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프로페셔널이 될 수 없는 현실
지난 5~6년 사이 조직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나 또한 조직에 있었던 적이 있으니 실제로 체감한 것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 그리고 그 이후 세대가 조직에 들어와 일하게 되면서 생기게 된 변화라고들 말한다.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의 갈등이 전면화된 것일까?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세대 간 갈등은 언제나 존재했다. 세대론은 넘어서 조직 변화의 원인을 나름 고민해 보았다.
먼저 머리속에 떠오른 원인으로 생각한 것은 조직 내 구성원들의 잦은 변화였다. 내가 몸 담고 있던 조직은 정부 지원사업을 받으면서 조직 구성원을 배로 늘리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직원 교체의 주기가 빨라졌다. 관리자가 아니고 길게 일하는 사람은 1~2년 정도였고, 대개는 1년이 지나면 퇴직금을 받고 그만두는 식이었다. 매년 조직의 30~50%에 가까운 사람이 바뀌는 셈이었는데, 작은 조직일수록 그 파급력이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변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관리자들의 피로감 증가였다. 새로 들어온 조직원들에게 회사의 미션을 설명하고 업무를 인수인계하려는 관리자의 열정은 해가 갈수록 낮아졌다. 내가 회사를 나올 때쯤에는 거의 '반포기'상태까지에 이르렀다. 관리자 스스로 사기가 저하된 상태에서 조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구성원의 잦은 변화는 회사에서 하는 일과도 관련이 있었다. 물론 어떤 일은 전문성이 필요했고, 자격증이 필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의 업무(계획서 작성, 예약 관리, 회계 기장, 고객 관리, 제품 발주 등등)는 얼마든지 조직에 들어와서 배우면서 할 수 있었다. 이 말인 즉슨 이미 능력을 가진 사람을 굳이 찾아서 뽑아도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특정 능력(외국어 능력 등)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은 2~3개월 교육을 통해 대체 가능한 일자리였다.
흔히 '비숙련 노동'은 훈련 받지 않아도 바로 할 수 있는 단순 노동, 이를테면 청소나 조립 등을 뜻한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비숙련 노동'은 이제 신체 노동을 넘어서 사무실에서 하는 노동에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특히 대학교육을 받은 젊은 사람일수록 사무 노동을 하는 데 별다른 훈련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체할 사람이 많으니 임금이 낮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이젠 교육 수준을 제외하면 사무 노동보다 전문적인 단순 기술직이 더 숙련도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식은 언제나 사람 속에 구현되어 있고, 사람이 갖고 다니며, 사람에 의해 창조되고 증대되거나 개선된다. 지식은 사람에 의해 적용되고, 사람에 의해서 가르쳐지고 전달되며, 사람에 따라서 잘 이용되거나 잘못 사용되어지곤 한다. 따라서 지식사회로의 이동은 사람을 사회의 중심에 위치하게 한다. <미래경영> 445쪽
경영학의 그루 피터 드러커는 21세기 노동자의 전형은 바로 '지식노동자(knowlege worker)'가 될 것이라 했다. 지식노동자는 위 인용 문구처럼 정보화 시대에 상품과 생산성을 만들어내는 인적 자본, 혹은 생산수단, 등등 그 자체다. 그래서 피터 드러커는 21세기 노동자라면 스스로를 경영하는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끊임없는 학습과 자기계발이 없다면 정보화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 되고 마니까.
이 경영학의 그루의 조언을 감명깊게 들은 나는 조직에 가서도 이것 저것 배우는 것이 곧 남는 것이라 생각했다. 시키는 일이라면 일단 배워서라도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잡다한 경영 상식을 알게 되었고, 이후 창업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조직 내에 있으면서 많은 시간 스스로가 프로페셔널이 되고 있다기 보다는 어딘가 손해보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이런 일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월급은 똑같잖아?
손해보는 느낌의 원인 중 하나는 우리 모두가 비슷하게 똑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금방 배울 수 있는 일이라는 건,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일을 배워서 남기자는 생각은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자처한 것과 마찬가지기도 했다.
만약 피터 드러커가 말하는 지식노동자를 누구나 쉽게 알지 못하는 정보를 아는 사람(변호사나 프로그래머 같은 사람)이라 좁게 정의한다 해도, 지식노동자의 범주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구글과 네이버 덕분에 누구나 모든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고, 기존에 지식노동자가 하던 역할을 상당 부분 어플리케이션이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뽀족한 전문성이 필요한 일자리가 아니라면, 회사에서 노동자를 뽑을 때 어떤 기준으로 뽑아야 할까? 한국 고용시장에서 사람을 가리는 잣대는 '대학 졸업장'에 가까울 것이다. (대학 졸업장을 보지 않다면 시험을 통해 자격을 획득하거나.) 그러나 지식노동자의 생산성이 대학 순위와 얼마나 비례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생산성이 높은 회사가 상위권 대학 졸업자를 많이 채용하기 때문일까, 상위권 대학 졸업자가 생산성이 높은 회사를 가기 때문일까?
대기업에서 지식노동자로 일한다면 이야기가 다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의 사무 노동 생산성은 측정되기 어렵다. 노동자가 참여한 프로젝트의 성과나 매출, 혹은 고객 만족도 등의 기준이 있겠지만 웬만큼 큰 규모의 회사가 아니고서는 사람마다 세세하게 관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무노동의 성과는 노동자 혼자서 완전히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까지 하다. 일의 성과를 개인적으로 나누기 어려우니 무임승차와 같은 도덕적 해이가 더 쉽게 발생한다. 책상 앞에 일정한 시간을 앉아 있기만 해도 하는 일은 비슷해 보이니 말이다.
자기계발을 한다고 해도 전문성을 쉽게 얻을 수 없고, 성과를 올려도 제대로 보상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지식노동자는 '프로페셔널'이 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회사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다. 이런 감정을 자각한 노동자가 취하게 되는 태도는 '더 이상 손해보지 않고 버티기'다. "나는 회사에 얼마나 시간을 뺏기고 있을까?" "내가 하는 일에 보상은 제대로 받고 있는 것일까?" 관리자 역시 노동자와 눈치싸움을 벌인다. "저 사람은 회사에서 얼마나 생산성을 올리고 있나? 저 사람이 월급만큼 일하고 있는 걸까?" 노동자는 일을 배우고자 들어왔지만 결국 착취당한 느낌을 가진 채 회사를 떠나고, 관리자는 일을 가르쳐주었지만 결국 퍼준 느낌만 가진 채 사람을 보내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옳았다. 21세기 노동자의 전형은 '지식노동자'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웬만하면 모두가 "프로페셔널"이 되라는 조언은 오늘날 기준으로는 현실성이 좀 떨어진다 싶다. 과연 우리는 회사 안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어찌됐든 지금의 노동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아야 좋은 경영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 김소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