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브리옹 Apr 23. 2021

[19C, 아카데미즘1] 그대 내 사랑이길.

장 레옹 제롬<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장 레옹 제롬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신고전주의는 19C 초에 이르러 다양한 모습으로 확대됩니다. 아카데미즘, 라파엘전파 등이 대표적이지요. 신고전주의 특유의 엄격하고 정확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덕분에 매끈한 피부와 섬세한 묘사가 돋보입니다. 여기에 더하아카데미즘은 신고전주의 작품보다 적극적인 구도와 포즈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서 감정적으로 고양되기도 합니다.



  저는 장 레옹 제롬의 그림을 참 좋아합니다. 신고전주의와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화가지만 신비로움 또한 잘 표현했거든요. 이국적 정취를 관능적으로 묘사한것으로 유명합니다. 뭐랄까요... 신고전주의 화가지만 무척 낭만적이랄까요? 그의 다양한 시도 덕택에 단순할 법한 그리스 신화도 아름답게 표현되었습니다. 그의 작품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를 보면 어떤가요? 첫눈에 봐도 화려한 듯하면서 서정적입니다. 그런데, 여인의 발을 보니 좀 이상하지 않나요? 사람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혹시,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긍정적인 기대와 관심이 실제적으로 좋은 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키프로스 섬의 왕(혹은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성적으로 문란한 키프로스의 여인들에게 혐오감을 느껴 여인들을 멀리합니다. 그가 하는 일은 그저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것뿐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피그말리온은 가장 귀한 재료인 상아를 구해 실물과 같은 크기의 여인을 조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본인이 바라던 여인의 모습으로 조각하지요. 온 정성을 다해 완성된 조각을 보니 너무 완벽해서 실제 살아있는 여인처럼 보였습니다. 조각 자체가 피그말리온의 이상형이었지요. 그는 틈만 나면 조각상을 어루만지고 깊이 사랑하면서 뜨겁게 열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소망하죠.


"그대 내 사랑이길"


  그러던 어느 날, 피그말리온은 비너스의 축제일을 맞이하여 귀한 제물을 바치며 기도합니다. 물론, 자신이 만든 조각상이 아내가 되어달라고 기도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라, 그저 조각상과 같은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여느 때처럼 조각에 입을 맞추는데... 차디차던 돌에 불과하던 입술에 온기가 느껴집니다! 간절히 바랐던 피그말리온의 소망을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가 들은 것 이지요.



  이 멋진 순간을 장 레온 제롬이 포착하여, 서서히 살아있는 여인이 되어가는 순간을 그려 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한 사내의 간절한 소망이 이뤄진 듯해서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 같은 노총각에게 희망을 주는 작품이지요.



  부끄럽지만 저도 피그말리온처럼 올해는 좋은 인연을 만나겠거니... 하는 꿈을 가집니다. 하지만 막연한 희망은 구체적인 실망이 됩니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이 참 힘듭니다. 인생을 살면서 단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인 줄 알았다면 조금 더 간절하게 기도할 걸 그랬어요. 만남과 이뤄짐은 노력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군요. 남녀의 인연은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처럼 기적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영화 <노팅힐>



  영화 <노팅힐>을 참 좋아합니다. 서점의 책방 주인이 어느 날 세계적인 여배우와 사랑이 빠지는... 남녀가 바뀐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죠.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리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디 나에게도 평범한 기적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혼자일 줄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연이 닿는 것은 점점 어려워만 지네요. 주변에서는 말합니다. 어지간하면 그냥 가라고... 결국 다 똑같다고... 수 백번도 더 들어본 그 말속의 의미를 잘 압니다.



  이제는 조금 막막한 것도 사실입니다. 여전히 실수를 반복하고 혼자만의 착각에 갇힙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돌이켜보면 순리를 거스르려 했던 것 같아요. 어차피 안 되는 상황에서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뤄지겠지... 참고 인내하면 좋은 날도 오겠지’ 하면서 채찍질만 했지, 이뤄낸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홀로 마음만 애태우며 발버둥쳐도 결국 제자리 입니다. 진심을 다할수록 지쳐만 가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피그말리온 처럼 꿈을 꿉니다. 함께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 소담 소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 떠오르는 태양에 희망을 갖고, 해질녘 풍경을 함께 바라보며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땅 어딘가에는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시간이 흘렀다고, 나이가 들었다고 그 열정을 포기하는 일은 너무 슬픈 일입니다.



장 밥티스트 / 프랑수아 르무아르 <피그말리온>


  피그말리온처럼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는 해피엔딩을 꿈꾸지만 남는 것은 후회뿐... 노력을 해도 허사가 됩니다. 포기해야 할 때는 포기해야 하는 건데, 그걸 하지 못합니다. 고집부리는 이 몹쓸 단점을 고쳐보려 했지만 쉽지 않더군요. 미련이 많은 탓입니다.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인생에서 허락되지 않는 게 있다는 걸 인정하면 편해질까요? 억지로 가지려 하면 더 큰 불행이 온다는 걸 압니다. 그러니 순리에 따라야겠지요. 그런데, 피그말리온은 순리조차 거슬렀습니다. 결국, 순리라는 것도 나에게 달려있는 걸까요? 피그말리온처럼 바라고 소망하고 기도하면 언젠가 갈라테이아를 만날 수 있을까요?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저 꿈만 꾸고 있다면 그건 환상에 불과하겠지요. 장 레온 제롬은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에서 그려냈습니다. 그림 아래에 보이는 망치와 어지러운 돌가루가 보이나요? 그가 진짜로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차가운 조각이 사람이 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피그말리온이 긴긴 시간 동안 깎고 다듬어 이뤄 낸 현실의 땀과 열정을 축복하는 것 임을 말 입니다.





  피그말리온은 꿈만 꾸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어도 조각을 부지런히 가꾸고 다듬었지요. 이제는 알 것 같아요. 비너스가 소원을 들어준 것은 피그말리온이 소원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합당했음을 말 입니다. 그 인내의 시간이 비너스를 감동시켰고 큐피드의 화살을 당기게 만들었습니다.

피그말리온이 그러했듯, 저 역시도 조각을 다듬어나가는 일만큼은 멈추지 않아야 겠지요. 비록 조각이 사람으로 탄생하지 않았더라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명작으로 남을 테니까요.



  어쩌면 인생에 갈라테이아가 없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아있다면 그때는 이 지긋지긋한 불운과 빗나가기만 했던 열정을 바로잡고 싶습니다. 쓰라린 기억, 오해와 독단, 질투와 자만을 넘어서요. 척박한 황야에는 꽃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좌절만한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씨앗을 뿌리고 가꿔야겠지요. 언제인지 기약할 수는 없지만, 메마른 땅 위에 길었던 겨울날도 이겨내고 연두색으로 물든 봄날도 올꺼라 믿어요. 그런 분홍빛 벚꽃 휘날리는 날에는 갈라테이아가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대 내 사랑이길 소망합니다.



[참고]

이주향 <그림 너머 그대에게>

Insta_blacklight foto <눈이 부시게>


매거진의 이전글 [19C, 영국 낭만주의2] 늦겨울... 그러나 초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