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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리옹 Apr 04. 2021

일본 교토 <동복사>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2016 , 교토 여행]


  예쁜 봄날에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벚꽃 하면 일본이 떠오르는  화려한 색감이 기모노와 닮아서 일까요? 굳이 일본에 가려던  아니었는데, 마침 회사 기념일  연휴가 되길래, 어디라도 가보자는 생각으로 다녀왔지요. 봄날의 일본에 도착하니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라는 점에서 거의 모든 도시와 공원에 벚꽃들이 만개해 있더군요.



  사실, 여행을 떠날 즈음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먹고 쉬다 오자’는 생각으로 오사카에서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오사카만큼 맛있고 즐길거리가 풍부한 도시도 드물잖아요? 거의 대부분의 관광책자가 그러하듯이 교토는 당일치기 코스로 짧게 다녀올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 편을 보니, 교토라는 도시는 당일치기로 끝낼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을수록 일본의 문화의 정수 배어있는 곳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렇게 부랴부랴 오사카 일정을 전부 취소하면서까지 교토라는 도시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샅샅이 둘러볼 생각으로 자전거까지 빌려 도시를 4일 동안 훍었지요.


<기요미즈 데라 / 금각사>


  교토하면 의례 금각사와 청수사(기요미즈 데라) 알려져 있지만, 불국사 같은 절들이 수십  이상 모여있는 곳입니다. 한 도시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만 17군데라면 할 말   거지요. 그 사찰 하나하나가 규모가 어마어마한데,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어디부터 갈지 계획하는 것도 어렵더군요. 유럽으로 따지자면 뭐랄까요... 피렌체와 비슷 하달 까요? 조그마한 도시에 오래된 성당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듯, 커다란 사찰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특히, 서양인 관광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우리가 유럽 도시를 이국적으로 느끼듯 서양인들에게는 동양의 신비로움을 느낄  있는 도시인가 봅니다.



  일본에 대해 공부할수록 새삼스레 알게 되는 것도 많았습니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일본 역사까지 알기엔 뭔가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지요. , 가깝지만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일본의 교토는 무려   동안 일본의 수도였습니다. 한국이 삼국시대(A.D~7), 통일신라(7~10), 고려(10~14), 조선(14~20)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 가운데 경주, 개성, 서울로 수도가 천도되었던 반면, 일본은 헤이안(8~12), 가마쿠라(12~14), 무로마치(14~16) 시대의 무대는 오직 교토였습니다. 비록, 에도(17~19) 시대 이후에 도쿄로 무대가 옮겨지긴 했지만 문화의 중심으로써 역할을 수행한  여전했지요. 교토가 거의   동안 수도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동서남북에 크고 작은 사찰들이 계속 지어진  당연합니다. 역사적으로 거대한 건축물들은 정치적인 함의를 가졌으니까요.



  고대 역사 속 일본에 대해 생각하자면, 한반도의 삼국시대의 우수한 문화를 전파해  것에 대한 막연한 우월감부터 떠오릅니다. 실제로도 틀린 말은 아닌데, 교토가 대도시로 발전될  있도록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은 진하승이라는 신라계 도래인이었기 때문이었지요. 그의 조각상은 일본 국보 1 목조반가사유상 바로 옆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만큼 일본 고대사에서  역할을 차지했지요.



  그렇지만 헤이안 시대부터는 한반도 문화와 달리 독자적인 문화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문화적 배경이 달라지게  결정적 계기를 꼽자면 불교문화의 차이로 생각되는데, 당시 고려는 천태종이 대세였던 반면, 일본은 중국의 밀교를 적극적으로 수입하여 대세를 이룹니다. 일본인의 특징 중 하나인 외부 문물을 적극적으로 융합하는 것이 발휘된 이지요.



  밀교의 정확한 명칭은 진언종(眞言宗)입니다. 한자어처럼 진실된 언어를 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요. 현교가 석가모니가 살아생전의 가르침을 따르는  집중하는 반면, 밀교는  숨겨져() 있는 불성을 찾는데 초점을 둡니다. 기독교에 비유하자면 현교가 사실로 기록된 성경에 집중하고, 밀교는 실체를 알기 힘든 성령에 집중한 달까요? 그렇기에 “참선하는 것이 중요하게 부각됩니다. 그래야만 고요하기 잠들어 있는 불성을 깨울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밀교라 하면 왠지 퇴마록에나 어울릴법한 느낌이 있습니다. 뭔가 주문을 읊고 화려한 부적을 그릴  같지 않나요?



