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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Sep 25. 2023

등교 거부, 쉼표가 아닌 마침표

네가 다시 학교 가던 날

아이가 돌아왔다. 2주간의 입원과 퇴원, 그리고 바로 전학과 등교.. 어리둥절한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 이제야 소식을 나눌 정신이 든다.



퇴원

정확히 2주 만에 아이를 보는 날, 아이의 옷과 아이가 꼭 가져오라며 신신당부한 휴대폰과 아이패드를 챙겨 병원으로 가는 길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지만, 나에 대한 원망이 남지 않았을까 걱정도 된다. 우선 병동에 들러 아이의 옷을 전달하고, 병원비를 지원해 주시겠다는 학교 측 배려로 결제하러 오신 상담 선생님을 만나 병원비 정산도 마쳤다. 국립 병원에 만 15세 미만이라 할인도 되어 학교 측 지원 만으로도 내가 부담할 금액은 없었다. 감사한 마음 잠시 넣어두고 아이를 만나러 갔다. 작은 상담실 창문으로 왜소한 아이 뒷모습이 보인다. 문을 열자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에게 안긴다. 우리는 말없이 한참을 안고 있었다. 이렇게 아이를 안아본지 언제인지… 맛없다고 투덜댔어도 건강한 식단과 규칙적인 생활에 살짝 볼이 통통해진 아이 모습에 안심이 된다.


“엄마 왜 울어. 나도 안 우는데…” 하며 씩씩하게 무료주차권을 받았다며 챙겨준다. 아이를 돌봐주던 간호 선생님들께서 잘 가라며 반갑게 인사해 주신다.

집에 가는 길, 휴대폰을 켜 공석이었던 기간의 사무를 보느라 아이가 바쁜 틈을 타 잠시 생각에 빠져 본다. 바쁘셔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보내드린 상담 선생님을 비롯한 고마운 담임 선생님과 아이의 학교, 어린 환자를 잘 보살펴주시던 간호 선생님들, 내 말의 토씨 하나 다 기억하여 세심하게 진료를 봐주시던 의사 선생님들과 선입견을 걷어내고 아이를 맡길 수 있었던 깨끗하고 환한 국립 병원까지. 모두 모두 감사한 기억뿐이다. 물론 같이 아파하던 가족들과 지인들도 빠질 수 없다. 그 와중에 노래가 구리다는 아이의 핀잔이 내 감상을 깨뜨린다. 그래도 좋다.



돈가스와 해물라면

원래는 집에 짐을 두고 바로 해물라면을 먹으러 가기로 했지만, 식사 시간이 지나 배고플 것 같고 비도 많이 오는 바람에 집 근처 일본식 돈가스 전문점으로 향했다. 아이가 드디어 기다리던 돈가스를 앞에 두고 하던 말 “아~ 행복해”. 그래, 이런 게 바로 행복이야. 나 조차도 잊고 있던 일상 속의 행복을 아이가 다시 찾은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꽤 허기가 졌는지 우리는 남기지 않고 시킨 음식을 모두 다 먹고 집에 돌아왔다. 그새 많이 자란 아기 고양이 초와 반려견 밍밍이와 즐거워하는 아이 모습이 좋기도 낯설기도 하다. 저렇게 밝게 웃는 모습을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어설픈 사춘기까지 겹쳐 더더 힘들었던 그 시간들, 아프게 떨어졌었지만 우리가 떨어진 2주의 시간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저녁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물라면을 먹으러 갔다. 역시나 라면을 한 젓가락 뜬 아이는 행복하다며 배시시 웃었다. 매일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면 다이어트 따위는 접어두고 매일 같이 라면을 먹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아이는 다음 날 전학을 하기로 했다. 사실, 원래의 나였다면 언제부터 학교 갈래?라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부모의 개입과 결단이 중요하다는 걸 안다. 아이의 육체 건강이 안 좋은 상태는 아니므로, 가고자 하는 의지가 충분할 때 바로 시도하기로 한다.


전학

입원 기간 동안 우울증세가 많이 좋아졌으나 생활 패턴 자체가 바뀐 건 아니라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그동안 못했던 게임과 커뮤니티 활동에 빠졌다. 다행인 건 이전처럼 문을 꼭 잠그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주로 열고 있는데 귀찮게 하면 다시 닫아 버리니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아침이 되니 불안함이 슬슬 올라온다. 역시나 아이는 미용실을 다녀오지 않았다며, 첫인상이 중요한데 지금 이 머리로는 갈 수가 없다고 하루만 더 있다가 전학하면 안 되겠냐고 한다. 이때 그래, 내일 가자~ 해 버리면 내일은 또 어떤 날이 될지 모른다는 걸 이제 안다. 아이가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여야 한다.


