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쌍문역을 찾았다. 6월부터 도봉여성센터에서 진행하는 ‘구술생애사 글쓰기’에 참여하고 있다. 양말 공장 노동자를 인터뷰 하고, 글로 옮기는 작업이다. 양말 공장에 가려면 쌍문역 2번 출구에서 10분 정도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언젠가부터 쌍문역 일대에는 맛집들이 들어섰고, ‘쌍리단길’이라고 불린다. 2번 출구로 나와 백운약국 골목으로 들어서 시장을 지나면 SNS에서도 핫한 음식점 <노말키친>과 <리틀방콕>이 있다. 그 길을 따라 미용실, 카페 등을 지나면 다소 인적이 드물어진다. 순간 ‘잘못 들어왔나?’ 하고 멈칫하게 된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도도봉봉>이라는 동네 책방이 있었다. ‘있었다’라고 쓰고 나니 가슴 안쪽에서 커다란 방울이 툭하고 터진 것 같다. 슬프다고 표현한다면 과할 수 있지만, 아쉽다고 말하기는 부족하다. 내 마음은 색색 물감을 자꾸만 씻어 내느라 탁하게 변해버린 물통 속 같았다.
올해 3월 오랜만에 <도도봉봉>의 책방지기 도도와 만났다. 내가 번역한 그림책이 나와서 선물하고 싶었다. 몇 년 전, 도봉문화정보도서관에서 도도가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을 때 도도의 수강생으로 인연을 맺었다. 글쓰기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두려움을 갖고 있을 때였다. 10주 과정의 글쓰기는 극기 훈련 같았다. 한 주에 책을 한 권을 읽고, 글도 한 편씩 써야 했다. 일주일이 책읽기와 글쓰기로 꽉 채워졌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으며 감동받다가 내 글을 쓰며 좌절했다. 즐거운 이야기를 쓰는 다른 수강생들을 보며 ‘내 글은 왜 이렇게 재미도 없고 칙칙할까?’ 생각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어 안달을 내는 통에 글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부모님 이야기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조금만 쓰려해도 울음이 터져버렸다. 자주 퉁퉁 부은 눈으로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며 쩔쩔매곤 했다. 그때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과 도도 덕분에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그동안 경영상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어요. 월세가 올라서 과감하게 정리하기로 했어요.”
그림책을 전해주는 자리에서 도도는 말했다. 책방이 책만 팔아서 운영될 수 없는 것을 나도 안다. 아이들 책이나 학습서 등을 팔지 않고, 단행본과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책방들은 더욱 사정이 어렵다. 그래서 동네 책방들은 지자체의 지원금으로 책 모임을 꾸리거나 독자와의 만남을 기획한다. <도도봉봉>도 도봉구의 독립서점으로 제 역할을 해왔다. 도도는 책 읽는 모임을 만들었고, 작가를 초청해 북토크를 열었다. 함께 영화 보는 밤을 기획했고 책방에 오는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해주었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도도가 책방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도도봉봉> 같은 공간을 꿈꾸었다.
그림책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책방에 가보았다. 나도 책방을 열고 싶었다. 이름도 생각해두었다. <천국의 책방>이다. 가운데에는 커다란 테이블을 놓을 것이다. 거기서 사람들이 책도 읽고 공부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책꽂이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그림책을 꽂아 두고 싶다. 책방에 오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책 보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즐거운 공간이 되면 좋겠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한가한 시간에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고 싶다. 지친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창가에는 커다란 소파를 둘 것이다. 책을 읽다가 쉴 수 있는 곳,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그런 책방 주인이 되고 싶다.
인터뷰 약속 장소로 가려면 책방이 있던 곳을 지나야 했다. 지금은 옷 가게가 들어섰다. 사라진 책방이 그리웠다. 아들과 처음으로 책방에 가서 책을 샀던 날, 창가에 놓인 의자에 앉아 책 읽는 아들을 사진에 담았던 기억이 났다.
책방에 온 손님들의 사진을 찍어주던 도도, ≪숨은 냥이 찾기≫ 북토크 하던 날의 사람들, 문우의 시집 발간 기념으로 가졌던 모임……. 책방이 있던 자리를 지나가는 짧은 순간에 추억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당장이라도 도도가 반갑게 맞이해 줄 것 같았다. 도도에게 안부를 묻고, 시집을 한 권 사 오고 싶었다.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사라진 책방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