  이런 오해가 쌓인 나름의 이유도 있습니다. 진언종은 입으로 염불을 외우고, 눈으로 만다라를 새기며, 몸으로 의식을 행할  성불할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일정한 방법으로 수행하면 누구나 부처가   있다는  핵심 교리였지요. 이것까지는 특별할  없는데,  방법에서 주술적 요소가 강했습니다. 인간이 일정한 방법으로 자신을 초월하면 신과 감응할  있다는 이죠. 아마, 무당과 비슷한 일본 전통 신앙이 결부된 탓도 있을 겁니다. 영험하고 신비로웠던 진언 밀교는 귀족뿐만 아니라, 민간에게도 지지를 받아 일본 문화의 강력한 기반이 됩니다. 그렇게 헤이안 시대에 불교 종파로써 널리 포교되지요.



  다만, 진언 밀교가 헤이안 시대도 유행되었더라도 국가차원으로 격상된 것은 가마쿠라 시대였습니다. 당시는 쇼군(장군) 일본을 지배하는 무사의 시대였는데, 엄격한 훈련을 통해 최고의 무사가 되어야 하는 시대상황과 수련을 통해 성불하려는 진언종은 서로 궁합이  맞았지요. 그리고 이게 바로 일본 특유의 마른 산수가 탄생하게  계기입니다. 드디어, 귀족 중심의 화려한 정원에서 벗어나 "명상"하게 만드는 철학적 정원을 탄생시킨 거죠.



  마른 산수(가레산스이)의 핵심은 참선입니다. 마른 산수를 창안한 몽창국사는 선(禪)을 추구하기 위해 절제된 정원을 고요하게 바라보며 내면을 가다듬었지요. 이게 바로 일본의 정신적 문화유산이 아닐까 싶어요. 한국에는 선비정신이 있듯 말입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예방할 , 한국은 안동으로, 일본은 교토를 찾은 거겠지요.



  교토의 정원들을 온전히 감상하려면, 당시 상황과 문화적 흐름을 이해하는  좋습니다. 진언 밀교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떠올릴 , 몽창국사의 뜻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되지요. 저는 흰모래와 석정으로 장식된 마른 산수를 보면서 현대 미술사조인 대지 미술 떠올랐습니다. 대지 미술은 거대한 지구를 캔버스 삼아, 기하학적 문양을 '짓는'것을 말하는데, 통상 배경이 되는 지역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거대한 구조물을 설치하지요. 그런데, 끽해야 100평쯤 되는 마당에 대지미술이 표현되어있다고 생각한다면 비약이 심한 걸까요? 아닐 겁니다. 광활한 우주의 법칙이 원자 단위의 양자역학과 동일한 것처럼, 극대와 극소는 서로 통하니까요. 700백 년 전에 이미 현대적 의미의 추상주의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일본인의 예술적, 철학적 깊이가 놀라울 뿐입니다. 



  교토에 있는 수많은 절들을 다녔지만, 조금 특이한 점을 발견할  있었습니다. 한국과 다르게 무섭게 생긴 불상들이 많이 보인 다는 것이었죠. 한국의 불상들은 자비롭고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중생들을 지긋이 바라봅니다. 반면, 일본의 사찰에서는 몽둥이를 들고 험상궂은 표정이 가득하지요. 이는 일본 특유의 원령, 저주의 개념이 녹아있기 때문인데, 어리석은 중생들을 겁을 줘서라도 극락으로 데려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같은 불교 문화권임에도 한국과 일본이 다른 길을 걷게  이유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인식 차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중생들은 연약하기에 자비로움으로 구제할  있다는 것이 한국적 정서라면, 일본은 제멋대로인 중생들을 구제하려면 강제성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일본의 불상들>


  마른 산수를 바라보면서...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부분이 바로 “인간의 본성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들이 정원을 바라보며"참선"하며 추구했을 깨달음은 인간의 본성을 극복하기 위한 수련이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결국, 인간은 선량한가... 혹은 악한가... 성선설과 성악설로 귀결되더군요.



  맹자는 태생적인 '양심' 존재하기에 인간은 선하다고 말했지만 선의로 누군가를 대할 , 상대방도 선의로 화답할 거라는 생각은 종종 착각임을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 믿었던 사람이 나를 비난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 사람이 일부러 그런  아닐 테지만 미필적 고의라는 점에서 어쩔  없습니다. 서로 믿는 수준의 차이려니 해야죠. 솔직히, 배신감도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혹자는 그게 사회생활이라고 말하지만, 쓰라린 것은 어쩔  없습니다. '내가 너무 순진했나'라는 생각도 들지요. 그렇게  날을 마음속에 담아두다가 "에이 이젠  사람과 마음의 선을 그어야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성선설을 믿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성악설이 더 맞겠다 싶기도 해요. 기독교의 원죄론도 어찌 보면 비슷한  같습니다. 이것뿐인가요, 마키아벨리, 홉스, 쇼펜하우어 같은 대부분의 서양철학자들도 인간의 본성은 추악하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춘추전국 시대의 순자가 그랬지요. 인간이 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본능' 따르기 때문이라고요.



