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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Nov 10. 2024

#18. 나 홀로 육백마지기

소원을 이루다

언젠간 홀로 육백마지기 차박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지 3년.

올 5월 말, 드디어 다녀왔다.

그러고 보니 벌써 6개월이 다 돼 가는구나.


역시 또 아이 일과 시험 준비로 이제야 기록을 남긴다고 핑계대 본다.




나에게 육백마지기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동경의 대상이었다. 사진으로만 봐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풍경, 밤이면 별이 쏟아지는 곳. 아이와 함께 하는 캠핑도 물론 좋지만, 이곳만큼은 아껴뒀다 정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가고 싶었다.


계획에 없던 퇴사 후, 앞으로 계획을 차분히 세울 틈도 없이 다시 시작된 아이의 등교 거부와 부동산 투자 공부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더 챙겨야 할 것 같은데 투자 커리큘럼을 따라가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드니 혼란스러운 참이었다. 차분한 시간이 필요할 때이다.


금요일 아이 등교를 시키고 평창으로 떠났다. 2년 전, 대청봉에 오르려 홀로 떠났을 때 이후로 처음이다. 혼자 여행, 특히 차박은 약간의 도전 정신과 함께 묘한 매력이 있다.


평창으로 가는 길 들른 양평 휴게소, 휴게소 돈가스와 라면을 좋아하는 아이 생각이 난다. 같이 먹느라 늘 휴게소 점심은 든든했는데 이 날은 혼자이니 간단하게 김밥으로 요기하고 다시 출발.



블로그에서 본 대로 육백마지기 가기 전 필수 코스인 '평창 88 송어'에 들려 송어회도 한 접시 사고 드디어 육백마지기에 올랐다. 올라가는 길은 듣던 대로 험하다. 4륜 모드로 바꾸고 영차영차. 도착할 때쯤은 푹푹 파인 비포장도로가 나오니 조심해서 올라가야 한다. 올라와 보니 작은 승용차들도 많이 보인다. 조심만 한다면 괜찮을 것 같다.


송어회를 좋아하시던 아빠 생각이 나던 곳


울퉁불퉁 길을 지나자 보이는 깔끔한 주차장, 이미 많은 차들이 트렁크 문을 열고 5월의 육백마지기 경치를 즐기고 있다. 주차장에서 밤을 보내기엔 옆의 차와 너무 가까워 화장실을 포기하고 조금 더 올라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고 나서야 내가 육백마지기에 발을 딛고 있음이 실감이 된다.


글로 표현하기 힘든 풍경


조용한 바람소리와 흔들리던 데이지꽃, 저 멀리 겹치고 겹쳤던 하늘과 산.. 책을 가져갔지만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멍하니 풍경만 바라보았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예전처럼 살 수 없는 지금, 하루하루 버티느라 지금 내가 어디 서있는지도 모르고 지내왔다. 그동안 지친 나에게 이 만한 휴식이 더 있을까. 고마운 시간이다.


와인도 빠질 순 없지


와인 한 잔 하며 지는 해를 바라보다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밤을 맞았다. 쏟아지는 별을 꼭 보고 싶었지만, 밤새 내리던 비에 볼 수 없어 아쉽다. 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


떠나기 전, 안개로 가득 찬 육백마지기를 눈에 눌러 담았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좀 더 겁이 난다. 울퉁불퉁. 차에 오프로드 모드가 있었음을 다 내려와서야 깨닫는다. 다음번엔 좀 더 편하게 올라올 수 있겠다.


강릉


홀로 여행하면 그다음 날은 꼭 분위기 좋은 커피숍과 그 지역의 브루어리를 들르는 편이다. 흐리고 추운 날씨의 강릉 해변가에서 커피 한잔 하며 아이와 엄마의 빵도 사고 버드나무 브루어리에 들려 수제 맥주도 사 집으로 출발하며 오랜만의 홀로 여행 끝.




혼자 여행이란 그런 것 같다. 대단한 결심과 계획이 아닌, 가장 친한 친구인 나와 오롯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것. 자연스럽게 의식의 흐름을 따라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했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시작되는 일상과 고민들이 맞아주겠지. 담담히 맞이하면 된다.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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