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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신지역경제의 탄생,
<생산도시 순천> 기획 편집기

박사논문을 읽히는 책으로 만들어보자

by 힐데와소피


"북한"을 다루는 새로운 아이템 찾기


힐데와소피가 터를 잡고 있는 이나영책방은 북한학 전문서점이지만, 정작 북한 분야 서가의 업데이트는 더디다. 북한 분야의 신간이 평소 많지 않은 데다가, 그마저도 논문으로 출간된 글을 모았거나 연구자들이 챕터를 나눠서 쓴 학술서가 대부분이어서 일반 독자에게 소개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출판사들이 북한 주제의 책을 잘 내지 않는 이유는 명백하다. 북한에 관심 있는 독자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책이 잘 만들어지지 않다 보니 연구자들도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를 훈련하기 어렵고, 작가도 점차 줄어든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북한 분야의 책은 점점 줄어든다. 힐데와소피는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2020)와 <어쩌다가 북한학>(2021), 2권의 북한 관련 책을 냈다. 이후로도 틈틈이 북한 관련 주제에 책을 내는 상상을 해왔지만, 실제로 이어지진 못했다. 앞서 설명한 이유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도 더 이상 북한 관련 책을 내는 걸 포기해야 할까?


그럼에도 저자를 찾아볼 수 있는 영역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논문이다. 북한 분야의 단행본은 거의 없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북한과 관련된 논문은 여전히 나오고 있다. 양이 많지는 않지만 매 학기 석, 박사는 나오니 어쨌든 논문도 나온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논문은 독자가 (거의) 없는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단행본의 글은 '전달'에 초점이 있다면 논문의 글은 '정리'에 초점이 있다. 단행본의 한 분야라 할 수 있는 학술서도 그렇다. 다른 출간, 유통 방식으로 논문을 내놓았을 뿐,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북한 분야의 단행본은 주로 학술서가 많은데, 특히 박사 논문을 그대로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박사논문을 마치고 나면 논문의 목차들을 떼어내 학술지에 게재하면서 실적을 높인 다음,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수순을 밟기 때문이다. 이런 책은 독자들에게 닿는 형식으로 만들어진다기보다는 논문 내용은 그대로 둔 채 단행본이라는 외피를 입혀 서점에 유통하는 데 의의를 둔다.


우리는 좋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독자들에게 좀 더 다가가는 방식으로 과감히 편집해 보고 싶었다. 북한 분야의 책들은 여전히 판매량도, 독자도 적지만 그래도 좋은 저자가 있다면 악순환 현상을 조금 더디게 하는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 논문의 전달력과 가독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북한 분야의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의 범위를 조금은 넓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업할 논문을 고르다


하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성과 닿는 논문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국에서의 북한 연구는 그 환경상 정치적 관점을 벗어나기 어렵다. 군사주의, 자본주의, 성장주의에 따른 식민주의적 관점을 벗어난 논문, 동시에 연구의 양과 질이 단행본으로 출간할 만큼 의의가 있는 논문은 그만큼 귀하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 보험처럼 염두에 두고 있던 논문이 있었다. 2022년 2월에 박사 학위를 받은 “경제난 이후 북한 순천 지역경제의 발전에 관한 연구”라는 북한 순천 출신인 설송아 작가의 논문이다. 이 논문은 처음 읽을 때부터 매우 흥미로웠다. 사실 북한이 경제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장이 등장하고 자리 잡은 지 30년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북한의 시장화에 대한 연구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이 논문 역시 북한의 순천이라는 도시가 1990년대 북한의 경제난 속에서도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다루는데, 중심 소재만 본다면 다른 북한의 시장화 연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논문은 조금 다른 측면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먼저 ‘북한’의 시장화가 아니라 ‘순천’의 시장화를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그간의 연구는 북한의 도시 중에서도 평양이나 신의주, 라선과 같은 경제특구를 주로 주목해 왔다. 저자는 순천이 북한이 경제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따라서 이 연구는 주요 도시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미처 보지 못한 부분들을 채워준다. 또 한 가지는, ‘시장’이 아니라 ‘시장을 움직이는 사람’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그간 북한의 시장화 연구는 북한의 시장이 과연 얼마나 자본주의적인지, 혹은 시장화가 북한의 체제를 흔들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와 같은 의도가 잔잔히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 논문이 보여주는 것은 그런 변혁의 가능성이라기보다, 그저 순천의 환경과 조건에서 사람들이 살아나가기 위해, 더 잘살기 위해 했던 경제적 선택들과 그 선택들이 만들어내는 동학이었다.


