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변화를 위한 시스템 사고>의 참고 도서 읽기
《사회 변화를 위한 시스템 사고》라는 책을 번역한 계기는 크게 3가지였다.
도넛 경제학을 읽고 생긴 대안 모델에 대한 관심
체계 이론과 루만과의 만남
비영리단체와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일한 개인적 경험
2020년은 개인적인 사상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통일과 북한과 관련된 생각을 정리하는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 출간하며 갈무리를 한 상황이었고, 코로나19를 계기로 (거창하게 표현될 수밖에 없지만) 기존 사회 모델에 대한 의구심과 보다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대안 사회 모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이때 읽은 책, 《도넛 경제학》(케이트 레이워스, 홍기빈 옮김)은 이런 관심에 방향키 역할을 했다.
도넛 경제학의 책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저선과 자연 생태계 균형을 해치지 않는 한도선 사이 공간에서 번영하는 사회경제 모델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몸속에 무언가가 계속 자라면 '암'이라 하듯이, 인류 산업의 성장은 지구라는 한계에 무리를 주는 수준까지 커졌다. 도넛 경제학은 타일러의 라쉬 책 제목처럼 ‘두 번째 지구는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지구가 가진 한계 내에서의 풍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넛은 아래 그림과 같이 이런 시스템의 목표를 보여주는 시각적 가이드라인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인간의 무한한 성장의 욕구는 어쩔 수 없으므로, 결국 우주로 나가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2019년 한 토론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더니, 건너편에 앉았던 분이 굉장히 황당하단 표정을 지으셨다. 그 표정에도 아랑곳 않고 나는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부연했는데, 일 년 후쯤 이 책을 읽고는 그때를 떠올리니 낯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스티븐 핑커의 표현처럼 인간의 본성이 ‘빈 서판'과 같다면 성장지향적인 인간의 본성 역시 언제부터 새겨진 만들어진 본능인지 모른다. 우주로의 진출은 마치 미래를 위한 투자 같지만 동시에 자원을 여전히 불평등하게 분배하고, 누군가는 계속 희생하게 하게 만든다. 과연 이것이 정의롭다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들면서 도넛 경제학을 뒷받침하는 이론과 도넛 경제학이 담은 방향성을 구체화할 실천이 궁금해졌다.
먼저 도넛 경제학에 언급된 책들을 찾아 읽어갔다. 《성장의 한계》는 1972년 MIT 연구자들이 로마클럽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보고서로, 지구를 하나의 시스템 관점에서 보고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통해 계속되는 산업의 성장은 환경오염과 기후 위기로 인한 한계에 부딪힘을 보여 준 기념비적인 저서다. 《민주주의의 정원》은 시민의 민주주의의 참여에 복잡계 이론을 받아들여 세상을 ‘복잡적응계'로 정의하고, 엔지니어가 아니라 세상을 돌보는 정원사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는 어디에서 오는가》는 이상적인 균형점만 좇다가 현실과 동떨어진 기존 경제학을 비판하며, 동태적인 복잡성을 다루는 경제학이 무엇인지 다양한 사례와 실험으로 증명한다.
책들을 읽고 보니 이를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인 시스템 사고란 걸 느꼈다. 시스템 사고란 세상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세상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사고법이다. 시스템 사고란 키워드가 머리에 박히자, 현재 시중에 나오는 많은 조직 경영과 자기계발 관련 책들(《아주 작은 습관의 힘》, 《룬샷》, 《업스트림》 등)에도 시스템 사고가 밑에 깔려 있음이 보였다. 책이 보통 현실보다 십여 년은 앞선다고 하니, 가까운 미래에는 시스템 사고가 상식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성장의 한계》가 올해로 나온 지 꼭 50년이 되었다고 한다. 시스템 사고를 나올 수 있게 한 여러 과학과 사회학 분야의 진전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흐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히 접한 ‘니클라스 루만’ 덕분이었다. 2020년 힐데님이 자기 연구의 이론적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독일의 사회학자 루만 읽기를 시작했다. 이때 나름 사회학 부전공인 나도 흥미가 생겨 《쉽게 읽는 루만》을 따라 읽었는데, 놀랍게도 이 책은 내가 가진 궁금증의 과녁을 맞힌 것처럼 정확하고 기발했다.
뭐가 그렇게 놀라웠냐 하면, 루만은 사회학의 분석 대상을 인간이 아닌 ‘커뮤니케이션'으로 본다.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이지 ‘인간'이 아닌 것이다. 이 명제는 정말 어마 무시했다.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사람들이니까, 당연히 사람을 연구해야 한다는 전제를 뒤집어 버린 것이니까.