“그럼, 오늘 일단 전학처리부터 하자. 그리고, 내일부터 정식 수업하기로 하고 오늘은 조퇴처리하고 미용실에 가자. 그러나 엄마는 같이 못가. 휴가가 별로 안 남아서 회사에 가야 해. 혼자 갈 수 있지?”

“응”


그렇게 우리는 현관에 한 달 넘게 방치해 두었던 짐을 들고 학교로 향했다. 교무실에 가 전학하러 왔다고 하니 서류 작성부터 일사천리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정식 등교를 하더라도 아이는 새로 배정받은 반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는 과제가 생겼다. 아직 서류를 덜 써서 조금 기다리라 하니 너무 자연스럽게 혼자 가서 인사하고 오겠다고 한다. 혼자 남아 서류를 마저 쓰면서도 어리둥절할 뿐이다. 아이가 돌아온 뒤 무거운 교과서와 아이 짐들을 가져다주러 같이 올라갔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아이가 반에 들어가 인사도 하고 수업도 좀 듣고 오고 싶다고 한다. 그래 그렇게 해~하고 아이를 들여보내고 돌아서는 길, 아직 수업 전이라 복도에 나와 웅성 거리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와 너무 예뻐. 여자애야.”

“우리 반엔 왜 전학 안 오는 거야?”

“나 쟤랑 친구하고 싶어~”


시끌벅적한 복도에서 우리 아이를 환영하는 아이들의 반응과 수줍지만 용기 있게 반으로 들어서던 아이의 모습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사람이 너무 감동하면 눈물도 안 나온다는 걸 그때 느꼈다. 이 때도 역시 이게 꿈인가 생시 인가 하며 돌아가던 길, 아이에게 연락이 온다. 선생님께선 수업을 좀 듣고 가려던 아이의 바뀐 생각을 미처 듣지 못하셔서 인사만 한채 보내셨다. 그래도 이게 어디람.


집을 새로 얻고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참 많은 일을 겪었고 아팠다. 그러나 유난히 날씨가 화창하던 가을의 어느 날, 아이는 새로운 학교에 기쁘게 등교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도, 티 안 내려 노력하지만 잘 안 되는 나의 재촉에 아이와 신경전이 몇 번 있을까 했지만 아이는 무사히 등교를 했고 오후엔 친구와 마라탕을 먹어야 하니 만원만 보내달라는 카톡도 보냈다. 그리고 아이 가방엔 부모 앞에선 절대 보여주지 않는 예쁜 표정의 십 대들의 스티커 사진이 다시 굴러다니게 되었다.





이렇게 세 번의 등교를 무사히 마쳤다. 주말이 끼어 오늘은 좀 불안했는데 그래도 씩씩하게 잘 다녀왔다. 무려 두 명의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한참 놀기도 했다. 이젠 조금 마음을 내려놔도 되는 걸까?


사실, 주말 새에 많이 아팠다. 아이가 입원한 다음 날 갔던 병원에서 피검사를 했는데 수치가 좋지 않다. 어쩐지 낮에 졸린 적이 없던 내가 오후에 너무 피곤하고 계속해서 하품이 나고 먹기는 싫지만 당이 당기던 이상한 상태였는데.. 만성피로가 심하게 왔다. 두통과 몸살기, 그리고 하염없는 졸림에 하루종일 잤다. 내가 자니 아기 고양이도 옆에서 같이 잔다. 가끔 닿는 부드러운 고양이 발바닥의 촉감을 느끼며 오후 내내 누워있는 그 순간이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쉰 것 같다.


아직도 학교에 가지 않던 기간 아이의 정서적 탈출구였던 온라인 커뮤니티는 여전히 아이에게 중요하다. 게임보다는 그림 그리는 데 더 시간을 들이고 있지만, 그로 인해 일상생활에 영향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조급해하지 않기로 한다. 아이는 제 때 등교하겠다던 약속을 지켰고, 드러나진 않았어도 스스로 엄청난 노력과 의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걸 잘 해낸 아이에게 우선은 용기와 응원만 주고 싶다.


지금도 이 상황이 어리둥절하다. 그리고 살짝은 불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매거진은 잠시 쉬다 아이가 졸업하는 날, 마지막 글을 남기고 마무리할까 한다. 아, 등교 거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것들이 정리되면 그 내용도 남겨야겠다. 그리고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은 원래의 ‘삶’ 매거진에 계속 기록할 것이다.


항상 혼자 고군분투한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혼자가 아니었다. 많은 위로와 용기를 주셨던 내 곁에 분들과 말없이 구독해 주셨던 구독자 님들 비롯,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안전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삶은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뜨린다. 파도가 후려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어떤 상실과 잃음도 괜히 온 게 아니다.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고통은 추락이 아니라 재탄생의 순간이고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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