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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롱님 Nov 01. 2020

라떼는 말이야… 라떼시절의 미디어

광고홍보쟁이 엄마표 미디어 놀이 #3


디지털 이주자(Digital Immigrant)인 나에게 미디어는 4대 매체라고 일컫는 TV, 신문, 라디오, 잡지였다.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고, 나에겐 고등학교 1학년 말 이과에서 문과로 적성을 바꾼 게 결정적이었다. 당시 TV 청춘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신문방송학과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만 광고홍보학과를 찜해버렸다. 신방과보단 뭔가 남달라 보인다는 이유로.


출처: Pixnio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광고홍보학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미디어와  친했던 아이였다. 집에 배달되는 조간, 석간신문을 가장 열심히 읽었다. 가장 먼저 TV 편성표를 찾아 오늘 볼 TV 프로그램 시간표와 하이라이트를 체크했다. 명절 전 특별판이 나올 경우 TV 편성표는 가장 잘 보이는 벽에 대자보처럼 붙여 놨다. 동생과 서로 봐야 하는 걸 표시해 리모컨 싸움을 피했다. 국민학교 시절, 학교에서는 신문 사설을 잘라 종합장에 붙인 뒤 가장 핵심 내용과 주제를 밑줄긋기하는 숙제를 자주 내줬다. 부산일보보다 조선일보를 보면 더 똑똑한 학생이 되는 것이었는지  그때부터 우리 집엔 아침 조선일보, 오후 부산일보가 배달되었다. 크면서 신문에서 정보를 찾고, 논술에 밑바탕 되는 어휘력을 늘리고, 즐겨 챙겨보는 기자를 발견하고, 연재만화나 소설을 탐닉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굳이 TV 편성표가 아니어도 일주일 TV 프로그램을 외우던 시절이었다. TV를 사랑했던 아이는 뽀뽀뽀 안에서 인형극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만화영화의 성우가 되고 싶었다. 알프나 두기같은 외화시리즈를 볼 땐 한국사람이 노란머리 가발을 쓰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리모컨을 재빨리 돌려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심지어 앞뒤로 광고가 몇 개 붙는지 파악하던 하루하루가 밑바탕이 되어 광고홍보쟁이로 밥벌이하는 오늘을 만들어준 것 같아 고마울 때가 있다.


출처: PxHere


라떼엔 방학이면 EBS 라디오 채널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아침에 주파수를 맞춰 놓고 탐구생활을 펼친 뒤 라디오 건너 전달되는 목소리를 들으며 숙제를 했던 기억이 난다. 수업 외에도 ‘두 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도 챙겨 들었다. (그 당시 가장 궁금했던 천리안, 하이텔을 대학가서야 알게 되었다.) 왜 부산엔 이문세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별밤지기가 나오는지 의문이었고, DJ에게 보낸 우리의 사연이 오늘은 나오는지 이불 안에서 모니터링하던 즐거움이 있었다. 소니 워크맨이 필수품이던 시절, 라디오를 들으며 공부하던 겉멋은 지금 뮤직 앱이 알아서 재생해주는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다.


그 시절은 어린이 보물섬에서 여성중앙, 그리고 향장까지 다양한 타깃, 테마의 잡지를 아우르며 다독하던 때이다. (보물섬은 원래 어깨동무의 부록이었는데, 어깨동무가 통 기억이 안 난다.) 오롯이 나를 위한 잡지는 윙크 같은 순정만화 잡지가 나오면서였고 내 오빠들이 실리는 음악/영화 잡지, 그리고 우리들의 모습을 담은 패션지 쎄씨가 런칭했을 때엔 나 역시 소비할 수 있는 구독자로 성장해 있었다. 지하철을 탈 때면 필름 2.0이나 씨네 21, 페이퍼를 손에 들던 시절이었다. 좋아하는 취향의 잡지를 정기 구독하고 모으기, 편집장과 인기 에디터 정도는 외우고 아는 척하던 그때가 순삭된 느낌이다.


물론 인터넷 1세대로 PC통신을 애용하던 화석이다. 어쩌면 나의 부캐가 처음 탄생한 장소가 하이텔인 셈이다. 밤마다 전화선을 뽑아 모뎀을 연결하고 삐삐 접속하던 라떼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로 설명할 수밖에.



출처: PxHere


#내돈내산 신문을 쩍벌남처럼 무례하게 보던 이들, 그리고 이를 염탐하는 흘깃족들이 가득했던 90년대를 보냈다. 지하철에서 사서 보던 천 원대 잡지가 메트로, 포커스 같은 무가지로 체인지되었다. 그리고 2009년 아이폰이 론칭하며 스마트폰이 내 눈을 점령했다. 불과 10, 스마트폰으로 신문, TV, 잡지, 라디오를 보고 들을  있는 세상은 디지털 학습자에겐  빨리 따라가야 한다는 조급함과 함께  느리게 살아갔던 지난날의 그리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뜨거웠던 라떼가 식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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