그리고 루만이 사회 분석의 요소로 커뮤니케이션을 보는 이유 역시 시스템 사고적이다. 인간은 사회를 이루는 구성요소이긴 하지만, 사회 그 자체가 될 순 없다. 왜냐하면 개별의 합은 전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도 다양한 구성요소들로 이루어진 전체다. 심리적 체계, 유기적 체계, 면역 체계 등 다양한 체계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며 구성되어 인간이 된다. 이는 개별의 합을 넘어서는 복잡한 상호작용 그 자체다. “생명은 분해할 수 없다" 말한 생물학자 루드비히 폰 버틀란피의 연구나, 움베르또 마투라나의 《앎의 나무》는 이런 관점을 보여 준다. 니클라스 루만 역시 이 같은 연구를 읽고, 사회학에 적용할 지점을 고민했다.
생물학의 체계 이론(Systems Theory)은 복잡계 물리학의 병행적 성장과 함께 루만의 사회적 체계 이론으로 확대된 것이고, MIT 슬론 대학원에서는 시스템 사고를 적용한 경영학으로, 산타페 연구소의 복잡계 경제학과 네트워크 연구 등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었다. 이렇게 보면 시스템 사고가 깔린 책들이 우후죽순 나온 것이 우연은 아니었던 셈이다.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패러다임 자체가 이미 변화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스템 사고'라고 대놓고 홍보하는 책은 앞서 설명하는 것처럼 많지 않다. 시스템 사고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처음 읽게 된 책은 김동환 교수의 《시스템 사고》였다. 시스템 사고 일반을 설명하는 데 충실한 책이지만, 앞서 설명한 시스템 사고가 만들어진 배경과 흐름을 담고 있진 않다. 시스템 사고를 그나마 일반에 알리고, 대표적인 적용서로 꼽히는 책은 피터 센게의 《학습하는 조직》이다. 출간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현재도 경영학의 고전으로 꽤 입소문을 타며 읽히고 있으며, 이 책에 영감을 받아 여러 경영 관련 도서가 나왔다. 그중 시스템 사고를 제목에 내건 《시스템 사고로 경영하라》는 비교적 최근인 2019년에 나온 책인데, 학습하는 조직의 내용을 간결하고 쉽게 설명한 책으로 읽었다. 하지만 두 책 모두 시스템 사고를 조직 경영에 방점을 두고 설명하고 있어 아쉬움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비영리단체와 사회적 기업에서 일한 경험은 시스템 사고를 비영리와 사회혁신 분야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심으로 이어졌다. 《성장의 한계》 같은 책이 기후 위기와 같은 거대한 사회 문제를 고민하기 위한 사고 방법으로써, 이미 시스템 사고의 효용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도넛 경제학과 민주주의의 정원처럼 시스템 사고의 방향성과 당위성을 더 구체적으로 다뤄 줄 텍스트가 필요했다. 마침 그런 궁금증에 딱 맞는 제목을 가진 데이비드 피터 스트로의 《사회 변화를 위한 시스템 사고 Systems Thinking for Social Change》이란 책을 알게 되었다.
보자마자 단박에 번역해볼까 생각했으나 망설임도 동시에 있었다. 시스템 사고가 아직 대중 일반에게 낯선 개념이고, 이를 이해하는 과정이 직관적이지 않은 탓이었다. 개인적으로야 시스템 사고에 대해 각 잡고 공부해보자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시스템 사고는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명확하지 않고 따분해 보일 것 같았다.
그럼에도 번역을 결심하게 된 건, 비영리 분야에도 이제 이런 혁신 경영과 새로운 사고의 흐름을 소개할 책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사명감과 개인적으로 체험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복잡계 개론'이라는 책을 낸 것은 2005년이다. 피터 센게 덕분에 조직 경영에 시스템 사고가 알려진 것은 이미 10여 년이 넘는다. 기업 경영과 비영리단체 경영이 꼭 같을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 같은 흐름이 아직 비영리에 접목되지 않은 것이 의아할 정도로 늦다. 비영리/사회적경제 분야에 새로운 혁신을 원하는 사람들이 이 책의 필요성과 새로움에 공감해준다면, '시스템 사고'라는 어려운 허들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 회로가 돌아갔다. 그런 바람으로 텀블벅 부제에 속이 뻔히 보이는 '바이블'이란 단어를 과감히 넣었다.
책의 판매에 대해선 반신반의하지만, 그래도 책을 편집하면서 얻은 확신은 있다. 옳은 방향으로 작은 한 걸음 떼었다는 확신. 이제 곧 이 책을 세상에 흘려보내니, 복잡계의 개념처럼, 새로운 창발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제3섹터 분들에게 더 많이 닿고 싶어서 시작한 텀블벅 펀딩!
《사회 변화를 위한 시스템 사고》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s://www.tumblbug.com/systemsthinking
글. 김소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