  본능 자체가 자기중심적임으로 인간은 어쩔  없이 이기적 일지 모릅니다. 갓난아기도  주먹을 쥐고 있잖아요? 본능은 나의 욕망을 따르기에 상대방을 배려하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삶이 강퍅해져 갈수록 불신의 마음은 점점 커지지요. 하기사,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다른 사람까지 배려해줄 여유가 어디 있겠어요? 그저 너는 너의 삶을 살고, 나는 나의 삶을 살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는 거죠. 그렇게 사람과의 관계가 피상적으로 변해갑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익숙해지고  이상 상처 받지 않을 쯤이면 세상의 때가 묻었다고 표현하더군요.



  그런데, 욕망대로 사는 동물들을 악하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동물의 세계니까 그러려니 합니다. 본능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결국, 선악은 인간이 만든 “제도 따라 결정되는 건데, 순자는 그것을 작위(作爲)라고 표현했습니다. 성인은 오랫동안 배움을 익혀 예의를 만들어 내고 법도를 제정합니다. 그것을 따르는 것이 선한 삶이라면, 기준이 되는 예의와 법도는 성인이 인위적으로 만듦으로 생겨나는 것이지, 본디 사람의 본성으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목수가 나무를 인위적으로 깎아 그릇을 만드는 것일 , 나무 자체가 그릇이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선악의 구분 자체를 없애기 위해 제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럼, 인간이 동물과 다를  없잖아요? 성선설을 주장했던 맹자나, 성악설을 주장했던 순자  누가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영원히 풀리지 않는 과제겠지요. 다만, 사람이 점점 완악해져 가는 이유는 주위 환경에 제약이 따르고, 사리사욕이 자리 잡으며,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반성 없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더군요.


<동복사 삼문>


  교토에서  유명한 벚꽃 가득한 철학의 길을 걸으면서도... 마른 산수를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지만, 교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면 <동복사> 꼽겠습니다.  정확히는  마음밭을 달래는 방법을 교토 남쪽에 위치한... 한국인들에게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절에서 찾았지요. 처음에는 가마쿠라시대 선종을 대표하는 대사찰이라는 역사적 가치만으로도 가볼 필요를 느꼈습니다. 사실, 이리저리 사람들에 치이면서 구경했던 다른 사찰과 달리, 유명하지 않아 관광객들이 거의 없고, 마침 비까지 내려 호젓한 기분이 드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지요.



  우리나라의 일주문처럼, 세속의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거대한 삼문을 지나자, 본당의 웅혼한  그림이 인간의 욕망을 관망하듯 바라보는 듯하더군요.  옆에 위치한 방장 스님의 방에 들어가 추상적이지만 아름다운 마른 산수를 보면서 상념에 잠겼습니다. 머뭇하던 마음들을 끝내 정리하지 못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깊은 계곡을 가로질러 건너편  언저리에 위치한  방까지 이어주는 80m 정도의 나무다리를 만날  있었습니다.



통천교(通天敎)...


  계곡 사이에 푸르게 돋은 단풍나무 새싹을 구름 삼아 걷는 기분이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더군요. 녹음이 어울려 휘날리는  풍경은 진실로 절경이었습니다. 결국 사람의 본성이 어떠하든지 하늘에 닿는다는 , 하나의 (通天)이라는  또한 깨닫게 되더군요. 수많은 길들이 모여 결국 다리 하나로 이어지듯 말입니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대립의 개념이 아닌, 병립의 개념이 맞겠다 싶었습니다. 선하던지, 악하던지, 그것이 어떠하던지 결론은 하나라는 사실을 요.



성인(聖人) 되고자 노력하는 .



  우둔한 사람이든, 명석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알고, 어떤 사람은 배워서 알며, 어떤 사람은 노력해서 깨닫습니다. 그러나, 이루어지면 매한가지라는 것을... 하늘에 통하는 길목에서 깨닫습니다. 결국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참선하고 존양할 , 나를 지켜낼  있는  아니겠어요?  깨달음이 통천교가 계곡 사이를 이어주듯... 땅과 하늘이 이어지듯... 스스로 그어버렸던 마음의  조차 이어   같았습니다.




  사람의 본성이 어떠하던지 지금 눈앞에 펼쳐진 벚꽃 가득한 모습을 기억하며 깨달음의 꽃비를 날리고 싶습니다.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는 날은 길어야 일주일입니다.  날이 더워질 거고, 가을이 오면 잎은 마르고,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눈이 쌓이겠지요. 다시 일 년의 51묵묵히 기다려야 합니다.   시간 동안 벚나무가 참선의 시간을 가지듯이 우리도 수양의 시간을 가져야 할 테죠. 오늘 같이 벚꽃이 흩날리는 , 진언종을 창시한 공해 스님의 노래 구절처럼요.



꽃은 화려해도 지고 마나니/

우리의 인생살이 누구인들 영원하리/
덧없는 인생의 깊은 산을 오늘도 넘어가노니/
헛된  꾸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으리라/



[참고]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교토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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