2024년의 어느 날, 우리는 이 논문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가 충분히 출판될 '의의'가 있으며 출판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저자에게 박사 논문을 단행본으로 만들어 보시는 게 어떻냐고 권했고, 저자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물론 박사논문을 그대로 낼 생각은 없었다!



논문을 "단행본"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박사논문은 분량이 워낙 많은 데다가 문체도 경직되어 있다 보니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진 않는다. 그러나 단행본은 어쨌든 끊어짐 없이 쭉 읽을 수 있는(!) 글이어야 했기에 편집은 필수였다. 하지만 우리도 논문을 단행본으로 바꾸는 작업은 처음이었다. 논문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미출간 원고를 편집하는 일과는 또 다른 일이었다. 저자의 주장과 의도를 그대로 담으면서도, 동시에 가독성과 전달성을 높여야 했다.


가장 먼저 진행했던 작업은 목차를 바꾸는 작업이었다. 논문의 목차는 연구의 논증 순서를 따른다면, 단행본은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차근차근 쌓아가면서도 독자가 궁금해할 만한 정보를 전면 배치해야 한다. 원본인 박사논문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따른 시대순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대별로 순천의 주요 산업과 파생산업을 소개한다. 독자에게 이 목차가 어떻게 다가올지 생각해 봤다. 해당 시기에 북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크게 낯설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히 눈에 띌 것 같지 않았다. 가로축이 시대순이고, 세로축이 주로 산업별 구분이라면 이를 서로 바꾸어 순천의 주요 산업과 파생산업을 큰 줄기로 하고 필요에 따라 시기별 설명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글의 구조를 바꾸었다. 독자가 책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여러 산업이 자리 잡고 있는 순천의 모습이 직관적으로 와닿도록 배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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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여 새롭게 배치된 <생산도시 순천>의 목차


또 하나의 중요한 작업은 과감한 삭제였다. 아무래도 논문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자료를 제시해 논증하는 것이 우선이다. 논문은 주장이 설득력 있게 보여지고 정합성을 갖춰야 좋은 연구로 인정받고, 당연히 심사도 통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논문은 아무리 목차를 잘 구분해도 중복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연구한 내용을 강조해야 하기 때문에 주장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일반 단행본은 이런 목적에서 조금 자유로운 편이다. 당연히 주장하고자 하는 바의 근거는 제시해야 하지만 핵심적인 부분에만 집중해도 된다. 그리고 논문과 달리 맥락에서 살짝 벗어나는 이야기도 글의 흐름상 도움이 된다면 들어가도 괜찮다. 그래서 논문을 쓸 때 잘라냈던 부분을 넣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만일 논문에 편집자가 손을 댈 수 있다면 지금 나오는 논문들의 분량은 상당히 줄어들 거라 확신한다!)


저자는 우리의 두 가지 편집 방향성을 아주 흔쾌히 받아들여줬다. 논문의 구조를 완전히 재배치해서 새로 짠 목차와 함께 건넸을 때는 조금 혼란스러워하기도 했지만, 너무나도 성실하게 새로 짠 구조를 읽고 또 읽어서 완벽히 소화하고 모든 연결 부분과 서술을 수정했다. 논문에는 축소되어 있던 부분들은 살려서 논문보다 더 생생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기도 했다. 삭제를 요청한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해 주고, 저자가 먼저 과감히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제안해 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는 했던 작업은 이 책을 살짝 부드러운 톤으로 꾸미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조금은 부드러운 서론과 결론을 작성하고 표지 디자인을 신경 썼다. 저자가 처음에 써줬던 서론과 결론은 논문의 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저자에게 조금은 개인적인 서술이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사실 소설가이기도 한 저자는 소설가의 자아를 꺼내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은 문체의 원고를 보내줬다. 상당히 흥미로웠지만 본문과 너무 달라서야 안 될 일! 저자에게 중간 수준의 글로 다시 요청해 톤을 조정했다. 그리고 여기에 표지에 파스텔 톤의 색상을 넣음으로써 딱딱함을 중화시키고자 했다.


