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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Jan 17. 2022

2021 읽은 책 결산 (2)

김소피의 책 기록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트럼프라는 아이콘이 증명하듯이, 지난 5년간 세계 각지에서 포퓰리즘 정치인의 인기가 높아졌다. 이번 우리나라 대선도 멀리서 본다면 전세계적인 포퓰리즘 경향의 한 조류일지 모르겠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의식와 더불어서 통일 문제와 같은 거대한 의사결정 문제는 어떻게 푸는 것이 바람직한지 궁금했다.



<대표: 역사, 논리, 정치>(모니카 비에이라, 데이비드 런시먼)는 마키아벨리의 편지 구독 시절 소개를 받은 책이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일반에겐 더 익숙한 표현이지만, 이 책은 의도적으로 대표의 개념을 살린 ‘대표민주주의’라 번역한다. 대표(representation)와 민주정체와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에는 매우 의의가 있었다. <현대 정치사상의 파노라마>(테렌스 볼, 리처드 대거, 대니얼 오닐) 역시 민주주의를 이데올로기가 아닌 하나의 이상으로 정의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민주주의라는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대표제 형태가 제시된다. 몽테스키외가 보았던 것과 비슷하게, 각국의 정치 제도가 저마다 다른 것은 대표의 개념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와 정의감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 출간 이후 ‘한반도미래위원회’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힐데와소피가 하고 싶은 것이 ‘숙의민주주의’의 형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숙의민주주의>(제임스 피시킨)는 대표민주주의의 아쉬운 점을 보완하기 위한 직접 민주주의의 일환으로 ‘숙의민주주의’를 제안한다. 마침 그가 쓴 책이 국내에 막 번역된 참이었다. 이 책을 통해 숙의민주주의의 실천을 위한 지침과 구성 등을 참고할 수 있었는데, 대표민주주의 텍스트를 읽고 나서인지 숙의민주주의 모델의 효과적인 실천이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 모델의 대안 찾기


경제학 관련 책을 부쩍 많이 읽게 된 데는 두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홍기빈 선생님의 <돈 안 되는 경제학> 팟캐스트를 듣고 나서 “커먼즈(commons)를 중심에 둔 대안적 경제학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포스트 자본주의 새로운 시작>(폴 메이슨)를 읽고 나서 “정보 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홍기빈 선생님이 번역한 <도넛경제학>(케이트 레이워스)은 커먼즈를 중심에 둔 새로운 경제학 모델이 이전 모델과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기 좋은 자료다. <공유인으로 사고하라>(데이비드 볼리어) 역시 커먼즈가 무엇이고 왜 그간 커먼즈는 잊혔는지를 밝히는 재밌는 자료다. 최근에 읽은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사이토 료헤이)는 커먼즈를 마르크스 이론 관점에서 어떻게 보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생태 위기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있고, 커먼즈의 관점에서 새로운 경제 모델을 제안하는 책들이 우르르 나오고 있어 뒤떨어지지 않게 따라가는 중이다.




<포스트자본주의 새로운 시작>(폴 메이슨)은 정보 혁명으로 희소성이 사라지는 시장을 예언한다. 폴 메이슨은 인터넷의 보급으로 정보를 얻기 위한 노력은 이제 거의 공짜가 되었으며, 자동화와 인공지능 기술로 인간이 더 이상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생산 혁명이 찾아올 것이라 본다. 개인적으로 자본주의에겐 아직 인간의 인지능력을 상품화하는 단계가 있다 생각하지만, 산업 생산구조를 보기에는 꽤 흥미로운 지점이 많은 책이다.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아론 바스타니)은 폴 메이슨의 상상을 더 밀고가 희소성이 사라져 결국 공산주의가 시작될 것이라 전망하고, <자본주의의 미래>(폴 콜리어)는 자본주의 자본주의 체제가 불러온 불평등 문제를 보다 ‘윤리적’인 전환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론타니는 너무 급진적이서 거리감이 느껴졌고, 폴 콜리어는 새롭지 않아서 지루한 편이었다. 반면 <홀로 선 자본주의>(브랑크 밀라노비치)의 관점은 다른 측면에서 흥미로웠는데, 자본주의 체제는 하나가 아니며, 중국식의 국가자본주의와 미국식의 자유성과주적 자본주의로 나눌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보다 강고한 것이 ‘국가 리얼리즘’ 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경제학 관련 책 중에서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책은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이었다. 현재 상태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의 전제가 되어 온 인간의 행동과 의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도넛 경제학>이 새로운 경제 모델의 내러티브를 제시하는 쪽에 가깝다면,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은 오늘날 세계사회에서 소통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 담론에 대한 정중한 비판서에 가까웠다.


읽는 데에는 좀 고생을 했지만 읽고 나니 많이 배웠다 싶은 책은 <탄소민주주의>(티머시 미첼)다. 앞 절인 민주주의 부분에 들어가야 할 것 같지만, 현재 화석 연료가 어떻게 전 지구적인 에너지 자원으로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기 아주 좋은 책으로 에너지 전환을 외치는 경제적 과제를 생각해 볼 때 참고할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 참고로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최지웅)를 먼저 읽으면 맥락을 이해하기 한결 쉬울 것 같다.







