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홍보쟁이 엄마표 미디어 놀이 #8
아이가 두 돌이 될 때까지 집에서 TV를 보지 않았다. 직업상 신규나 인기 프로그램을 꿰뚫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 출퇴근 시간 동안 업데이트했다. 다행히 지금 시대는 TV 방송을 보지 않아도 어제 누가 어느 프로그램에 나와 무슨 말을 했는지, 드라마 스토리는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어제 시청률이나 바이럴 결과를 기사 서치나 방송 클립 다시보기면 다 알 수 있다. TV에서 공식적으로 재방송을 하지 않는 한 전날 방송된 내용이 궁금해 온 반의 친구들에게 줄거리를 묻고 또 묻던 시절을 보냈던 나는 지금이 좋기도, 싫기도 하다.
아이와 함께 신문을 펼쳐 TV 편성표에서 오늘 볼 방송을 찾았다. 그 시간에 채널별로 방송이 진행되는지 살펴본다. TV 뉴스나 예능/드라마를 보고 포털 사이트로 접속해 기사로 어떻게 나오는지, 방송 클립이 어떻게 올라오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왜 유튜브나 포털에서 이런 콘텐츠가 올라오는지를 설명한다. 같은 방송이라도 기사의 제목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본다. 그러다 인터랙티브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궁금해했다.
평일 저녁 6시이면 EBS ‘생방송 보니하니’를 보는 게 초1의 루틴이 되었다. 추석 연휴 전, 의웅보니가 그만뒀다. 앞으로 새로운 19대 보니가 온단다. 10월 4일 보니하니는 가을 개편과 함께 원준보니를 화려하게 소개했다. 포털 검색창에 이원준을 검색해 아이에게 보여줬다. 엘라스트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이며, 오디션을 통해 선정되었다고. 그리고 유튜브에서 보니원준의 오디션 메이킹 영상을 찾아봤다. 좋아하는 방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 즐거워했다.
보니하니는 가을 개편을 통해 시청자와 인터랙티브한 활동이 더해졌다. 이참에 보니하니 앱을 다운로드해 참여해보기로 했다. 금요일 '갈라쇼'는 두 갈래 상황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아이는 하니팀에서 하니의 의견을 지지하는 댓글을 보내달라고 했다. 내친김에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도 남기고, 선물 신청도 해보고 싶단다. 생방송 중 보니하니와 전화통화도.
보니하니 중간에 사연 돌림판으로 주는 다양한 선물들은 어떻게 집으로 오냐고 물어왔다. 광고와 협찬이라는 의미를 알려줬다. 보니하니 시작 전, 종료 후로 붙는 장난감, 음료 영상은 '광고'이고, 저런 선물은 '협찬'이라고 부른다. 이는 프로그램 제작비가 되며 보니하니 방송을 만들 수 있는 거라고.
나는 종종 아이와 함께 TVN 유퀴즈온더블럭 재방송을 본다. 여러 인물들이 초대되어 간단한 인터뷰를 한 뒤 퀴즈를 풀게 되는데 퀴즈를 성공하면 상금 100만 원을 현금으로 받는다. 좋아하는 백희나 작가가 나왔을 때 일부러 아이를 불렀다. 구름빵 이후 달샤베트가 나오기 까지, 그리고 알사탕, 장수탕 선녀님 등 아이가 사랑하는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스토리를 보고 퀴즈를 푸는 모습도 흥미롭게 바라봤다. 그 이후 유튜브에 나온 편집본을 또 봤다. '어 저번에 본 건데... 저 현금 100만 원은 도대체 어디서 주는 걸까?' 마찬가지로 광고와 협찬으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알려줬다.
그런데 보니하니와 유퀴즈의 차이점이 있다! 생방송이냐 녹화방송이냐, 그리고 간접광고의 유무다. 아이는 보니하니가 나올 땐 실시간 생방송이고, 중간의 호기심딱지 같은 건 미리 찍어둔 녹화방송이라는 걸 이해하기 시작했다. 코너별로 이건 지금 하는 거, 저건 찍어둔 거라며 아는 척했다. 또 유퀴즈를 볼 때마다 프로그램 중간에 60초씩 쉬어가는 광고가 나온다고. 이것 역시 보니하니와 다른 점이다. 공영방송엔 중간광고가 없다.
지난여름 이수근이 스핀오프로 '나 홀로 이식당'을 운영했다. 강원도 산골에서 혼자 감자밥과 옥수수밥을 짓고, 짜글이를 익히고, 밑반찬을 준비하는 모습이 아주 재미있었다. 아이와 잠깐 재방송을 본 이후 유튜브로 편집본을 몇 번 봤다. 이후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이수근이 모델인 랭킹닷컴 광고가 자주 등장했다. 이수근이 나올 때마다 그 이 식당 아저씨란다. 그 아저씨가 닭고기 볶음밥을 해 먹고 육포 선물세트를 소개한다. "왜 저 아저씨가 저걸 해?"라고 물어왔다. "이수근 아저씨가 나온 프로그램이 끝날 때 랭킹닷컴이라는 글자가 크게 나왔어. 저 아저씨가 거기 광고 모델이 된 거지. 닭고기 제품을 만드는 회사인데 닭고기 요리들을 파는 거야." 나는 아이에게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광고 모델이 되는 구조를 설명했다.
아이와 티브이 보며 수다 나누는 건 굉장히 즐겁다. 도전 골든벨을 풀고, 세계 테마 기행을 다니고, 삼시세끼 먹으며, 싹쓰리나 환불원정대의 음악을 듣는 거다.
원 소스 멀티 유즈라고, 오리지널 TV 콘텐츠는 채널에 따라 무한 변형된다. 유튜브나 네이버 TV로 포스팅될 때, SNS, 뉴스 기사로 재생될 때, 그리고 팬들이 다시 재가공해서 올리는 리뷰 콘텐츠들... 그게 어떤 형태이든 미디어의 영향력을 지닌다고 알려주고 싶다. 모든 이들이 예전처럼 TV를 통해 처음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채널을 고려한 콘텐츠 기획이 필요한 거라고. 앞으로 살아갈 아이가 경쟁할 AI가 해낼 수 없는 창의적 콘텐츠가 왜 중요한지 여기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