생산도시 순천 표지_목업수정.png 순천에서 다양한 물자가 생산된다는 것을 컨베이어 벨트 위의 상자들로 추상화했다.



학술서이지만, 학술서는 아니고픈 욕심


어떻게 보면 이 책의 기본은 논문이고, 박사논문과 비교해 보지 않고서는 무엇이 다른 학술서와 다른 건지 잘 티가 나지 않을 것도 같다. 사실 그저 ‘학술서’라는 세 글자 안에 우리의 노력이 평가될 것 같아서 두렵고 또 두려웠다. 물론 모두 목적을 충분히 이루지 못한 것은 편집자의 책임이자 역량 부족이다. 사람들은 아무래도 아래와 같은 점에서 그저 학술서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자에게는 조금 다른 면들이 보였고, 그러한 이유로 도전할 가치가 있었다.


이 책은 순천의 여러 모습 중에서도 산업을, 그것도 상당히 세밀한 수준까지 다룬다. 책을 편집하면서 독자들이 ‘내가 이런 이야기까지 알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거리가 느껴지는 석탄, 시멘트와 같은 원자재산업부터, 의약품을 가공하는 제약산업, 신발, 가구, 축산, 양조, 식품과 같은 소비재산업까지. 하지만 나는 오랜만에 이런 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서 새삼 잊고 있던 걸 발견했다. 순천에서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는 과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분업화는 공장 안이 아닌 공장 밖에서 일어난다. 필요한 공정을 세세하게 나눠 집의 부엌과 마당을 거치고 농촌과 도시의 공터, 강가, 산중턱까지 여러 장소를 오고 간다. 한없이 자동화된 한국의 관점에서 순천의 산업들은 낙후되고 저발전된 현장, 자본주의로 가는 과정으로만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편집자로서는 자신의 역할에 몰두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꾸 보였다. 그 모든 현장은 저자와 순천 주민들의 삶의 현장이었고, 한정된 자원과 조건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궁리하고 고민한 흔적들이었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순천 주민들의 경제적 선택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경제적 선택이란 건 얼핏 보기에는 이기적인, 이익만 추구하는 행위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물러날 곳 없이 당장 생존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선택이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와 같은 연구에서 좀 더 여성주의적으로 접근한다면, 인류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직접 참여한 주체들의 목소리가 더 드러난다면, 이런 아쉬움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무미건조하게 쓰인 순천 주민들의 경제적 선택들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슨 일을 해서든 벌어먹고살아야 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숨이 차도록 버겁게 느껴진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해석할 여지도 없이, 자신의 삶을 말할 방법조차 없이, 그저 생존하고 살아나가기 바빴던 내 주변의 수많은 어른들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때로는 그들이 생존해 온 경로 자체가 곧 그들이 된다.


저자는 그동안 순천에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과 에세이로 쓰기도 했다. 그것이 저자의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저자를 비롯해 또 다른 경제활동을 하는 다수의 순천 주민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 책을 순천 주민들에게 바친다고 했다. 그들의 분투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중에 남북이 오고 갈 수 있게 되어 이 책을 읽은 순천 주민들에게서 거짓말이라거나 과장했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진짜 우리 이야기라는 말을 들고 싶다며, 정확하고 성실하게 책을 쓰고 정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우리도 그 마음을 받아 한국 사람들에게도 이 이야기가 너무 그저 북한 사람이 쓴 글로만 읽히지 않도록 정성을 들여 편집하고 교정했다.


저자는 이렇게 염원한다. “남북경협의 장이 열릴 때, 북한 사람들은 수혜자가 아니라 남한 사람들과 변화를 이끄는 주체의 동력으로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다.” 늘 특정한 ‘우리’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이주민과의 동등한 파트너십은 해본 적 없는 한국에서는 요원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그렇기에 저자의 염원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갈등의 대상이 아니면 관심에 대상이 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그런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작가와 우리가 함께 하고 싶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의 정치적 관점에 좌우되지 않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하나의 국가이자 공동체를 새롭게 바라보는 책을 북한 분야 책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은 그래서 잠시 잊을 수는 있을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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