자연에서 배우기


자칭 문과형 인간이라 자연과학책은 가뭄에 콩 나듯 읽는 편인데, 근래에는 과학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코로나19 덕분(?)이기도 하고, 우연히 시스템 사고에 대한 관심을 갖다 보니 기존 사고의 틀을 흔드는 아이디어들이 자연과학에서 먼저 발견된 경우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되서기도 하다. 자연과학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보다 더 낫다는 말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 사회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위해 더 오래된 자연 시스템에서 배울 것을 찾아보자는 관점의 전환이랄까?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과학책은 상당한 두께의 벽돌책이지만, 웬만한 스릴러물을 방불케 하는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데이비드 쾀멘)이었다. 재미도 재미지만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 전염병을 이해하는 데에는 단연 최고가 아닐까 한다. 메르스, 에볼라, 사스 등의 전염병이 발생하고 퍼지는 과정을 마치 영화처럼 그린 이 책은 전염병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어떤 식으로 발전해왔고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시스템 사고와 관련해서 찾아본 책은 <작은 것들이 만든 세계>와 <휴먼네트워크>였다. 특히 <작은 것들이 만든 세계>(멀린 셸드레이크)가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식물도 동물도 아닌 균의 신비로운 정체성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공생’과 ‘네트워크’에 대한 엄청난 영감을 선사하는 책이다.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브뤼노 라투르)은 <어쩌다가 북한학>을 계기로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에 대한 관심이 생긴 차에 나온 신간이라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 라투르는 인간이 살고 있는 영역은 지구의 외피의 아주 얇은 영역이며, 이는 생명체 시스템이 스스로가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임계영역(Critical zones)이라고 지적한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대지’를 중시하자는 제안은 아주 마땅했다. 하지만 전 지구적인 엘리트에 맞서, 기존의 좌우 대립을 넘어서 새로운 대지를 향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직은 이상적으로 느껴졌다.


<인간 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과 <트랜스휴머니즘>(마크 오코널)은 교차하며 읽기 좋은 책이다. 앞의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이 모두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고, 뒤의 책은 유한성을 가진 인간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의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은 진지하게 ‘죽음’을 질병이라 생각하며 기계로 업그레이드하여 영생을 꿈꾼다. 두 세계관을 하나로 합친다면, 인간이란 생명은 사라지고 기계와 자연이 공생하는 세계일 것이다. 아주 비인간적 미래로다. 






이 시대의 고전




상상력 이야기를 하니 소설책을 정리해 본다. 일단 원탑은 단연 <진리의 발견>(마리아 포포바)이었다. 책의 서문부터 전율을 느꼈고.. 이후 이어지는 장마다 그려지는 인물들에게서는 시대를 초월하는 매력을 발견했다. 구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서술 방식 또한 참신해서 뭔가 소설이라 하기에는 그 그릇이 큰 느낌이었다. 또 이 책 덕분에 <모비딕>(허먼 멜빌)과 같은 취향저격 작품을 만나기도 했는데, 역시 나는 사회학적인 시각이 기본으로 깔린 서술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시녀이야기>(마거릿 애트우드)는 왓챠에서 드라마로 먼저 보았는데, 워낙 극화를 잘해서인지 읽는 내내 드라마로 본 장면이 떠올라서 혼났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재밌게 읽었다. 무엇보다 <시녀이야기>는 1985년에 나온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화두인 환경오염과 젠더 문제를 전면으로 다루고 있어 놀라웠다. 후속 작품인 <증언들>을 다음으로 마거릿 애트우드 작가의 작품을 더 읽어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다른 나라 이야기들




마지막으로 정리해 볼 주제는 바다 건너 이야기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후루이치 노리토시)는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를 읽고 접한 노리토시 씨의 대표 저작인데 아래 구절이 참 인상적이었다.


다시 말해, "젊은이는 발칙하다."라는 식으로 젊은이를 '이질적인 타자'로 간주하는 지적은, 이미 젊은이가 아닌 중장년층의 '자기 긍정'이자, '자아 찾기'의 일종인 것이다. 86-87쪽


이 책을 읽고 청년 담론이 세대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라기보다, 청년을 호명하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관련된 나와 그들 사이의 구분짓기라 정리하게 됐다. <정치적 부족주의>(에이미 추아)는 이런 구분짓기를 ‘집단 본능’이라고 설명하는데, 인종, 나이, 성별, 국적 등으로 서로 묶는 성향을 일컫는다. 에이미 추아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이러한 집단 본능을 무시함으로써 베트남과 이라크,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분석한다.


<행복한 감시국가, 중국>(가지타니 가이, 다카구치 고타)는 일본의 학자들이 쓴 중국의 감시사회 현재상이다. 중국의 이야기라지만 우리나라와 놀랄 정도로 유사한 것이 재밌는 포인트였다. 감시사회에 대한 경각심이 서구 사회보다 덜한 것은 한족과 한민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과 한국의 인적 구성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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