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의지는 인생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책을 기록함

by 기차는 달려가고

<버트런트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

버트런트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우리 아버지가 전집을 갖고 계셨던 데다,

19세기 후반 출생임에도 내 초등생 시절까지 살아계셔서 그 이름을 기억하는 버트런트 러셀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문필가면서 철학자, 수학자였다.

지적인 성과 말고도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행동하여, 100년 가까운 인생 동안 더 좋은 세상을 꿈꾸고

생의 마지막까지 행동하셨다.


1931년부터 1935년까지 미국 신문에 기고한 에세이를 모아서 펴낸 벽돌 같은 이 책은,

간결한 문체로 쉽게 읽히면서도 세상의 크고 작은 무수히 많은 사안들을 다루는 짧은 글들인데.

거의 100년 전 글임에도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와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인간의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는 기분이다.



몇 문단을 소개하면,


계급 사이의 평등으로 받아들이건 남녀 사이의 평등으로 받아들이건 상관없이, 민주주의는 경제적 민주주의가 동반되지 않은 정치적 민주주의에 머무는 한 그다지 현실성이 없다. 어떤 정치 강령을 주장하는 자들이 당신을 굶어 죽게 만들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면 그 강령에 반대투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작은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물론 나름대로 중요하다. 과도한 억압을 방지하며 경제력의 평등한 분배로 나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적 정의가 없는 정치적 정의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핵심은 시민 각자가 정치적으로 완전히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안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데 있다. 마찬가지로 경제적 민주주의의 핵심은 경제적 독립이 아니라 경제적 사안들을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데 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 식으로 정치에서 경제로의 확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419,420쪽)


하나의 이상으로서 경쟁은 산업화와 서부 농토의 개척 시기에는 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지나갔고 이제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필요하다. 보통 사람들의 물질적 안녕을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할 만큼 충분한 양의 상품을 생산하는 문제는 경쟁 시대의 사람들이 해결했다. 남은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분배의 문제다. 분배 문제는 경제 전쟁으로 해결할 수 없고 오직 경제 정의로만 해결할 수 있다. 경쟁 시대의 사고방식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분배 문제는 협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448쪽)


공정성은 권력의 분배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힘 있는 자들은 공정성을 요구하는 주장을 대할 때마다 간단한 반박 논리를 내세울 것이다. "그건 달라." (456쪽)



내가 60여 년을 살아오면서 나 포함 주변사람들의 변화를 관찰해 왔다.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서는 육아에 있어 환경, 특히 양육자의 역할을 상당히 강조하는 추이로 보인다.

인간은 무력한 생명으로 태어나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까지 긴 시간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기에 환경의 영향이 중차대한 건 맞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 환경에 대응하는 각자의 타고난 성향과 능력도 그에 못지않다는 생각이다.

또 환경에는 주양육자만이 아니라 사회와 시대라는 요인도 큰 몫을 차지한다.


어떤 때는 신생아 때부터 성장기까지의 환경과,

이를 대하는 본인의 태생적 성향이 평생을 좌우하는 "한계"라는 기분까지 든다.

어떤 이는 성장기 때 느꼈던 열등감과 평생 싸우고.

어떤 이는 성장기 때의 결핍을 구하느라 평생을 헤매기도 한다.

그러니까 성장하는 동안 내면에서 자라난 허상이 인생의 굴레가 되기도 하는 거다.

지은이는 인생의 결정적인 기간을 나보다 훨씬 짧게 봐서,

생명체로서 아주 무력한 생애 처음 몇 달의 기간에 주목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학계에 자리를 잡은 시기이니 그 영향도 있었겠지.


우리는 미지의 힘에 휘둘리는 무력한 꼬마로 인생을 시작한다. 유일한 보호책이라고는 그에 맞서 시끄럽게 울며 불평하는 것뿐이다. 우리 존재의 나머지 부분을 이루는 것은 생애 첫 몇 달간의 공포와 부질없는 분노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들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두 종류의 대상을 사랑한다. 하나는 친숙한 것들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폴레옹은 아이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기에는 지나치게 무서웠던 어머니를 두었기에 프랑스의 품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

자아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는 어린애 같은 공포로부터 생겨난다....

나폴레옹이나 칸트 같은 천재성이 없는 평범한 남녀들은 좀 더 평범한 방법으로 자신을 과장하려 한다. 좋은 옷, 좋은 집, 좋은 행실, 풍성한 접대 등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모험적인 방법에 속한다....


무의식으로부터 공포를 완전히 뿌리 뽑는 일은 의심할 여지없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유아가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인정한다면 공포를 뿌리 뽑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490, 491, 492쪽)



내가 선택하지도, 원하지도 않았건만 세상에 떨어진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주어진 환경과 나의 성향, 능력이 모두 내 의지 바깥 운명적인 부분이라면,

과연 내 인생에서 내가 노력하고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에, 얼마만큼이 되는 걸까?

주어진 물리적, 심리적 한계를 하나, 하나 극복하면서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길은 정말 어렵고.

이것에 눈을 돌려 노력하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

다들 나는 이걸 더 가졌으니 너보다 잘났다, 고 인정받으려는 초기 단계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 여자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