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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까스 Jul 21. 2024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패트릭 브링리

학창 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은 미술이었다. 아주 어렸을 땐 재밌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부턴가 나의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했다. 맨날 들었던 소리는 "스캐치까진 나쁘지 않은데, 색깔만 칠하면 망하네" 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욕이 앞서 너무 다양한 색을 배치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싶다. 게다가 교과서에서 나오는 소위 명작이라는 작품들도 내게는 별 감흥이 없었다. 무슨기법을 이용한 무슨파 화가의 대표작 어쩌구해도 느껴지는게 없는걸?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도 이 그림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이 그림으로부터 내가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미술과 멀어졌다.


이 책의 저자는 친형을 잃은 슬픔에,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은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기 위하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줄여서 '메트')의 경비원이 되었다. 이 책의 부제는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숨어버렸다는 표현이 딱 맞지 않나 싶다. 이후 저자는 메트가 소장하는 위대한 예술품들을 감상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치유해 나가기로 한다. 미술에 딱히 흥미가 없는 나로서는, 메트 경비원으로서의 삶이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고, 그 매커니즘이 궁금해졌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린 결론은, 역시 사람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메트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저마다의 이유로 메트 경비원을 하게 된, 가지각색의 배경을 가진 동료들을 만난다. "가진 게 시간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동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때로는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인생의 고민들을 나누기도 한다. 또, 매일 몰려드는 수많은 관람객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말을 걸어오는 관람객들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숙제 중인 학생들에게 조언을 건네기도 하는 등,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경비원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메트에서 일하는 10년 동안 아내 타라와 결혼하고 올리버와 루이스가 태어나면서 가정이 생긴다. 그러면서 점점 그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이 생겨나고, 메트 바깥의 세상에 대한 생각이 점점 많아진다. 메트 경비원으로서 예술품과 한 공간에서 온종일 호흡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그가 상처를 치유해나간 것은 결국 10년 간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192p) 내가 삶에서 마주할 대부분의 커다란 도전들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도전들과 다르지 않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책에서는 저자가 흥미롭게 생각한 작품들에 대한 설명이 많다. 솔직히 말하면 좀 지루했다. 저자가 느낀 것을 잘 전달해주려는 열망은 느껴지지만, 그닥 흥미롭지는 않아서 이 책을 완독하기까지 거의 두달이 넘게 걸렸다 ㅎㅎ... 그래도 다음에 미술관에 가게 되면, 저자가 아래와 같이 가르쳐준 대로 예술품을 찬찬히 감상해 봐야겠다.

(322p) 인색하고 못난 생각은 문밖에 두고 아름다움을 모아둔 저장고 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작고 하찮은 먼지 조각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즐기십시오. 

가능하면 미술관이 조용한 아침에 오세요. 그리고 처음에는 아무하고도, 심지어 경비원들하고도 말을 하지 마세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면 눈을 크게 뜨고 끈기를 가지고 전체적인 존재감과 완전함뿐 아니라 상세한 디테일을 발견할 만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세요. 감각되는 것들을 묘사할 말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거기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어쩌면 그 침묵과 정적 속에서 범상치 않은 것 혹은 예상치 못했던 것을 경험하는 행운을 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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