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힐데와소피 Jan 04. 2023

2022 읽은 책 결산

김소피의 독서 기록


2022년은 시스템 사고에 꽂혀 있었던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도넛경제학과 루만 이론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시스템 사고에 대한 관심은 <사회 변화를 위한 시스템 사고>(데이비드 피터 스트로)에 번역으로 이어졌다. 이에 참고한 책들은 아래 글에 정리한 바 있다.


https://brunch.co.kr/@hildeandsophie/144



시스템 사고와 사이버네틱스


이 글을 올린 이후에도 시스템 사고와 관련된 책들을 몇 권 더 읽었다. 마침 우리 책이 출간된 시점에 시스템 사고 분야 명저인 Thinking in Systems가 <ESG와 세상을 읽는 시스템 법칙>(도넬라 메도즈)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성장의 한계>를 저술한 것으로 유명한 도넬라 메도즈가 시스템 사고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쓴 책으로, 시스템 사고의 본질과 원리를 일목요연하게 다루고 있다. 시스템 사고를 언급하는 책이라면 빼놓지 않고 인용되는 책이어서 영문 제목이 이미 친숙할 상태였다. 그래선지 개인적으로 국문판 제목이 '시스템 사고'가 아닌 '시스템 법칙'으로 내건 것은 아쉬웠다. 법칙이라고 부르기에는 메도즈가 설명하는 시스템 사고와는 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제목도 한눈에 잘 안 읽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제목과 상관없이 이 책에는 너무 배울 것이 많았다.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시스템 사고를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하여 지구가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작동하는지 엿보게 하는 책이다.  책에서는 시스템 사고라는 단어보다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단어가 쓰인다. 사이버네틱스는 1948 노버트 위너라는 공학자이자 수학자가 처음 발표한 개념으로, '순환 인과관계 피드백circular causal feedback 기반으로  동물과 기계의 제어  커뮤니케이션' 의미한다. 순환 인과관계 피드백만 두고 본다면 시스템 사고와 정의가 크게 다르지 아 보이는데, 사이버네틱스는 시스템 사고란 말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이전에 인공지능과 사이보그 연구자들의 자장 안에 있는 단어로 각인된 측면이 있어서 시간이 갈수록  쓰임이  해졌다 한다.


이러한 사이버네틱스의 역사는 <포스트휴먼 오디세이>(홍성욱)에 친절히 설명이 되어 있었고, 덕분에 사이버네틱스와 시스템 사상의 연관관계를 생각하며 유익하게 읽었다. 사실상 시스템 사고는 사이버네틱스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셈이다. 근래에는 '시스템 사상'이라는 큰 틀에서 유사한 여러 지류들이 정리되는 시도도 엿보인다.


책 <가이아>는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적인 독자평을 몇몇 찾아볼 수 있었는데, 기존 가이아 이론의 대중적 인식을 근거로 판단한 인상 평가에 가깝지 않나 생각했다. 러브록이 말하는 '가이아'는 결코 인간처럼 어떤 의도가 있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 개개인은 의도를 가지고 감정을 지니지만, 인간들이 모인 사회는 그렇지 않다. 자연 역시 마찬가지다. 러브록의 가이아는 지구 내 자연이 만들어내는 시스템의 총체이고, 이는 인간 개인이 목격하는 자연의 부분과는 다른 것이다. 러브록이 묘사하는 지구 시스템 역시 복잡한 상호관계에 일부분에 불과하다. 여하튼 올해는 이러한 지류들을 조금이나마 확인하면서 스케치를 그려갈 수 있는 책들을 만날 수 있어서 지적으로 즐거웠다.




2022년의 벽돌책들


2022년의 읽은 책들을 쭈욱 살펴보니 벽돌책을 유난히 재밌게 읽었다. 아무래도 읽기에 투자한 시간이 많으니 기억에 오래 남고, 더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주제를 탐구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왜 책 좋아하시는 분들의 책장이 점점 벽돌책으로 쌓여가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2022년에 읽은 벽돌책들은 나름 분야별로 나눌 수 있기에 정치, 경제, 역사, 과학, 소설 분야별로 꼽아봤다. (물론 분야별로 거의 한 권씩만 읽었지만.)

 



2022년 새해 벽두는 정치분야 벽돌책인 오바마의 <약속의 땅>(버락 오바마)으로 시작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으로 늘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자 저자라 벼루고 있던 책이었는데 너무 술술 읽혀서 '역시 오바마'라고 연신 되뇌었다.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이 대통령이 되기 이전 오바마의 자서전이라면, <약속의 땅>은 오바마의 정치 일대기를 정리한 자서전일 텐데 저술의 디테일과 스토리텔링에 감복했다. (이 디테일 덕분에 책은 900쪽이 넘고 심지어 2권이 나올 예정이라 한다.)


특히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의 수습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오바마가 두고두고 욕먹는 부분이 이때 금융기업들을 살려준 것이다. 정부지원금으로 금융기업의 CEO들이 보너스 잔치를 했다 등의 이야기는 '변화'를 내건 오바마에게 모두가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 오바마의 입장에서 그의 선택을 복기할 수 있다. 그의 입장에서는 금융위기로 인한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도미노를 막는 것이 '불가피하면서 합리적인 결정'이었음을 보여준다. 여러모로 이 책은 자신이 놓인 상황 앞에서 제한된 선택지를 두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정치인의 사고와 정동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희귀한 텍스트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를 오바마는 소설과 같은 유려함으로 그려낸다.


