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캠핑
백수 엄마와 학업숙려제 중인 딸, 누가 봐도 걱정거리로 가득 차 보이는 상황. 세 번의 지하철 환승과 학교에서 오는 반갑지 않은 연락에 잔뜩 긴장한 상태로 출근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그런 바쁨은 잠시 멈춤 상태이다. 늘 바쁘던 나는 이 한가함이 불안하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과 딸을 챙겨야 하니 느긋하게 생각하라는 두 마음이 어지럽게 싸운다. 무엇보다 쿨하게 아이의 숙려제에 동의했지만, 이렇게 집에만 있어도 되는 걸까?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쳐든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불안하고 어지러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하겠지.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주말에 예약하기 힘든 바다 앞 캠핑장으로 떠나자.
남들이 열심히 일하고 학교에 가는 바로 월요일에!
태안으로 출발
무겁고 큰 텐트를 간신히 치고 밤새 강한 바람에 떨며 다시는 겨울 캠핑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지 딱 1년이다. 아직 겨울 날씨는 아니지만 따뜻한 가을은 아니기에 단단히 준비를 해서 떠났다. 그리고 이번엔 큰 독립 텐트가 아닌 차에 연결할 수 있는 모듈만 챙겨 갔다. 텐트 치다 몸살 나기엔 계속 늙고 허약해지고 있으니 몸을 사려야지.
운전을 한 지 15년이 넘었다. 한 번도 운전하면서 졸린 적이 없었는데 점점 장거리 운전이 힘들어진다. 실제로 졸진 않지만 뭔가 정신이 맑지 않다. 그래서 생긴 나쁜 습관이 있다. 끊임없이 씹기. 운전을 직업으로 한다면 금방 비만이 될 것 같다. 오징어를 씹고, 휴게소에 들러 체력을 충전하며 도착.
넓은 캠핑장이 텅 비어있다. 예약한 사이트에 주차하려 하니 사장님께서 다른 곳에 주차하라고 하신다. 차에 텐트를 연결해야 해서 사이트에 해야 한다고 했더니 차박은 안된다며 강경하게 말씀하신다. 리뉴얼하기 전부터 다녔던 곳이고 늘 사이트에 바짝 대어 주차했기에 미처 바뀐 정책을 몰랐다. 그리고 작년엔 독립된 텐트를 가져왔기에 다른 곳에 주차하라고 했어도 인지하지 못했었다.
이런. 순간 근처 당근이라도 알아봐 텐트를 구해와야 하나 막막해졌다. 태안의 캠핑장은 도심에서 많이 들어와야 하기에 다시 나갔다 오기도 쉽지 않다. 고민하던 중 사장님께서 다른 예약이 없으니 이번만 그냥 쓰라고 하신다. 다행이다.
정말 나이가 들어 힘든 건지, 도킹텐트만 치는데도 버겁다. 에어텐트는 좀 나으려나(장비병은 여전하다).
아이의 바다
아직은 아이가 도와주는 것보다 혼자 잘 놀아주는 게 도움이 된다. 아이가 바다에 내려가 소라 껍데기를 줍는 동안 내부를 정리했다. 차박을 하면 공간은 협소하지만 확실히 시간이 적게 든다. 차박하겠다고 차도 바꾸고 내부에 히터와 전기 시설까지 했으면서 욕심에 수많은 텐트를 샀다 팔았다 했다. 반성하고, 차를 더 활용해 봐야겠다고 생각해 본다(그러면서 에어텐트를 장바구니에 담은 것은 뭐지?).
평화로운 바다에서 석양이 질 때까지 예쁜 소라껍데기를 줍느라 바쁜 아이가 예쁘다. 간간이 내려다보며 아름다운 바다와 파도 소리에 아이의 마음이 조금은 치유되었길 바래 본다.
삼겹살과 햇반으로 식사하고 아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뒤 따뜻한 차 안에서 잘 잤다. 이전처럼 캠핑을 잘 안 다니니 덩그러니 세워져 있던 차가 아까워 처분할까 고민 중이었다. 따뜻하고 편하게 하룻밤 보내고 나니 우리의 트레버스, 백순대한테 미안해진다. 딸과 나에게 모녀 캠핑이라는 소중한 추억을 남겨 준 일등공신을 내가 너무 쉽게 보내려 했다. 일단 백순대 보내는 것은 취소.
여유로운 둘째 날
평일엔 정말 캠핑을 안 다니는구나. 이 좋은 캠핑장이 정말 텅 비었다. 덕분에 우리 만의 바다를 맘껏 즐길 수 있었다. 낮엔 차에 히터를 켜지 않아도 전기 매트 만으로도 따뜻했고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난 책을 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캠핑하며 '힐링'한다는 느낌을 받기엔 늘 혼자 바빴는데 아이도 많이 자라 챙겨줄 것도 줄고 욕심부리며 이것저것 챙기지 않았더니 간단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늘, 바리바리 싸들고 온 짐에는 욕심과 불안이 엉겨 있었는데 많이 덜어낸 것 같아 뿌듯하다. 밤엔 추워질 테니 일부러 밝을 때 불멍도 했다. 천천히 태우니 오래오래 불을 볼 수 있었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 확실히 안정적이 된 아이와 도란도란 얘기하는 시간이 즐겁다. 부쩍 자랐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평범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가 안쓰럽다. 또래와 즐거운 추억을 쌓아야 하는데..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엔 한참 부족하겠지만, 아이에게 이번 캠핑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바다야, 또 만나
차박이라 짐이 단출하여 10시 전에 모든 철수를 마쳤다. 이른 낮에 집에 도착해 쉬니 마무리까지 완벽하다. 다녀와 한참을 버튼 한 번으로 세워지는 에어텐트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하며 갈등의 시간을 겪었으나 겨울 장비를 다 팔아버렸으니 어차피 겨울엔 더 이상의 캠핑은 없다. 도킹 텐트에 두는 작은 난로로는 11월이 한계이다. 그러니 봄에 다시 고민해 보기로 한다. 잊지 않겠다. 에어텐트.
우연히 알게 된 태안의 캠핑장, 우리 만의 보물 같은 곳이다. 올 때마다 아이는 한 뼘씩 자라 있다. 아이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바다가 단단히 자리 잡게 되어 더 소중한 곳이다.
평일의 한산한 바닷가 캠핑장은 고급 호텔 부럽지 않은 만족을 주었지만, 내년에는 주말에 오고 싶다. 나는 열심히 일하고 아이는 학교 가느라 바쁜 평일을 보내야 하니까.
캠핑장은 태안에 있는 '스테이태안'입니다.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은 A~D 사이트예요. 저희는 늘 제일 왼쪽에 A를 사용했었는데 A 옆에 새로 생긴 펜션과 방음이 잘 안 되어 서로 불편하여 이번엔 D로 잡았습니다. 바로 앞에 수도도 있고 바다 내려가는 곳 옆이라 좋은 것 같아요. 캠핑장에 소나무가 많아 송진, 새똥을 맞기 쉬우니 다녀와서 체크 필요해요. 그리고 매우 깔끔한 개인 욕실/화장실이 있어 정말 편리해서 저만 알고 싶은 곳입니다.
주변에 마트, 편의점이 없으니 미리 준비해 오시면 편해요. 그리고 서산 IC 들어서서 1차선 길을 오래가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사장님께서 보내주신 문자대로 내비게이션 무시하고 갔더니 그 길을 피해 가서 덕분에 빨리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정보나마 즐거운 캠핑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