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파리

책을 기록함

by 기차는 달려가고

<파리의 풍경>,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지음,

이영림 외 옮김,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여름 나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내가 어리던 1960년 대의 여름도 엄청나게 덥고 습했지만,

그래도 기간은 지금보다 짧았던 기억이다.

광복절 지나면 동해바닷물은 차가워서 못 들어간다는 말이 있었고.

확실히 8월 중순 지나면 서울도 무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곧 가을이 오겠구나, 하는 희망으로 한낮의 강렬한 햇빛을 견딜 수 있었다.

이제는 9월에도 덥고,

작년의 경우 10월이 되어서야 아침저녁으로 선선했던 기억이라.

올해는 언제까지 이 무더위가 지속되려나.

아, 싫어.



1789년 발발한 프랑스혁명의 주요한 배경으로 모든 역사가들이 계몽사상, 왕실의 부패와 무능, 부르주아의 대두와 함께 일반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경제적인 어려움을 지적한다.

흉년이 계속되면서 먹고살기가 어려워진 가운데,

전쟁 등의 이유로 국가가 재정난에 봉착하자 이를 책임져야 할 왕을 비롯한 권력층은 나 몰라라 하면서,

오직 국민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둬 위기를 모면하려 들었다.

국가와 왕실의 재정에 구분이 없었고,

중앙은행도 없어 돈의 지출이나 유통을 통제하거나 조절할 수 없었다.


권력은 내 손에,

세금은 니들이.

사치와 허영은 내가,

고된 노동과 목숨 바치는 전쟁터는 니들이- 이런 자세.

그것도 고압적으로 말입니다.



나는 성격이 조금씩 다른 책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독서 습관인데.

지금 그렇게 읽는 책 중에 <파리의 풍경>이 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이 임박한 시기, 프랑스 파리를 그려낸 내용이다.

총 여섯 권으로 된 방대한 분량으로 지금 첫 번째 책을 읽는 중인데,

문장이 쉽고 짧은 글들이라 재미있고 수월하게 읽힌다.

파리의 외형적인 묘사부터,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생활,

평범하고 작은 에피소드들에서 프랑스 사회의 핵심을 통찰하는 지은이는,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고 프랑스혁명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당시 파리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게 된다.

왕의 권세를 자랑하는 크고 화려한 건물을 곳곳에 지었지만, 인구가 늘어나는 도시를 운영하는 계획도, 구상도, 실천도 전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서울은 세계적으로 상당히 큰 규모의 대도시이고

대체로 원활하게 굴러가는 편인데.

우리는 이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노고를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도시의 형성에는 많은 인구가 마시고 쓸 물이 있어야 하고.

먹을거리가 공급되는 곳이라야 했다.

상수도와 식량 공급과 거의 동시에 하수체계와 쓰레기 처리가 뒤따라야 하고.

분뇨와 시신 문제.

행정체계, 경제, 교통, 주거, 환경, 교육, 치안 등등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요구에 더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기에 발생되는 문제들과 갈등, 이해관계도 매일매일 조절하고 처리해야 한다.



18세기, 파리 거리에서 마차의 횡포는 대단했다.

돈 있고 지위 있는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다니니 도로는 온통 마차들 차지고.

인도가 따로 없는 도로에서 앞뒤로 달려오는 마차를 알아서 피하며 걸어야 하는 일반사람들은,

마차에 치어서 다쳐도, 죽어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

법을 만들고 관리하는 권력자들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 편이었으므로.


도시 한가운데 혐오시설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동물기름 용해공장에서는 고약하고 지독한 악취와 함께 독성 물질 배출과 화재 위험까지 있었다.

도살장에서는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죽음을 당하는 동물들의 울부짖음과 발버둥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형편이었다.

종종 단번에 죽지 못한 동물들이 끔찍한 형상으로 거리에 뛰쳐나오기도 했다.


사람이 묻히는 무덤도 악취를 풍겼다.

교회에는 층층이 시신을 쌓은 지하무덤이 있었고,

매일매일 발생되는 시신은 제대로 처리되지 못했다.

아무 데나 오물과 분뇨가 널려있었다.

숲에도. 도로에도, 개천에도,

내 집 밖 아무 데나 분뇨와 쓰레기, 더러운 물을 버렸다.


과도하게 높은 집들 때문에 저층 주민들은 하루 종일 어둠 속에서 살았다.

오염된 공기가 배출되지 못하여 도시를 묵직하게 덮어버렸다.

미화를 담당하고 공기를 정화하는 식물 따위는 없음.

좁은 길과 빽빽이 들어찬 위태로운 집들.

먼지와 악취와 더러움과 아우성 속에서 파리 시민들은 매일매일 살아가야 했다.



일상적인 환경이 이렇듯 불편하고 괴로우면 평온한 마음을 지키기가 어렵다.

안 그래도 울화통이 터지는 환경에서 식량도 구할 수 없는데,

세금까지 더 내라고!

마른 장작더미에 불을 지른 셈이었다.


베르사유라는 별천지에서 왕과 귀족들이 방탕한 생활과 요란한 사치로 썩어가고 있을 때.

하루하루 살기가 너무 힘든 파리의 시민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듯 괴로운 환경에서도 멋쟁이 파리 사람은,

잔뜩 모양 내고 거리에 나선다.

그 고된 행군을 따라가 볼까.


저녁을 먹으러 생자크 포부르에서 생토노레 포부르까지 가려는 사람은 똥과 물이 떨어지는 지붕을 피하기 위해 그야말로 곡예를 해야 한다. 진흙더미, 미끄러운 포도, 기름때가 묻은 마차축과 같이 피해야 할 암초투성이이다. 그래도 파리인은 전진한다. 그는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구두닦이를 부르고, 긴 양말에 흙을 좀 묻히는 것으로 모험을 끝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를 무사히 가로지른 것은 정말 기적이나 다름없다....

왜 진흙과 먼지를 고려하여 옷을 입지 않는가? 왜 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에게나 맞는 옷을 입고 걸어 다니는가? 왜 런던처럼 인도를 설치하지 않는가? (1권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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