선정되지 못한 또 다른 벽돌책은 <미국의 민주주의 1,2>(알렉시스 드 토크빌)였다. 이 책도 첫 장을 펴자마자부터 취향저격을 당해 신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정치학 책이기도 하고, 사회학 책이기도 하고, 인류학 책이기도 하고, 여행에세이기도 하다. 이즈음의 책들은 이렇게 다양한 소재를 한꺼번에 다룬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예외적인 국가 미국, 그리고 그 미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피고 싶다면 무조건 이 책을 먼저 추천하겠다. 이미지로만 소비하던 미국의 초기 건국 역사가 머릿속에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경제분야 벽돌책은 <거대한 전환>(칼 폴라니)이다. 홍기빈 선생님의 저작들을 좇는 와중에 마침내 그의 첫 번째 번역 책에 다다랐다. 홍기빈 선생님이 초기 번역이라선지 뭔가 거친 표현(?)과 비문이 종종 눈에 띄었지만 번역가의 개성이 칼 폴라니라는 작가의 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해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루만을 읽고 있던 와중에 읽은 책이었기에 루만과의 폴라니의 사상을 자연스럽게 비교하면서 여러 단상이 스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루만은 사회의 기능적 분화 과정을 일종의 진화처럼 설명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분화를 인본적인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이 폴라니의 사상일 것이다. 루만 이론이 가지는 맹점을 폴라니가 채울 수 있을까. 계속 고민을 이어가 보려 한다.






역사분야 벽돌책은 <제국 그 사이의 한국>(앙드레 슈미드)이다. 원고를 편집하게 알게 된 책이었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한반도에서 어떻게 근대의 '문명'과 '민족'의 발명되었는지를 당시의 신문을 통해서 추적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당시의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조선의 문명의 기준은 원래 청나라였는데 청이 무너지고 일본이 러일전쟁에 승리까지 하자, 기준은 일본과 서양으로 바뀐다. 이전까지 청을 따라던 조선의 관습들은 개화와 문명을 위해 미개한 것이 되고 타파해야 할 것이 된다. 한일 합병 이후에는 민족이 '혼'으로써 소환된다. 한반도의 민족주의는 나라가 없는 상태에서 출현한 것이다. 이 시기에 형성된 문명과 민족 이데올로기들이 여전히 남이든 북이든 한반도의 사회에 이어지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나 스스로도 이를 자연스럽게 체화하고 있음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 현재에도 이런 관점을 가진 책을 찾아보기 힘들기에 더욱 충격적이고 놀라웠다. 왜 한국인은 스스로 민족주의를 메타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꺼려할까? 더 많이 읽혀야 할 책이고, 시간이 갈수록 더 읽힐 수 있는 책인데 현재 책이 절판인 것이 안타까웠다.


과학분야 벽돌책으로는 <진화를 묻다>(데이비드 쾀멘)를 꼽는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읽고 그저 믿고 읽다고 생각하게 된 데이비드 쾀멘 선생님의 또 다른 작품이다. 다윈 이후의 진화론의 발전 과정을 감히 이 책 한 권으로 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유전자 분석을 통한 생명의 기원 찾기의 과정이 역시나 추리소설 같은 방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의 영문제목은 '얽혀있는 나무The Tangled Tree'인데, 읽다 보면 이 제목이 이야기의 결론을 스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다윈이 그린 생명의 나무는 후대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정확한 계통수의 그림이 아니었고, 엄밀히 하면 생명체들 간의 계통 구분이 이제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였다.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만큼 변화했는지 처음 알게 되었고 놀라우면서도 납득이 되었다. '모자이크 인간'이라는 관점은 얼마나 현대적인가. 내년엔 린 마굴리스의 공생이론과 미생물에 대한 책을 더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선정되지 못한 과학분야 벽돌책 <코스모스>(칼 세이건)다. 구매한 지 어언 10여 년 만에 독서모임을 통해 완독해 의미가 깊었다. 우주여행을 긍정하고 고취하는 부분이나 공생이론을 언급하지 않는 부분에서 조금 불만이 있었지만 출간된 지 40년이 지난 책이므로 알아서 감안하며 읽었다. 그런데 읽고 나니까 우주나 물리에 대해 보이는 것이 많아져서 때마침 잘 읽었다 싶다.


소설분야 벽돌책으로는 <유리궁전>(아미타브 고시)이다. 이전에 읽은 <대혼란의 시대>란 에세이를 읽고 나서 아미타브 고시 선생님의 본업인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다. 아쉽게도 절판되었으나 마침 중고책을 있어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판 조정래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재밌는 이야기를 따라서 그곳의 역사까지 체험할 수 있어서 모처럼 취향 저격의 소설이었다. 앞으로도 소설로 외국여행, 시대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다. 내년 여행지는 <동방의 항구들>(아민 말루프)로 가자.






글. 김소피

매거진의 이전글 시스템 사고라는 흥미로운 키워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