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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Jan 11. 2022

2021 읽은 책 결산 (1)

김소피의 책 기록

 

나는 대체로 재미보다는 공부를 위해 책을 읽는 편이다.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하는 책이 내 앞에 두 권 있다면, 읽어야 하는 책을 먼저 손에 든다. 강박적인 읽기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알아야 한다는 마음’이 늘 ‘알고 싶은 마음’을 앞서곤 한다.


출판사를 시작하면서는 그 증세가 더 심해졌다. 책 한 권 출간하려 해도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았다. 현재 사람들이 관심있는 주제는 무엇인지, 비슷한 주제의 책은 없는지, 내고자 하는 책이 어떤 점에서 다른지 등등. 읽어야 할 책 목록은 자꾸 늘어났다. 알고보니 나는 지루할 틈 없이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비슷하면서도 매번 다른 이 과정이 즐거웠다.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편집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남기는 것은 출판사 운영을 위해서도 중요한 정보다. 2022년 새해를 맞이해서 작년에 읽었던 책들(+제작년에 읽은 책도 조금) 주제별 정리 겸 소개해 보려한다. 


- 내용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1편에서는 힐데와소피에서 출간한 책들과 관련해서 읽었던 책들을, 2편에서는 앞으로 출간할 책과 관련해서 읽을 책들을 소개한다.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 이후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를 쓰고 나서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었다. 북한의 비핵화는 어떤 식으로 가능할까? 다른 나라의 비핵화 과정은 어떠했나? 한국과 북한이 건국되는 시기에 내가 모르는 정보는 무엇이 있을까? 이런 질문들과 관련된 책들을 계속 찾아봤다.



<해방 후 3년>(조한성), <평양의 소련군정>(김국후), <대한민국 이야기>(이영훈),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이택선)이 해방 이후 건국사와 관련된 책들이라 할 수 있다. <해방 후 3년>은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의 총 선거 부분이 부족하다 느끼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해방 이후 여러 분파들의 움직임을 균형감 있게 다루었고, 당시에 하나의 나라를 만들지 못한 과정을 반성적으로 회고해볼 수 있는 책이다.


뜻밖에 재밌었던 책은 이른바 ‘뉴라이트’로 불리우는 이영훈 교수의 <대한민국 이야기>였다. 물론 책의 뒷부분에 해당하는 이승만의 평가와 대한민국 건국의 의의 부분은 아는 내용의 반복이라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책의 중반까지 이어지는 일제 시기와 민족을 바라보는 관점은 분명 설득력이 있었다. 이어서 읽은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은 분단과 건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좌우의 관점을 나름 종합하려하는 시도가 엿보였는데, 그 논의가 한국전쟁까지 나아가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비핵화의 정치>(전봉근)와 <한반도의 길, 왜 비핵지대인가?>(정욱식), <코리아 양국체제>(김상준)는 북한의 비핵화와 통일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찾아 읽은 책들이다. <비핵화의 정치>는 핵무기의 개발과 국제적인 관리 체계를 대략적으로 이해하기 좋은 자료였고, <한반도의 길>은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시도가 왜 실패했는가를 이해하기 좋은 자료였다. 하지만 두 책 모두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  <한반도의 길>은 비핵화가 아닌 ‘비핵지대’를 목표로 하자는 전환을 요청하고 있으나, 비핵화에서 비핵지대로 목표점이 달라질 뿐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더 상세한 논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분단체제론’ 비판에 큰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분단체제론을 비판적으로 읽기에 좋은 논증을 담고 있다. 하지만 양국체제가 곧 분단을 넘어 남북 화합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는 분단체제론이 갖고 있는 기대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한계를 느꼈다. 남북 관계를 통일이 아니면 통합이라는 식의 당위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사를 새롭게 보는 시선들



비평 분야에 젊은 필진이 찾기 어렵다보니, 젊은 사람이 쓴 책이라면 아무래도 눈길이 한번 더 가는 편이다. <공정하지 않다>(박원익, 조윤호), <추월의 시대>(김시우, 백승호, 양승훈, 임경빈, 하헌기, 한윤형), <K를 생각한다>(임명묵)를 그런 차원에서 읽었다. 확실히 사회 문제와 역사에 대해 MZ세대가 갖고 있는 관점이 이전 세대와는 다르다는 걸 체감한다. 그 다름의 키워드는 ‘탈이념화’와 ‘개인주의’, ‘디지털’ 정도로 꼽아본다. 달라지고 있는 사회의 담론을 보다 정교하게 분석할 연구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같이 들었다. (지금에 와 정리해보니 유독 남성 필진들의 책을 읽었는데, 올해는 여성 필진의 책을 찾아 읽어 봐야겠다.) 




