아무것도 못했던 것 뿐이었다. 하루에 열두번까지는 아니지만 이십년이 넘는 직장생활에 퇴사하고픈 날이 수없이 많았다. 열여덟 숫자를 토해내며 사표를 날리고 싶었지만 그 후에 닥쳐올 일들이 두려웠다. 당장 끊어질 급여가 그러했고, 여기만한 이직자리 찾는게 그러했고, 뭔가 실패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그러했고, 서울에서 좋은 회사 다닌다고 자랑하시던 어머님 뵙기가 그러했으며, 무엇보다 회사다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 자신이 가장 두려웠다. 그렇게 20여년이 흘렀고, 결국에는 그 두려운 일들을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오고 있었다. 지금 내가 선택하지 않더라도 조만간 닥쳐올 일이었다. 뻔히 다가올 일이란 걸 알면서도 선뜻 내가 먼저 퇴사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교도소밖은 위험해 


영화 쇼생크 탈출은 나의 인생영화중 하나이다. 열번 넘게 본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영화일것이다. (아직 안봤다면 강추한다) 영화에는 브룩스라는 50년간 교도소에서 지낸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인 레드(모건프리먼)의 가석방에 대한 복선을 담당한다. 그의 에피소드를 들여다 보자. 

 

교도소 도서관, 얌전하고 친절한 성격이었던 브룩스가 동료 죄수에게 날붙이를 들이밀며 죽이겠다고 소동을 벌인다. 동료 수감자들이 급히 뛰어가 진정시키자 그는 울음을 터뜨린다. 브룩스는 바로 직전에 가석방 허가를 받았고 이를 알게 된 동료가 잘 가라고 인사를 했을 뿐이었다. 그 소동의 이유는 바로 두려움이었다. 50년간을 교도소에서만 지내왔던 브룩스는 오히려 바깥세상에 나가야 된다는 것에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고, 그 가석방을 취소시키려고 감정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하지만 가석방은 그대로 집행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브룩수는 결국 죽음을 택한다.

 

회사라는 울타리에 익숙해져버린 나와 브룩스가 다른점이 없지 않은가. 그렇게 때려치우고 싶던 회사에서 막상 나오려니 나 또한 회사밖이 무서운 세상으로 다가왔다. 밥벌이 기술이라곤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하는 것 밖에 없는 내가 회사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한 걸까? 회사 명함을 휙휙 날리며 살아온 내가 아무 배경없는 자연인의 삶을 견뎌낼 수 있을까? 잠자리에 들때면 내가 뱉어놓은 한숨이 방안에 가득차 누워있는 나를 짓눌러왔다. 악몽을 꾸기 일쑤였다. 허나 마냥 무섭고 두렵기만 한 건 아니었다. 막막하기는 변함없었지만 그래도 어느날은 '그래 할 수 있어, 더 많은 기회가 있고 난 해낼수 있을거야'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힘이 나는 날도 있었다. 물론 그런 날의 빈도수는 그렇지 않은 날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지만...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

 

외국계 회사에 다닌다는 건 영어라는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달리는 느낌이다. 특히나 나같은 영어 중도 포기자에게는 그 모래주머니가 어깨위로 올라올 지경이다. 영포자라도 영어는 해야겠고, 그나마 남아 있는 영어 실력이라도 유지하려고 쉬운 영어책을 읽곤했다. 그중에서 스펜서 존슨의  'Who moved my cheese?' 는 최애하는 책이었고 분량도 짧아 여러번 읽었다. 그날도 내용보다는 영어공부한답시고 해석에 집중해서 무심코 읽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한 문장에서 내 눈이 딱 멈춰 섰다. 치즈가 사라진 치즈스테이션C에 머물던 꼬마인간 HAW가 드디어 두려움을 이겨내고 어둑컴컴한 미로속으로 한발 내디디며 쓴 글이었다.

 

What Would You Do If You Weren't Afraid?  

만약 두려움이 없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한글판에서는 '두려움을 없앤다면 성공의 길은 반드시 열린다'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 충실한 나의 해석은 이러했다. 두렵지 않다면, 불확실하지 않다면, 아니 불확실하더라도 반드시 다른 치즈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떤 답을 고를 것인가?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 되어 버린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과감히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감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두려움이 나쁜것만은 아니다. 위험에 대비하게 해주고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두려움때문에 변화하지 못한다면, 한발자국 앞으로 내딛지 못한다면 그 두려움은 떨쳐버려야 할 대상이다. 실패에 대한, 돈에 대한, 기회 상실에 대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불확실함으로 주저하고 있다면 꼬마인간의 '두렵지 않으면 어떻게 할거야?' 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져보자. 지금, 퇴사를 고민만 하고 있는 당신에게 어쩌면 괜찮은 처방전이 되어 줄것이다.   

 

나는 이 짧은 문장을 수십번 되뇌였다. 두려움을 지워버리고 어떤 선택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올바른 방법인가를 생각했다. 그러자 답은 너무도 선명했다. 그제서야 나는 그 답안지를 들고 임원실 앞에 설 수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