<3월 1일의 밤>(권보드래)을 시작으로 국문학자들이 해석하는 한국사에 꽂혀서 책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연대기적 서술보다는 지나간 역사에서 영감을 발견하는 일에 더 재미를 느껴서인지도 모르겠다. 독립신문이나 사상계 같은 텍스트를 토대로 그 이면을 상상하고 함의를 만들어내는 이들의 작업이 흥미로웠다.  특히 <숨겨진 미래>(장세진)는 냉전 시기 반둥회의 를 바라봤던 한국의 시선과 한국학의 위치 등, 생소하지만 재밌는 주제들이 많아서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 책 덕분에 <대한민국의 설계자들>과 같은 책들도 알게 되었다. 권보드래 선생님과 장세진 선생님의 책은 올해에도 계속 찾아 읽어보려 한다.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 이후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크리스 샤퍼)는 현재의 많은 사회 변동을 이해하기 좋은 시작점이다. ‘주의력 경제’로는 인간의 인지 능력이 상품화된 현실을,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놀라울 정도로 거대하진 플랫폼 기업들과 그에 연동되는 여러 사회 시스템을 만날 수 있다.



주의력 경제



조만간 절판이 예상되는 <당신의 머리 밖 세상>(매슈 크로퍼드)은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의 저자 크리스 샤퍼가 꽤 중요하게 인용하는 책 중 하나다. 주의력의 공공성을 이야기하는 이 책의 논의는 아주 특이하고 흥미로운데, 아쉽게도 이를 이어갈 다른 책들이 딱히 나오진 않고 있다. (주의력으로 번역하는 Attention은 책에 따라 ‘관심’, ‘주목’으로도 번역되고 있다.) 아쉬운 마음에 ‘주의력’을 다룬 다른 책들을 더 찾아봤으며 그 맥락으로 읽은 책들이 <관심의 경제학>과 <주목하지 않을 권리>였다. <관심의 경제학>(존 벡, 토머스 대븐포트)경우는 주의력이 본격적으로 연구 대상으로 담은 대표적 텍스트로 읽을 가치가 있었다. <주목하지 않을 권리>(팀 우)는 다소 광고의 역사서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미디어와 주의력의 관계를 통시적으로 다룬 점에서 좋은 자료였다.




국내에 나온 책으로는 <프로보커터>(김내훈)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주의력을 자원으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적 관종을 ‘프로보커터’라고 이름 붙이는데, 매우 시의적절한 기획이었고 재밌게 읽었다. 서술의 방향성은 다르지만 비슷한 사례를 다룬 해외 책으로는 <나쁜 교육>(조너선 하이트, 그레그 루키아노프)를 재밌게 읽었다. 특히 미국 대학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을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정치적 올바름’의 문화와 그에 대항하는 ‘대안 우파’의 부상을 의외로 디테일하게 다루는 책이다.


‘주의력 경제’라는 키워드를 배우고 나니 인간의 인지능력을 경제적 자원이자 상품으로 취급현상에 대한 전반적 관심이 생겼고, 이는 결국<인지자본주의>(조정환)까지 닿았다.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서 지금 수준에서 읽기에는 좀 벅찬 책이었지만, 갈무리에서 이전부터 나온 책들을 훑어보면서 찬찬히 읽어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




거대 플랫폼에 대한 우려는 현재 서구권 국가에서는 주류 담론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책으로 <감시 자본주의 시대>(쇼샤나 주보프)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고, <쿠테타 대재앙 정보권력>(데이비드 런시먼), <생각을 빼앗긴 세계>(프랭클린 포어) <빅데이터 소사이어티>(마르크 뒤갱, 크리스토프 라베)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감시 자본주의 시대>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권력은 인간을 일종의 도구나 자원으로 취급하는 ‘도구주의 권력’일 것이라 내다보는데,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가져오는 위험성과 그것이 내재한 논리가 무엇을 도출하게 될 지를 설명하는 선지적인 책이었다. 물론 <호모데우스>(유발 하라리)가 이 도구주의 권력을 충분히 경각심을 가질 만큼 SF적(?)으로 다룬 적이 있긴 하다.




스노든 폭로 이후 국가가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시민들을 감시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늘 있었는데, 이런 문제의식을 이어가는 책들도 좀 찾아봤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글렌 그리월드)는 스노든 폭로에 대한 전말을 다룬 책이고, <인터넷 권력 전쟁>(잭 골드스미스, 팀우)은 인터넷의 P2P/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다룬 책이다. 인터넷 네트워크가 국가를 상대로 어떻게 ‘국경 없는’ 커뮤니티를 꿈꿨는지, 그리고 이 운동이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역사서다. 이 운동들이 사라진 지금, 현재의 인터넷 네트워크 환경이 얼마나 권력 종속적인지에 대해서는 <우리의 적들은 시스템을 알고 있다>(마르타 페이라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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